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는 흉터가 아니라
별자리를 만든다(순례길)

고통 없이는 영광도 없다

by 시안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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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이 깊을수록
영광은 짙은 노을로 번지고

멈추고 싶은 순간마다
바람은 등을 떠미나니

굽이치던 아픔 끝에 비로소
'나'라는 꽃이 피어난다



순례길의 절반이 지나고,

나는 다시 새로운 새벽의 문을 열었다.


사하군의 새벽은 끝이 아니라,

'내 안의 가장 빛나는 지점'을 향해 나아가는

새로운 탄생의 시간이었다.


메세타 길에는,

화려한 꽃잎은 진작 떨구고

오직 뼈대만 남은 채 꼿꼿이 서 있는 식물,

티즐이 보였다.


티즐의 몸은 가시로 덮여 있었다.


순례자의 발바닥에 박힌 굳은살이

고통의 흔적이듯,

티즐의 거친 가시 뭉치는

그것이 견뎌낸 시간의 발자취 같았다.


오래전에 사람들은 이 식물의 거친 가시로

양모를 빗어 부드러운 옷감을 만들었다고 한다.


제 몸을 거칠게 버텨낸 끝에 타인의 삶을

부드럽게 만드는 그 쓰임이,

마치 고된 길 위에서

스스로의 모난 성품을 깎아내며

타인에 대한 포용력을 배워가는,

순례자의 뒷모습과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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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길을 걷다 보면,

인생이라는 길 위에 '영원한 맑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떤 순간의 하늘은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르고 찬란한 빛줄기를 쏟아내며,

세상 모든 것이 나를 축복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그때의 발걸음은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하지만 인생의 날씨가 그래왔듯,

순례길의 날씨는

결코 예보된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방금까지 나를 비추던 햇살은 예고 없이

거대한 먹구름 속으로 몸을 숨기고,

대지는 순식간에 고독한 무채색으로 변했다.


수시로 바뀌는 하늘은

내 안의 감정들과 닮아 있었다.


비가 오면 젖은 채로,

바람이 불면 흔들리는 대로 걷는 것이

순례길의 진정한 모습이었다.


기쁨에 들떴다가도 금세 절망에 빠지고,

다시 희망을 찾아 걷는 이 길이

결국 '인생'이었다.


"하늘의 표정이 바뀌는 것은

나를 방해하기 위함이 아니라,

나의 인생에

더 다채로운 빛깔을 입히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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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군에서 렐리고스까지

30km가 넘는 긴 여정 끝에,


렐리고스 마을의 상징과도 같은 하늘색 건물,

바 라 토레가 보였다.


주인장의 이름을 따서 '바 시니시라고도 불린다.


건물 외벽에는 전 세계 순례자들이 남긴 낙서와

주인장이 직접 적어놓은 환영의 문구들이 보였다.


"고통 없이는 영광도 없다"는 문구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꽃이 지고 난 뒤에도 쓰러지지 않고,

겨울까지 버티는 그 고집스러운

티즐의 생명력을 보며,


나는 'NO PAIN NO GLORY'라는 문장을

다시 생각해 봤다.


영광이란, 꽃이 피어 있는

화려한 순간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가장 마르고 척박한 땅에서,

모든 화려함을 내려놓고도

여전히 무너지지 않는 그 단단함,

그 자체가 이미 영광인 것이다.


길가에 흩어져 있는 티즐은

마치 땅에 떨어진 별의 잔해 같기도 하고,

땅에 박힌 작은 삶의 길라잡이 같기도 했다.


누군가는 그저 말라비틀어진

볼품없는 풀이라며 지나치겠지만,

30km 이상의 고독을 등에 지고 걷는 순례자에게

티즐은 말 없는 길벗이었다.


"나도 이렇게 서 있으니,

당신도 조금만 더 기운을 내라.


인생을 살아가면서 맑은 날의 화려함보다

흐린 날을 견디며 제 자리를 지키는 인내의 시간이,

우리를 더 단단하게 빚어낸다."라고 말해주는 길벗.



화려한 꽃이 지고 난 뒤에도
쓰러지지 않고
단단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진짜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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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밤,

당신의 마음에

별 하나,

놓고 갑니다."


[시안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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