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온, 레온, 레온!
"인생이라는 긴 서사에서,
가장 위대한 페이지는
목적지에 깃발을 꽂는 순간이 아니라,
길 위에 주저앉아 자신의 상처를 보듬는
이 고요한 휴식의 순간이다."
렐리고스에서 맞이하는 새벽빛.
내 마음속에서도,
잊고 있던 열정의 불씨가
다시금 요동치는 새벽이었다.
반복되는 걷기와 무거운 배낭의 무게에
잠시 무뎌졌던 감각들이,
저 뜨거운 일출의 심장소리에 맞춰
하나둘 깨어나기 시작했다.
지평선을 태울 듯 솟아오르는 저 태양은
내게 물었다.
어제의 피로에 주저앉을 것인가,
아니면 저 빛을 닮은 뜨거움으로
오늘을 다시 시작할 것인가.
이 새벽의 일출은
레온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에,
새로운 서사를 써 내려갈 불씨를 안겨주었다.
어둠은 무겁고 공기는 차갑지만,
그 침묵 속에서 비로소
내 안의 소란스러운 소리들이 잦아들었다.
어둠이 짙을수록 빛은 더욱 선명해지듯,
고독했던 새벽길 끝에 마주한 이 붉은 에너지를
배낭 깊숙이 갈무리했다.
레온의 화려한 예술과 역사가 기다리는 곳으로,
나는 이제 단순한 여행자가 아닌
불꽃을 품은 순례자가 되어 뚜벅뚜벅 걸었다.
한 발, 또 한발...
오늘의 태양은
내일의 전설이 될 나의 발걸음을
찬란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렇게 기대했던 레온에 도착하니,
마음이 설레었다.
레온 중심가인 산 마르셀로 광장 근처에,
가장 낮은 곳을 향해 몸을 웅크리고 있는
'휴식하는 순례자'라는 조형물이 눈에 띄었다.
비정상적으로 큰 발은,
우리가 이 길 위에서
오직 자신의 두 발에만 의지해
하루하루를 버텨왔음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렐리고스에서 출발하여 레온에 도착했을 때,
나의 몸은 이 조형물처럼 무겁고 지쳐 있었다.
세상의 속도에 맞추느라 외면했던
나의 몸,
나의 상처,
나의 한계를,
비로소 대면하는 순간이었다.
이 조형물이 나에게 외치는 것 같았다.
"인생이라는 긴 서사에서,
가장 위대한 페이지는
목적지에 깃발을 꽂는 순간이 아니라,
길 위에 주저앉아
자신의 상처를 보듬는 이 고요한 휴식의 순간이라고."
드디어 천재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가 설계한
'카사 보티네스'를 접하는,
떨리는 순간이었다.
가우디는 레온의 전통적인 고딕 양식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과거의 유산을 존중하면서도
자신만의 독창적인 시각을 덧입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새로운 공간을 창조했다.
순례길 또한 수천 년간
수백만 명이 걸어온 길이지만,
그 길을 걷는 순례자 각자가
자신만의 감정과 해석을 덧입힐 때,
비로소 그 길은
'자신만의 유일한 서사'가 될 것이다.
'카사 보티네스'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공간에
예술적 혼을 불어넣어,
매일 마주하는 벽과 창문조차
경이로운 감동이 되게 만들었다.
나는 나에게 묻고 싶다.
"너의 평범한 발걸음 속에
어떤 감동을 심고 있느냐고."
레온의 카사 보티네스 앞,
햇살이 머무는 벤치에 앉아
묵묵히 노트를 채우고 있는
가우디의 동상은
한 걸음 뒤에 물러서서,
내가 걸어온 길의 고요한 내면을
마주하게 해 주었다.
돌 하나하나에 깃든 가우디의 정성이
세월을 이기고 남아 우리에게 감동을 주듯,
이 길 위에서 흘린 정직한 땀방울 또한
인생이라는 건축물을 가장 견고하고
아름답게 세워 올리는 초석이 될 것이라,
나는 굳게 믿고 있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3대 대성당'에는
부르고스, 레온, 산티아고 대성당이 있다.
내 눈앞에, 레온 대성당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르고 있었다.
레온 대성당은
순례길의 고통을 찬란한 빛으로 바꿔주었다.
어두운 유리창들이,
태양 빛을 품는 순간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빛으로 태어났다.
인생의 날씨가 어둡고 흐렸던 이유는,
내 안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더 선명하게
비추기 위한 기다림이었음을,
나는 깨달았다.
레온을 향해 지나온 길 위에서,
고통의 순간들이
이 찬란한 빛의 조각이 되어
내 몸 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화려한 꽃은 지고 없어도
쓰러지지 않았던 티즐처럼,
고통뒤에 오는 영광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늘 하루를 온전히 살아낸 이의
가슴속으로 스며드는 저 따스한 햇살,
그것이 바로
내가 찾던 인생의 진짜 얼굴이었다."
"쓰지 않으면 사라질
오늘을 붙잡아,
영원히 마르지 않을
내일의 이정표로 만드는 일.
그것이,
순례길에서의 벽을
문으로 바꾸는
열쇠였다."
"오늘밤,
당신의 마음에
별 하나,
놓고 갑니다."
[시안블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