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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문R Aug 26. 2024

글쓰기를 위한 메모는 다르다

발견한 글감을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

다이어리와 메모지를 옆에 두고 살아왔지만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다이어리 없으면 못 사는 사람이 되었다. 그것도 오로지 실물로 손에 잡히는, 손으로 기록하는 다이어리여야 한다. 온라인 다이어리를 이용하려 수차례 노력해 봤지만 실패했다. 일정이 생기거나, 수정되었을 때, 해야 할 일이 생겼을 때 무조건 다이어리를 펼쳐서 손으로 적어 왔다. 항상 다이어리를 가지고 다닌다. 다이어리가 없이 출근한 날, 하루종일 안절부절 했었다. 매일 밤 다이어리를 펴서 일정을 확인해야 마음이 편하다. 다음날 해야 할 일이 많아 머릿속에 생각이 가득한 날이면 벌떡 일어나서 다이어리에 적었다. 그럼 잠이 잘 잘 수 있었다.  

메모지도 마찬가지다. 내방 책상 위에도 메모지가 있고, 다이어리에 끼워 둔 메모지가 있고, 마루 책상 위에도 메모지가 있다. 그래도 메모온라인으로도 가능하다. 삼성 노트, 나에게 보내는 카톡 등을 활용해 메모를 한다.  


글쓰기를 시작하니, 나의 이런 메모하는 습관, 기록하는 습관이 유용하게 활용됐다.

글감이 떠오르면 기록했다. 매일 쓰기 위해서는 떠오른 글감을 날려버려서는 안 됐다. 달력 형태의 엑셀표를 만들어서 날짜에 맞춰 발행할 글감을 정리했다. 어떤 날은 2~3개의 글감이 떠올랐지만, 어떤 날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으니 글감을 저축해 두는 것이다. 또 손으로 쓰는 작은 노트도 준비했다. 핸드폰을 여는 것보다 손으로 기록하는 것이 빠를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방법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니 한계를 드러냈다. 1주일에 1,2개의 글감도 떠오르지 않는 경우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글감이 떠오르기를 기다리는 것으로는 글쓰기를 계속할 없었다. 글쓰기를 위해서는 다른 방법의 메모가 필요했다.  




'남을 받아쓰는 메모'가 아니라, '나를 기록하는 메모'가 필요하다.  


강원국 작가도 <나는 말하듯이 쓴다>에서 <대통령의 글쓰기>를 쓰고 나서야 메모를 하기 시작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전에는 남의 말을 받아쓰기를 한 것이지 자신의 메모가 아니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하루 한 개 메모하기도 어려웠지만, 매일 메모하다 보니 열댓 개씩 쓰는 날이 생기고, 그 결과로 <강원국의 글쓰기>를 쓸 수 있었다고 했다.

 1월, 강원국 작가의 북토크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강원국 작가의 책 <강원국의 인생공부> 발간 후 '최인아 책방'에서 진행한 행사였다. 질의응답 시간에 한 청중이 "생각을 정리하는 방법"에 대해 물었다. 그때도 강원국 작가는 "무조건 메모한다"라고 대답했다. "생각이 나면 무조건 기록하고, 기록한 것을 집에 가서 아내에게 얘기한다"면서 "그렇게 모아진 메모가 2,000개"라고 했다.

남의 말을 받아쓰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생각을 메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유미 작가의 책 <일기를 에세이로 바꾸는 방법>에는 작가 마스다 미리를 인터뷰한 에피소드가 나온다. 마스다 미리는 "항상 뭔가를 느끼면 '나는, 지금, 이렇게 생각했다'라고 머릿속으로 문장을 만들어 생각합니다. 감정을 흘려버리기 싫은 거지요. 잊어버리지 않도록 휴대전화에 메모하기도 합니다"라고 한다. 이유미 작가는 이때 '감정을 메모한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있었던 일을 메모하는 것을 넘어, 그 일에 대한 나의 감정까지 메모해야 하는 것이었다.


지금 나에게 일어난 일, 내 주변에서 발생한 일, 읽은 책, 예능 프로그램에서 발견한 인상적인 문구 등을 메모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그 일이 있을 때 했던 생각, 감정 등등을 메모하고 그때의 바람, 냄새, 햇살, 소리, 촉감 등도 모두모두 기록해두어야, 글쓰기를 위한 메모가 된다. 



사진: Unsplash의 Paolo Chiabrando



여러 도구 활용해, 메모를 습관으로 만들자    


강원국 작가는 글을 써야 할 때 생각하면 이미 늦었고, 평소 해놓은 생각을 글 쓸 때 써먹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 쓸 거리를 만들어두는 것을 메모라고 했고.


글쓰기가 어려운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쓸 말이 없어서다. 글을 쓰려면 자기 생각이 있어야 한다. 글을 써야 할 때 생각하면 이미 늦었고, 평소 해놓은 생각을 글 쓸 때 써먹어야 한다. 시험은 평소에 해둔 공부를 써먹는 것이다. 시험 볼 때는 문제를 풀어야지 그때 공부하려고 해서 되겠는가.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없는 것을 만들어 쓸 수는 없다. 있는 것을 불러내 문자로 적는 게 글쓰기다. 잘 쓰려면 쓸 말을 평소에 만들어두어야 한다.
평소에 쓸거리를 만들어두는 방법이 메모다. 하나하나가 글의 조각이 되니 메모를 일상화해야 한다. 글쓰기는 아이들 블록 놀이와 같다. 다양한 모양의 블록 조각을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는지가 관건이다. 블록 조각만 많으면 집도 짓고 자동차도 만든다. 글도 마찬가지다. 평소에 만들어둔 블록을 써먹는 게 글쓰기다.
- <나는 말하듯이 쓴다>, 강원국


나도 공저를 쓸 때, 블로그에 이미 써두었던 글들을 재료로 썼다. 메모하듯 써두었던 짧은 블로그 글에 에피소드를 추가하고 메시지를 정리하니 책에 들어갈 글로 바뀌었다. 블로그에, 브런치에 써두는 글도 블록조각이 될 수 있다.  


요즘 듣고 있는 글쓰기 수업에서 선생님은 매 수업마다 메모를 강조한다. 평범한 사람들의 하루도 글이 될 수 있다면서, 매일 아침 일기 쓰기를 제안한다. 아침마다 전날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일기를 쓰는 것인데, 얼마 전 수업에서 선생님은 여기에 사건에 대한 감정도 적어보라고 했다. 이렇게 끄적거리다 보면, 별것 아닌 것 같은 일상이 한 편의 글이 될 수 있다면서.

나는 매일 밤, 다이어리에 하루를 돌아보는 기록을 하고 있었다. 글쓰기 수업을 듣다 보니 나의 매일 밤의 기록을 글쓰기를 위한 기록으로 활용할 수 있겠다 싶어졌다. 내 감정, 생각, 오감으로 느꼈던 것들까지 추가 기록하면 되니 말이다.


글감이 떠오를 때마다 기록하는 작은 노트를, 내가 발견한 모든 것을 수집하듯 메모하는 노트로 활용하면 좋겠다. 독서노트로 사용하는 구글 킵은 온라인에서 수집한 것들을 메모해 두는 공간으로 사용하면 되겠고.


이렇게 블로그, 브런치, 하루 정리 다이어리, 수집 노트, 구글 킵, 카톡 나에게 보내는 톡 등을 활용해 메모를 습관으로 만들어야겠다. 작가 마루야마 겐지가 외출용 노트, 침대용 노트, 거실용 노트, 화장실용 노트, 직장용 노트 등 메모를 위한 노트를 여러 개 준비하듯이 말이다.


마루야마 겐지의 『아직 오지 않은 소설가에게』에서 작가의 메모에 대한 인상 깊은 구절을 읽었는데요. 그는 노트를 여러 권 준비하라고 말하면서 외출용 노트, 침대용 노트, 거실용 노트, 화장실용 노트, 직장용 노트 등 용도별로 나눠서 마련하라고 했습니다. 즉 곳곳에 노트와 메모지를 갖다 놓으라는 거죠. 이거야말로 메모에 대한 만반의 준비가 아닌가 싶습니다.
- <일기를 에세이로 바꾸는 법>, 이유미



글감은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주위에서 발견하는 것'이었다.  


얼마 전 염색하러 미용실에 갔다. 미용실에서 나는 주로 책을 읽는다. 지하철에서처럼 적당한 소음 속에서 책이 잘 읽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아이의 칭얼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주말 아침이라 그런지 부모 손에 이끌린 아이들이 많이 있었다.

이전 같았으면 계속 책을 읽었겠지만, 이번에는 책을 덮고 옆자리에 앉은 칭얼대는 5살 정도 되는 아이를 관찰했다. 우리 아이들 머리 자를 때는 어땠더라로 생각이 이어졌고, 쥐 파먹은 앞머리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추억에 잠겨 슬쩍 웃고 있는데, 이번에는 더 어린아이가 머리를 잘랐다. 우는 아이를 안고 어쩔 줄 몰라하는 엄마의 모습에서, 그 옛날 허둥지둥했던 나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 이걸로 글을 써야지!"

집에 오자마자 노트북을 켜고 블로그 글을 썼다. 미용실에서 느꼈던 여러 가지 감정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우다다다 썼다. 그래서 완성한 글이 아래의 글이다.


https://blog.naver.com/bluemoon_collect/223559196161


내 주변의 모든 일이 글감이다. 관찰하고, 사색하고, 기록하면 한 편의 글이 될 수 있다. 글감은 뿅 하고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잠시 멈춰 서서 둘러보며 발견하는 것이었다. 쓴다는 것은 이 과정을 꾸준히 반복하는 것이고. 그러니, 발견한 것을 붙잡아 글을 쓰기 위해 매 순간 메모를 하자.  


사람들이 글쓰기 요령을 자주 묻는데, 나는 일단 쓰고, 끝까지 쓰고, 자주 쓰고, 계속해서 쓰라고 말한다. 이 조건들을 모두 충족하는 것이 바로 메모다.
- <나는 말하듯이 쓴다>, 강원국


써야 합니다. 메모 행위를 귀찮아하는 순간 글은 빈약해질 수밖에 없어요. 이렇게 순간적인 감정, 생각, 분위기 등을 메모하는 것만큼 새롭게 알게 된 개념어, 몰랐던 단어, 흥미로운 상식, 독특한 정보 또한 꼭 필기해 두세요.
- <일기를 에세이로 바꾸는 법>, 이유미



표지사진: UnsplashKelly Sikke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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