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는 흉터가 아니라 별자리가 된다(순례길)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다시 만나서 괴롭다

by 시안블루



"깊은 잠은 순례자에게 허락한
가장 완벽한 '망각'이자,
다시 시작할 수 있게
숨통을 틔워주는
고귀한 축복이다."



이 얼마나 경이로운 단잠이던가!


단잠은,

어제의 정신적 고통과 온몸의 통증을

말끔히 씻어주었다.


잠을 푹 자고 나니,

다시 활기가 넘쳤고

새로운 길에 대한 호기심이 다시 솟구쳤다.


먼 길이든 험한 길이든 떠날 준비가 되었다.


오늘은 산 마틴 델 까미노에서 출발해서

가우디의 초창기 시절 주교궁이 있는

아스트로가로 향할 것이다.


"새벽은 어제의 나를 지우고

오늘의 나를 빚어내는 시간.


구름선이 그려놓은 저 하늘의 길처럼

오늘 또한 거침없이 맑기를."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무엇을 위해

이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있는지',


흙먼지에 덮어져 희미해질 때가 있었다.


'오르비고 강'의 푸른 물결을 마주하는 순간,

흐르는 강물 위에 무심하게 떠 있는

구름을 바라보는 순간,


비로소 깨달았다.


구름이 강물에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듯,

나 역시 이 길 위에 스스로를 던져

묵묵히 걷고 있다는 것을.


"강물이라는 거울 속에 비친 구름은

잡으려 하면 흩어지지만,


가만히 응시하면,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평온을 안겨준다."


어제의 고단함으로 가득 찼던

마음의 파동도,

이 투명한 거울 앞에서는 잔잔해졌다.


오르비고 다리를 건너는 순례자들의 장엄한 행렬,

아스팔트의 열기를 뚫고 온 이들의 배낭 위에는

고단한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아 있었다.


수백 년을 버텨온 스무 개의 아치는

비바람 대신 순례자의 거친 숨소리를

묵묵히 채워 넣고 있었다.


스틱이 돌바닥을 짚을 때마다,

"탕 탕 탕"

순례자의 숨 가쁜 맥박처럼 정적을 깨웠다.







길은 정말 알 수가 없었다.


아름다운 풍경으로 유혹하고는,

가혹한 시련으로 나를 시험했다.


끝없이 펼쳐진 옥수수밭의 아름다움에 취해

가뿐하게 내딛던 발걸음 뒤에는,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자갈길이 숨어 있었다.


발바닥을 파고드는 자갈의 통증으로

나는 다시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했다.


목적지인 '아스트로가'를 앞에 두고

'용서의 언덕' 자갈길을 다시 마주한 것 같았다.


다시 뒷걸음질 치는 시간 앞에서,

나의 긴장은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마음을 조여왔다.


나는 발목을 접질리지 않기 위해

스틱에 의존해서 천천히 걸었다.


고통의 자길길이 끝나고 나타난 푸른 숲길은,

질식할 것 같던 순례자의 숨통을 탁 트여주는

'구원의 숲' 같았다.


그리고 그 숲의 끝에서 기적처럼 나타난

'천상의 도네이션 푸드코트'.


그것은 단순히 갈증을 채우는 장소가 아니라,

한계를 넘어선 나에게

더 걸을 수 있는 에너지를 충전해 주었다.








드디어 멀리서,

아스토르가 마을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얼마나 반갑던가!


고통 끝엔 언제나 충만한 기쁨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스토르가는

스페인 남부서부터 걸어온

'은의 길' 순례자들과


프랑스 접경지부터 서쪽으로 걸어온

'프랑스 길' 순례자들이 만나,


산티아고로 향하는 길목이었다.


마을에 도착하니,

'물 마시는 순례자의 동상'이 나타났다.


이 동상이 마시는 물은

고통을 지나온 순례자들의 영혼에 바치는

가장 숭고한 찬사 같았다.


오늘 가장 기대되었던 그 건축물이

바로 내 앞에 솟아올랐다.


그것은 바로 '가우디의 주교궁'이었다.


가우디는 평생 대부분의 작품을

바르셀로나에 남겼지만,


바르셀로나를 벗어나 지은,

단 세 개의 건물 중 하나가

바로 이 주교궁이었다.


아스트로가에 주교관을 건축하면서

레온에 카사 보티네스를 지었다고 한다.


스페인에 가우디가 없었다면....







오늘 내가 묵을 곳은,

수녀원이었던 건물을 개조하여 만든

공립 '산 자비 알베르게'였다.


워낙 크고 유명해서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길 위에서 여러 번 눈인사만 한,

홍콩인 순례자를 그곳에서 또 만났다.


그녀는 방탄소년단 팬이었고,

공연을 보러 한국에 간 적이 있다고 했다.


한국의 BTS를 좋아하고

한국 음식, 한국의 산을 좋아하는

한국말도 할 줄 알고

한국인 같은 홍콩인이었다.


30대로 보이는 한국인 남자과 함께

점심을 먹던 그녀는

나에게 자리를 함께 하자고 했다.


그는 고민이 하나 있었다.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룸메이트를,

이곳에서 또 만났다고 했다.


그 룸메이트가 덥다고

알베르게 창문을 활짝 열고 자는 바람에,

그는 지금까지 감기로 고생이라고.


방을 바꿔달라고 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고 했다.


순례길에서는

피하고 싶은 사람이 늘 존재한다.


내 룸메이트인, 그녀와 그였다.


좁은 욕실에서 마주친 빨간 머리의 그녀는

내가 줄을 끼어들었다고 오해한 듯

날이 서 있었다.


줄을 잘못 알았노라

정중히 사과를 건넸음에도,

그녀는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동행한 남자에게 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미간을 찌푸리고,

동행자와 무례한 웃음을 터뜨리며

깔깔거리는 모습.


그 노골적인 조소 앞에 서자,

순간 가슴 밑바닥에서 불쾌감이

뜨겁게 치밀어 올랐다.


고요한 성찰을 방해하는 타인의 무례함은,

때로 스페인의 달궈진 태양보다 아프게

살을 파고든다.


하지만 나는 그 기분 나쁜 감정을,

스치는 바람처럼

무심히 흘려보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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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쾌함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대신,

나는 그곳을 빠져나와

아스토르가의 매혹적인 도시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한 건물의 생동감 있는 벽화가

내 눈에 들어왔다.


건물을 뚫고 병사들이 튀어나올 것 같은

생생한 묘사가 인상적이었다.


이 벽화는 19세기 초 반도전쟁 당시,

프랑스 나폴레옹 군대에 맞서 싸운

아스토르가 시민들과 군인들의 용기를

기리고 있었다.


수백 년 전 그들이 지키려 했던 것이

이 도시의 평화였다면,

오늘 내가 지키려 했던 것은

타인의 무례함에도 흔들리지 않는

내 안의 고요였다.


벽화 속 병사들이 뿜어내는

뜨거운 연기조차, 결국은

차가운 밤의 공기 속으로 흩어질

찰나의 흔적일 뿐임을

나는 깨달았다.


아스트로가 야경을 즐기고 나니,

타인이 던진 가시 돋친 시선들을

부드럽게 씻어주었다.


9월 말의 밤공기는 차가웠다.


살결에 닿는 그 서늘한 감촉은

낮 동안 달궈졌던 불쾌한 열기를 식히고,

혼탁해진 마음을 투명하게 씻어주었다.


그 차가운 밤공기를 깊게 들이마시자,

비로소 내 안의 태양이

다시금 또렷한 자태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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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새롭게 펼쳐질 내일을 위해,

2층 침대에서 잠을 청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시끄러운 대화 소리에 잠이 깼다.


그들이었다.

낮에 나를 비웃던 그녀와 그녀의 동행자.


바에서 한 잔 하고 흥이 나서

왁자지껄 떠들며 들어왔다.


시계를 보니, 자정이 다 되었다.

나는 완전히 잠이 깼다.


그녀의 동행자는 눕자마자,

천둥과 같이 코를 골면서

곯아떨어졌다.


나는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워야만 했다.



"순례길에서는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다.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은
또 만나서 기쁘고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은
또 만나서 괴롭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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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밤,

당신의 마음에

별 하나,

놓고 갑니다."


[시안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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