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비가 남긴 문장
비가 내리면
모든 것이
제 목소리를 잃는다
풀잎은 고개를 숙이고
창문은 제 얼굴을 닫는다
나는 그 사이에 서서
젖는 법을 배운다
비가 지나간 자리마다
보이지 않는 글자가 남는다
그 글자들이 모여
나를 만든다
세상이 잠시 멈추는 순간,
외부의 소음이 사라진다.
바깥이 닫히면 안쪽이 열리는 법이다.
그 고요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내면의 소리를 듣게 된다.
젖는다는 것은,
세상의 감정에 스며드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비가 지나간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보이지 않는 언어가 남아 있었다.
‘보이지 않는 글자’는
그때는 의미를 알 수 없었던 날들,
훗날 돌아보았을 때
비로소 문장이 되는 경험들이었다.
경험은
즉시 의미로 드러나지 않는다.
수많은 무명의 경험들이 쌓여
하나의 존재를 형성한다.
‘나를 만든다’는 말은
완성이 아니라
지속의 상태이다.
비가 지나갈 때마다
조금씩 덧써지고 있는 문장은
서서히 내가 된다.
‘나’는
스스로를 만든 존재가 아니라
비가 지나간 자리들이
끝내 완성한 문장이다.
결국, 모든 깨달음은
세상의 흔적이 내 안에 쌓여
‘나’라는 존재를 만들어간다.
"삶은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지나간 뒤에야,
조용히 읽히는 것이다."
비는 사라졌지만
그 자리에 남은 글자들처럼,
나 또한
그렇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오늘밤,
당신의 마음에
별 하나,
놓고 갑니다."
[시안블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