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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문R Aug 21. 2024

좋은 글을 분석하며 베껴쓰자

내가 좋아하는 작가 글 모방하기

좋은 문장을 옆에 두는 매일을 만드는 '필사'


나의 취미 중 하나는 '필사'다. <영어 100일 필사의 기적>로 시작한 필사는 한글필사로도 이어져서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김용택)>,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 법정 잠언집> 등의 짧은 글을 매일 필사한 후 <어린 왕자>를 통필사 했다. 지금은 <칼의 노래(김훈)>을 전체 필사하고 있다.

시작할 때는 나의 필사가 500일 가까이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이어질지 몰랐다. 펜을 들고 종이에 손으로 쓰는 것이 좋았다. 쓰는 행위 자체가 좋아서 만년필을 사기 시작했고, 만년필 쓰기 좋은 노트를 구입하고, 색색깔 잉크를 사모으기 시작했다. 이들을 사모으는 기간 동안 필사한 나의 노트가 쌓여갔다.


필사를 좋아하니, 블로그도 필사문구를 글감으로 해서 글을 쓴다. 필사를 하면서 글쓰기 실력이 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쓰는 행위가 좋아서 썼으니까. 어디선가 문장씩 옮겨 쓰는 것이 글쓰기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막상 쓰다 보면 잘 되지 않았다. 그래도 좋은 문장을 옆에 두고 매일매일을 지낸다는 것 자체가 좋았다.


 

'베껴쓰기'를 통해 다른 작가 따라 써보기


최근에 본 글쓰기 책들에서 '베껴쓰기'를 통해 쓰기 공부하는 방법을 발견했다. 본격적으로 글쓰기하고 있으니, 이왕 하고 있는 필사를 나의 글쓰기에 도움이 되도록 더욱 적극적으로 베껴 써봐야겠다.


<일기를 에세이로 바꾸는 법>을 쓴 이유미 작가는, 마음에 드는 작가가 있다면 그 작가의 에세이 한 꼭지를 통으로 필사한단다. 하루키 같은 에세이를 쓰고 싶다면 하루키의 에세이를 다 읽은 후 그중 열 편 정도를 필사하는 것이다.    


하루키의 에세이를 하나 골라서 통으로 필사를 해보는 겁니다. 제가 자주 쓰는 방법이기도 한데요. 질투가 날 만큼 마음에 쏙 드는 글이 있다면 그대로 옮겨 적는 거예요. 한 번만 해서는 천재가 아닌 이상 내 것으로 소화하기 힘들겠죠. 필요하다면 한 권을 통으로 다 필사해 봐도 좋습니다. 정말 하루키 같은 에세이를 쓰고 싶다면요. 그러나 보통은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그중 마음에 드는 에세이를 열 편 정도만 필사해 봐도 일정한 패턴이란 게 보일 거예요.

- <일기를 에세이로 바꾸는 법>, 이유미


<나는 말하듯이 쓴다> 강원국 작가는 원래 대통령의 생각과 문체를 베끼는 것이 업무인 연설비서관이었다. 베껴쓰기의 달인인 작가는 한때 강준만 교수를 모델로 삼아, 그의 칼럼을 읽고 따라 썼다고 한다. 칼럼 서른 편을 출력해서 세 번을 읽고, 구성을 따라서 써봤단다.  


한때 나는 강준만 교수를 모델로 삼았다. 그의 칼럼을 서른 편 출력해 세 번씩 읽었다. 처음에는 요약하며 읽었고, 그다음에는 비판하며 읽었다. 마지막으로 구성을 따라서 써봤다. 그의 칼럼이 일화로 시작하면 나도 서두에 일화를 놓았다. 고사성어를 인용하면 나도 주제에 맞는 고사성어를 찾아 소개했다. 이렇게 따라 쓰다 보니 그의 글 전개 방법과 글쓰기 기법을 알게 되었다.

- <나는 말하듯이 쓴다>, 강원국


강원국 작가는 모방을 통해 충분히 글을 쓸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문체가 좋은 모방할 대상을 찾은 후 집중적으로 읽고 따라 쓰라고 한다.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모방할 대상을 찾는 일이다. 모방할 대상이 칼럼니스트이면 그의 칼럼을 반복해 읽고, 소설가면 그의 소설을 모두 읽고, 시인이면 그의 시를 암송해 보라. 수필을 필사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단 집중적으로 해야 한다. 김훈작가의 형식을 본받기 위해 일정 기간 그의 소설만 읽는 식이다. 작가 중에는 문체가 좋은 사람과 내용이 좋은 사람이 있는데, 그중 전자의 책을 읽어야 한다.
 
- <나는 말하듯이 쓴다>, 강원국


위 작가들의 노하우에도 나오지만 그냥 따라만 써서는 배움에 한계가 있다. 분석하며 따라 써야 한다. 에피소드를 배치하는 방식, 글의 흐름을 짜는 방식, 문장을 끊는 방식들을 분석해야 하면서 따라 써야 한다. 그리고 한 작가의 글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것도 좋다.




사진: Unsplash의 Patrick Tomasso



베껴 쓰다 작가가 된 디킨스처럼, 베껴써 보자.


왜 글을 못 쓰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잘 쓰기는 어렵지만, 누구나 쓸 수는 있지 않은가. 글이란 걸 최초로 써야 하거나, 문자를 창제해야 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이미 누군가 써놓은 글이 있다. 남과 다르게 쓰기는 어려워도 남처럼 쓰는 건 힘든 일이 아니다. 그것이 배우기나 본받기 건, 또는 흉내내기나 베끼기건 거리끼지 말고 모방하자. 글을 못 쓰고 있다면 남이 써놓은 걸 덜 봤거나, 남처럼 쓰려는 노력을 덜 했거나, 절박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모방의 힘을 믿는다. 재능이나 소질이 없어도, 독서를 많이 하지 않아도 남의 글에 기대서 얼마든지 잘 쓸 수 있다고 확신한다. 내가 산증인이고, 또 증거다.

- <나는 말하듯이 쓴다>, 강원국


<나는 말하듯이 쓴다>를 읽다가 <크리스마스 캐럴>의 작가 디킨스가 필경사 출신이라는 것이 알게 되었다. 디킨스는 다른 사람의 글을 베껴서 책을 만드는 것을 업으로 하다가 작가가 됐다.  

이 책에는 이국종 교수의 책 <골든아워>에 대한 일화도 나온다. 강원국 작가가 이 책을 몇 장 읽지도 않았는데 김훈 작가와 문체가 닮아 있었다. 이국종 교수를 만났을 때 어떤 작가를 좋아하냐고 물으니, 교수는 “김훈 선생님을 가장 존경하고, 그분처럼 쓰고 싶은 게 소원입니다.”라고 했단다.


사람은 모방의 동물. 따라 하다 보면 창조도 하게 되고, 좋아하는 사람처럼 되고 싶어 따라 하다 보면 그 사람을 닮아가게도 되는 법인가 보다.  


나도 제대로 베껴서보려 한다. 내가 좋아하는 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를 통필사 하고 있으니, 며칠 전부터 에세이를 통필사하기 시작해다. 시작이 김민철 작가의 <모든 요일의 기록>이다. 하루 4~5편의 에세이를 읽고 그중 한 편을 필사하기 시작했다. 필사하고 구조 분석도 해볼 생각이다.



<모든 요일의 기록> 필사 중 



글쓰기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강원국 작가의 말처럼 우리 앞에는 이미 누군가가 써놓은 글이 있다. 훌륭한 작가들이 너무나도 많다. 적극적으로 모방하자.

물론 따라 쓴다고 하루키, 디킨스, 강준만 교수처럼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면 어떤가. 나만의 문체를 만들겠다고 끙끙거리면서 한 줄도 쓰지 못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따라쓴 시간이 쌓이다보면 나도 모르게 나의 문체도 만들어지지 않겠는가. 게다가 좋은 문장을 베껴 쓰는 그 감동의 시간들이 나에게 남으니 그것으로도 충분히 좋은 일이다.





표지 사진: Unsplash의 Kelly Sikke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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