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는 흉터가 아니라 별자리를 남긴다(순례길)

폰세바돈의 '철의 십자가', 슬픔을 묻다

by 시안블루



어둠을 건너온 무게는
비로소 날개가 되고,
비워낸 자리마다
다시 시작할 용기가 채워진다



아스토르가 도시의 활기는

저만치 멀어지고,

'폰세바돈'을 향해 떠나는 길은

안개가 자욱했다.


"안개가 세상의 소음을 지우고,

그 고요 속에서 나는 비로소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내 안의 깊은 내면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폰세바돈의 '철의 십자가'를 향하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나는 무엇을 그토록 꽉 쥐고 있었기에

이토록 무거웠던가."


한 걸음 뗄 때마다,

고국에서부터 배낭 깊숙이 품어온

슬픔과 후회의 무게를 일깨주었다.








안개는 태양의 기세에 못 이겨 흩어졌다.


안개가 걷히고 태양이 길을 비추는 순간,

비로소 깨달았다.


안개 뒤에 가려진 슬픔, 후회, 미련들을

이 길의 끝에 있는 '철의 십자가'에

내려놓으라는 것을.


안개가 걷히고 나니,

풍경은 눈부시게 선명한 제 얼굴을 드러냈다.

길가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들과

끝없이 펼쳐진 산맥의 능선,

그리고 울창한 숲길은

폰세바돈으로 향하는 산길의 풍경이었다.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풀들을

평화롭게 뜯는 소들을 보니,

숨 가쁘게 뛰던 심장박동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순례자들이 잠시 쉬어가거나 머무는 쉼터,

'그린가든'에는 텐트들이 있었다.


배낭을 내려놓고 캠핑을 준비하던

한 순례자는 해맑은 미소로 인사를 건넸다.


"밤에는 추운데, 텐트에서 어떻게 자?"

내가 물었다.


산속의 밤은 뼛속까지

시린 냉기가 찾아오겠지만,

침낭과 담요 하나면 그만이라 했다.


머리 위로 쏟아지는 별빛 속에서 잠이 들고,

이슬 맺힌 새벽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텐트 안에서 밤을 지새울 그 순례자의 담요 속에는,

아마도 오늘 하루 안개를 뚫고 걸어온

장엄한 이야기들이 따뜻하게 채워질 것이다.







폰세바돈 마을 입구에는,

길을 지키는 파수꾼처럼

투박한 나무 십자가 하나가 서 있었다.


하늘과 가장 맞닿은 산 위의 마을은

세상의 소음을 모두 안갯속에 가둔 듯,

고요하고 경건했다.


'철의 십자가'를 마주 하기 전,

마을은 나에게 먼저 침묵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듯했다.


나는 오늘 묵을 '엘 콘벤토'에 도착했다.


'엘 콘벤토'는 스페인어로

'수도원'이라는 뜻이다.

중세의 순례자들이 머물던,

바로 그 영적인 토대 위에 세워진

숙소이자 바(bar)였다.


전통적인 돌벽 건물의 질감을 그대로 살려,

중세 시대의 수도원에 머무는 듯한

신비롭고 경건한 분위기를 주었다.


내일 새벽,

철의 십자가 아래

무거운 마음의 돌을 내려놓기 전에,


오늘의 고단함을

기꺼이 잠재우는 곳이었다.










새벽이 나를 흔들어 깨우기 전,

먼저 눈이 떠졌다.


'철의 십자가'를 마주할 묘한 떨림으로,

어제의 나를 이 새벽의 끝에 묻어두고

저 타오르는 빛과 함께

새로운 나를 맞이하는 순간을 기대하며.


나는 알았다.


"가장 깊은 어둠을 견뎌낸 사람만이,

저 은은하게 퍼지는 빛의 무게를

온전히 가슴에 담을 수 있다는 것을."


드디어,

폰세바돈의 '철의 십자가'를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순례길에는,

해발 1,505 높이에 우뚝 서있는

'철의 십자가' 앞에 돌을 놓고 가는 전통이 있었다.


돌의 무게가 각자 짊어진 내면의 죄책감과 부담을 상징하며, 자신의 짊어진 부담을 내려놓는 의식이었다.


이 얼마나 기다려 왔던가!


높이 6미터의 떡갈나무 기둥의 '철의 십자가'는 기대만큼 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내 소망이 하늘에 닿을 듯, 높이 솟아 있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순례자들의 간절함이 담긴 돌들이

그 앞에 높이 쌓아져 있었다.


그동안 순례자들이 하나씩 쌓아 올린 돌들에

마음이 숙연해졌다.


고국에서 가져온 사람,

길을 걸으면서 돌을 주은 사람,

돌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쓰는 사람 등 다양했다.


'엄마의 무덤'으로부터 품어온 돌 하나,


그 속에 엉켜있던 숱한 슬픔과 미련,

차마 떨치지 못한 후회들을

이제야 내려놓았다.



촛불을 켜두셨군요

내가 어둠에서
길을 잃고 헤맬까 봐

당신을 태워
나를 환하게 비춰 주시고

빛으로 사라진 당신
이젠 제가 당신을 위해

촛불을 켜둘게요



내가 걸어온 어둠은
단순히 빛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내 안의 가장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해묵은 감정들을
마주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했던
성찰의 길이었다.








"오늘밤,

당신의 마음에

별 하나,

놓고 갑니다."


[시안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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