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방식으로 글쓰기 연습
요즘 '최강야구'에 푹 빠져 있다. 한편 한편 보다 보니 그 매력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매주 '최강야구' 업데이트 날을 기다리고, 선수들의 유튜브를 찾아보고, 직관을 가고 싶어 티켓팅에 도전해보는 팬이 되었다.
'최강야구'는 경기의 승부를 중심에 두고, 야구에 진심인 83살의 김성근 감독님과 은퇴한 프로야구 선수들의 삶과 도전을 배치한다. 한때 잘 나가던 선수들은 '몬스터즈' 팀에서는 다시 연습하고 런닝한다. 불펜에 앉아 있는 신세가 되어 한탄하기도 하지만, 또 경기를 위해 움직인다. 은퇴 후 편하게 살 수 있었던 선수들의 도전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인 프로그램인데, 여기에 대학생 선수들의 이야기가 추가된다.
경기 중에 어이없는 실수를 해서 김성근 감독님에게 혼이 난 '원성준'이라는 대학생 선수가 있다. 감독님은 연습장에 나타난 원성준 선수에게 '연습하지 말고 가라'라고 한다. 원성준 선수는 당황하지만 그냥 운동장을 뛴다. 이 와중에 비까지 오고, 3시간을 달린다. 프로야구 드래프트도 떨어지고 엄마와 부둥켜안고 우는 원성준 선수를 보면서 나도 함께 울었다. 그런데 정말 드라마처럼 원성준 선수는 육성 선수로 프로 팀에 들어가는데 , 곧 1군이 되어 홈런까지 친다. 그 후 프로 심사 전에 김성근 감독님이 원성준 선수에게 1:1 코칭을 해주었다는 뒷 이야기가 유튜브에 공개된다. 이쯤 되면 예능 프로그램과 현실이 섞여 하나의 거대한 서사가 완성되는 것이다.
우리들은 고난을 극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고난을 극복해 낸 사람들에 감정이입하며 마치 자신의 일인 양 울고 웃는다. 나도 저 사람처럼 고난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며 힘을 얻는다.
우리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들었고 읽었던 명작동화, 전래동화 역시 그랬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흥부는 놀부 형님에게 미움을 받으면서 고난을 겪지만 까치를 돌봐주는 따뜻한 마음 덕분에 부자가 되고, 계모에게 구박을 받던 신데렐라는 12시 땡 하기 전에 파티장을 벗어려 고군분투하다 신발 한 짝을 흘리고, 그 덕에 왕자를 만난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이런 이야기들이 어린 시절 우리들의 즐거움의 원천이었다. 말이라는 것이 생긴 순간부터 인류는 동굴에 불을 피우고 둘러앉아서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고, 이야기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 삼촌, 이모들에게 들었던 이야기는 물건 판매에까지 사용된다. 사람들은 이야기에 혹해 지갑을 연다. 태풍 때문에 사과 농사를 마친 일본의 아오모리현에서, 태풍에도 떨어지지 않은 사과에 '풍속 53.9m/s의 강풍에도 떨어지지 않는 합격사과'라 이름 붙여 판매해 큰 수익을 거둔 것처럼.
여기에서 '스토리텔링'이라는 것이 의미를 가진다. 스토리텔링은 '스토리(story) + 텔링(telling)'의 합성어로서 말 그대로 '이야기하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즉 상대방에게 알리고자 하는 바를 재미있고 생생한 이야기로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행위이다. (문학비평용어사전, 2006. 1. 30., 한국문학평론가협회)
‘스토리텔링’이란 말이 오늘날처럼 중요해진 것은 수십 년밖에 되지 않으나, 그 행위 ‘곧 이야기하기(짓기)’ 혹은 ‘사건 서술하기’는 인류가 항상 해온 아주 기본적인 활동이며 다른 담화 활동에 비해 비중도 매우 크다. 이것이 삶에서 얼마나 보편적이고 긴요한가는, 굳이 소설이나 영화를 예로 들 것 없이, 일상생활을 살펴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얼굴을 맞대고 하는 대화는 물론 전화, 전자우편 따위를 이용하여 우리는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며 산다. 형이 먼저 잘못을 저질렀다고 어머니한테 울며 ‘이야기’하는 동생의 말에서부터, 사회적으로 요란스러운 스캔들의 보도 기사와 재판에서 하는 변호 및 판결문에 이르기까지, 사실을 전달하고 인정받는 일이 다름 아닌 사건 ‘이야기’의 진실성과 설득력에 달려 있음을 깨닫게 되면, 그 보편성과 중요성에 새삼 놀라게 된다. 고소설 『춘향전』에 등장하는 춘향을 사당까지 지어 모시는가 하면, 컴퓨터 그래픽 영상이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그려내어 실제처럼 보여주는 데 이르면, 우리가 허구와 사실이 뒤섞인 이야기 나라의 백성으로 살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야기가 전하는 정보와 함께, 이야기가 ‘만들어내는’ 이미지와 관념은 인간의 삶을 아주 넓고 깊게 지배하고 있다.
- P25, 스토리텔링, 어떻게 할 것인가, 최시한
우리 같이 평범한 사람이 글쓰기도 마찬가지이다. 고난을 극복하는 과정을 담는 스토리텔링 방법으로 쓰인 글은 술술 읽히고 재미가 있다. 더 읽고 싶은 마음이 든다.
고난 극복을 하는 사람이 꼭 유명한 사람일 필요는 없다.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가 더 가깝게 다가오는 법이니까. '최강야구'에서 유명한 전직 프로야구 선수들의 고난극복 스토리보다 '원성준 선수'의 고난극복 스토리가 더 감동을 주듯이 말이다.
'고난'이라는 것의 정도도, 생명이 오갈 정도로 심각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들의 일상에서도 얼마나 많은 위기가 발생하는가. 그리고 그 위기를 극복하면서 우리는 또 살아간다. 그것을 글에 담으면 생생하게 다가온다.
매주 월요일 받고 있는 글쓰기 수업에서 지난 주에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글쓰기>에 대해 배우고 숙제를 받았다. 아래와 같은 템플릿에 일상에서 발생한 일을 가지고 채워보는 것이 숙제다.
1. 배경, 등장인물
2. 목표
3. 방해요소
4. 고군분투
5. 절정
6. 해피엔딩
요즘 나의 고군분투는 무엇이었나 생각해 봤다. 처음에는 별 어려움이 없었던 것 같았는데 하나의 사건이 떠오르니 마구 떠오른다.
<첫 번째 이야기>
1. 배경, 등장인물 : 우리 집은 시원한 집이라 선풍기만으로도 여름을 잘 지내왔었다. 그런데 이번 여름은 너무 덥다. 점심만 먹으면 카페로 나가야 할 정도다.
2. 목표 : 이 와중에 공저를 쓰고 있다. 공저 퇴고를 하면서 매일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 중이다.
3. 방해요소 : 냉장고 상태가 이상하다. 아이스크림이 녹는다. 며칠 지나니 냉동실에 있는 것들이 슬슬 녹기 시작한다. 더운 여름, 가족들이 식중독이 걸리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냉장고가 신경 쓰여 글쓰기에 집중이 안된다.
4. 고군분투 : 인터넷을 뒤져서 문제가 뭔지 찾아봤다. 남편이 냉장고 뒤를 뜯어서 살펴봤지만 방법을 모르겠다. 결국 서비스센터에 연락을 했는데 10일이나 지나야 온단다. 그때까지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빨리 먹어야 하는 것은 얼른 먹어치우거나 이웃에 나눠 주었다.
5. 절정 : 냉동실에 숨어있는 한우 소고기 한 움큼을 발견했다. 이건 절대 버릴 수 없으니, 더운 여름날 소고기 미역국을 끓였다. 다음 날, 냉동실에 한기가 없다. 더 이상 먹을 음식도 없다. 아이들과 마트에 가서 간편식을 사들였다. 아이들은 오래간만에 캠핑 간 것 같다며 재밌어한다. 그래, 당분간 캠핑장인 듯 살아보자. 요리 안 해도 되니 글 쓸 시간이 더 생기는 듯했지만, 신경은 온통 냉장고로 향해 있다.
6. 해피엔딩 : 예상보다 3일 빠르게 서비스센터 아저씨가 방문했다. 냉장고는 고장 났단다. 바로 냉장고를 구입했다. 이 와중에 공저 퇴고를 마무리해서 넘겼다. 다음 날 집에 도착한 냉장고에 여유롭게 음식을 채울 수 있게 되었다. 냉장고 없이 일주일 넘게 살아봤다. 이제 냉장고는 60%만 채우는 것이 좋다는 안내를 따라 미니멀한 냉장고 살림을 해보련다.
이 외에도 서울에서 생긴 약속을 위해 이동하던 중 배가 아파 지하철에서 내렸는데, 화장실을 2번이나 오가야 해서 30분이나 늦어버린 일도 있었다. 글을 써야 하는데 3일 연속 술 약속이 있었던 바람에 완전히 뻗어서는, 한밤중에 일어나서 억지로 억지로 글을 썼던, 뿌듯했던 경험도 있다.
글을 쓰기 시작하니 나에게 닥친 이런 소소한 고난들도 글감이 된다. 이런 고난이 글 쓰는 재미를 더한다.
과거 내 삶의 고난은 어떤가. 첫사랑에 대한 기억만으로 수십 편의 노래를 만드는 작곡가, 작사가들처럼, 과거의 역경, 고난, 고군분투는 이제, 나의 커다란 글감 덩어리다. 그중 한 부분, 한 부분을 떼어내 한 편의 글을 쓴다. 내가 떼어내고 싶은 만큼만, 내가 보여주고 싶은 만큼만 떼어낸다. 그 고난은 어디로 사라지지 않으니.
위의 템플릿의 마지막은 해피엔딩이다. 나는 나의 고난을 해피엔딩으로 해석할 것인가 새드앤딩으로 해석할 것인가. 나의 고난은 내가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영원히 새드앤딩인 것들도 있다. 새드앤딩은 새드앤딩으로 그대로 둔다. 때로는 처절한 새드앤딩이 필요한 때도 있으니 말이다.
표지사진: Unsplash의 Etienne Girard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