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노래를 듣다
넘어야 할 줄만 알았던
마음의 벽이,
사실은 닫힌 것이 아니라
열릴 방향을 기다리고 있었다
길을 헤매던 마음이
천천히 젖어들며 깨닫는 순간,
그 벽은 '문'이 되었다.
새벽부터 비를 뿌렸다.
판초우의를 입기에는,
가볍게 내리기에 배낭커버만 씌우고
모자 쓰고 걸었다.
날씨가 흐려 평소보다 어두운 날이었다.
오늘은 프로미스타에서 출발해,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에 갈 것이다.
그곳 산타 마리아 성당 알베르게는
수녀님들이 각 나라의 노래를
불러주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 알베르게는 예약이 안되고
선착순이므로,
서둘러 걸어야 했다.
걷다 보니 금세 비가 그치고,
하늘은 수줍은 아이의 볼처럼
천천히, 빨갛게 물들고 있었다.
메세타 평원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레온구간은
점프하는 순례자들을 간혹 볼 수 있다.
부르고스에서 사하군까지 기차를 타고 2~3시간이면,
이 지루하고 힘겨운 길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까미노 프랑스길에서 초반 나바라,
라 리오하 구간은
오르막길과 내리막길로
육체적 고통이 있으나,
아름답고 다채로운 풍경과
새롭고 다양한 순례자들의 만남으로
매일 새로운 길을 걷는 것 같았다.
하지만 레온구간의 풍경은
거의 변하지 않고,
길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길에서 순례자들을 만나는 것도
드물었다.
바람과 흙,
반복되는 발걸음 소리만이
하루를 채웠다.
같은 길을 계속해서
제자리걸음하고 있는 것처럼,
지루하고 황폐했다.
오늘은 유난히,
마음이 황무지로 바뀌면서
마음의 벽이 생겼다.
"나는 왜 걷고 있는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걸을 수 있을까?"
이 길을 점프하고 싶은 유혹이
유난히 생기는 오늘이었다.
더 이상 삶을 장식할 문장을
찾지 않게 되었고,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가
최소한의 의미로 남았다.
이 지루하고 황량한 길은
순례길 본래의 얼굴 같았다.
황량한 평원 위에서
지친 마음을 안고 걷고 있을 때,
멀리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그 나무는 목적지도, 쉼터도 아니었지만
길을 헤매던 내 마음속으로
천천히 스며들었다.
메말라 있던 감정의 표면을 적시듯
조용히, 아주 느리게.
그 순간 알았다.
넘어야 할 줄만 알았던 마음의 벽이
사실은 닫힌 것이 아니라,
열릴 방향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그것은 길을 헤매던 마음에
서서히 젖어들면서,
내 마음의 '벽'을
'문'으로 바꾸었다.
해바라기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벨로라도를 지나
빌람비스티아 마을에서 보았던,
시들어가는 해바라기가 떠올랐다.
계절이 바뀌듯,
꽃도 다른 옷을 입고 있었다.
죽음을 앞에 두고 있는 것 마냥,
흙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흙과 하나가 되고 있었다.
걷기를 그만두고 싶은 유혹이 생기는
오늘,
그 마음을 흙에 묻어 버리고
다시 처음에 품었던 그 마음으로,
마지막 힘을 다해 힘차게 걸었다.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에 닿았다는
표지판이 보였다.
성당에 도착하기 전 입구에,
인상적인 순례자 동상이 보였다.
망토와 넓은 챙의 모자를 쓰고
지팡이를 짚은 채 걷고 있는 이 형상은,
지치고 무겁지만,
멈추지 않고
그저 다음 걸음을 향해
몸을 기울이고 있었다.
순례길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많이 걷는 일이 아니라,
끝까지 같은 방향을
유지하는 일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 주었다.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 성당 바로 옆에는
성모 마리아상이 있었다.
성모는 높은 기단 위에 서 있고,
두 팔은 벌린 채 아래를 향해 열려 있었다.
길의 의미를 잠시 잃었던 오늘,
내 지친 마음을 품어주는 것 같았다.
성모 마리아상 오른쪽 알베르게에
순례자들의 줄이 보였다.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의
산타 마리아 성당 알베르게에서는
그날 알베르게에 머무는
순례자들의 국적에 맞춰,
수녀님들이 각 나라의 숨결을 담은
멜로디를 불러주는
전통적인 환대 의식이 있었다.
나는 컨디션이 좋지 않아,
침대에 누워있었다.
수녀님들이 부르는,
다양한 국적의 노래들이
벽을 타고 들려왔다.
그 선율은
내 마음을 평온하게 해 주었다.
언어가 달라도 음악으로 통하는
하나의 마음이 있었다.
한국의 '아리랑'이 들렸다.
뜻밖에 마주한 그 선율은
낯선 땅에 잠시 남겨 두었던
내 이름을 다시 불러 주는 소리 같아,
이방인인 나를 뭉클하게 했다.
하늘은 울음을 삼킨 채
조심스레 숨을 고르고 있었고,
수녀님들의 따스한 환대는
비보다 먼저,
내 마음에 내려앉았다.
밖은,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내 마음은 그새 평온해졌다.
비로 흠뻑 적신 후에
따사로운 햇살을 안은 기분이었다.
순례길의 절반을 차지하는 레온구간을
혼자 걸으면서,
황량한 풍경뿐 내 마음도 황량했었다.
그 마음에 햇살이 조용히 스며들면서,
나는 따스함을 베고 깊이 잠들었다.
길의 의미를 잠시 잃었던
오늘,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지나온 이유도
남은 거리도 덮어 둔 채,
여기까지 버텨 온 시간을
가만히 안아 주듯
내 마음은
그 안에서 오래 머물렀다.
"오늘밤,
당신의 마음에
별 하나,
놓고 갑니다."
[시안블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