상처는 흉터가 아니라 별자리를 만든다(순례길)

내 안의 힘은 사라지지 않는다

by 시안블루



무너진 자리에도
지워지지 않는 것이 있었고,

허물어진 틈새에서도
조용히 숨 쉬는
한 점의 빛이 있었다

사라지지 않는 힘은 언제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남는다




카스트로헤리스에 들어서기 전,

폐허로 남겨진 산 안톤 수도원이 있었다.

하늘을 향해 텅 빈 창들과 무너진 아치들은

바람 속에서 오래된 기도를 품은 채 서 있고,

그 사이로 햇빛이 흘러내리면,

폐허는 오히려 하나의 성소처럼 보였다.


이곳은 중세 시절 ‘안토니우스 수도회’가

순례자들을 치료하고 돌보던 곳이었다.


특히 ‘성 안토니오의 불’이라 불리던

괴질로 고통받는 이들을 받아들여,

먹을 것과 잠자리,

그리고 치유의 손길을 내어주던 공간이었다.


지금은 지붕도 벽도 대부분 사라졌지만

그 돌기둥들 사이에는,

여전히 누군가를 살리고자 했던

마음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폐허가 된 수도원을 지나

아치 아래를 통과하는 순간,

마치 시간의 문턱을 건너는 것 같았다.


고통을 이겨낸 이들의 이야기가,


한 걸음 한 걸음,

오늘을 걷는 이들에게 조용히 격려하는 듯했다.


산 안톤은 더 이상 완전한 건물이 아니지만,

‘무너진 자리에서조차,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끝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나는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떠나보냈으며,

그럼에도 무엇이 남아 있는가.”


이곳은
자기 삶의 균열을 들여다보고,


그 틈에서,

다시 걸어갈 힘을 찾게 만드는
조용한 영혼의 통로였다.







메세타의 광활한 침묵을 지나오면,


사람은,

어느 순간 스스로가 얼마나 작은지,

또 얼마나 견디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그 긴 고독의 끝에서,

마주한 카스트로헤리스는 외부의 풍경이 아니라,
내면의 응시를 잠시 멈춰 세우는 조용한 경계였다.


이곳에서 느껴지는 평온함은
마을의 크기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삶을 구성하는 힘이
거대한 사건이 아니라,


이런 작은 고요들에 숨어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일깨워주는 자리였다.


길을 걷는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조금씩 밝혀가는 과정이다.


카스트로헤리스의 고요함은
그 과정을 잠시 비추는 하나의 거울이었다.


바람 한 줄기,

끝없이 펼쳐진 길의 정적,
햇빛을 베고 누운 작은 고양이...

그 사소한 것들이 오히려
내 안의 가장 깊은 감각을 깨워주었다.


그래서 이 마을은 목적지가 아니라
길을 계속 걸을 수 있게 해주는,
은밀한 ‘지탱의 힘’ 같은 곳이었다.


여기서 잠시 멈춰 숨을 고르고,
다시 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 것이다.

걷는다는 것은,


세상을 지나쳐 가는 일이 아니라

자신에게 조금씩 도착해 가는 일”이었다.



모두 무너졌다고
믿던 자리에도

끝내,
사라지지 않는
빛이 있었다.

소리 없이 견디던
마음의 조각이
어둠 속에서,

나를 붙들어 세웠다.

그 작고 단단한 하나 덕분에

나는 다시,
앞으로 걸을 수 있었다.








"오늘밤,

당신의 마음에

별 하나,

놓고 갑니다."


[시안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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