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랑 Feb 20. 2018

너에겐 조금더 천천히 다가가려 한다

같은 시간,같은 속도, 그리고 너.

속도.

백터로 속력과 방향을 지니는 존재. 흔히 설명을 할땐 화살표라고도 많이 쓴다.


공돌이인 나는 때때론 네게 정말 흔한 반도의_이과_드립에서 나올만한 말들을 하곤 했다.  

친구들 역시 주위에 워낙 이과이과한 아이들이 많아서 그런가. 때론 사랑에 관한 이야기마저도 그러했다.  내가 아는 온갖 미사여구들을 붙여가며 설명해봤자 결론은 나는 정말 말을 못한다는 걸 깨닫는 순간 그냥 너와 내가 둘 다 공통분모로 가진 언어를 쓰는게 훨씬 나을거란 생각을 했다.


오늘은 너와 만난지 딱 한달이 되는 날이다.


작년 겨울 새로운 인연을 만나 2주간의 짧은 연애를 하곤, 상대가 잠수를 탄 그 날부터 비행기를 타고 영국으로, 아프리카로 날아가는 그 날까지 나는 이번년도는 차라리 훨씬 바쁘고 외롭게 살아가자고 결심했다.


나는 행복해도 되는걸까.

나는 과연 새로운 연애를 다시 시작해도 되는 걸까.


이 두가지 고민들이 머리속을 뒤덮는 순간 무수히 많은 생각들이 꼬리를 물며 나를 잠식해나갈 것을 이미 알기에 억지로 생각을 떨쳐내려해도 간간히 생각이 나는건 내 어쩔 수가 없는 나쁜 습관 중 하나였다.


차라리 아무런 생각도 감정도 느끼지않는,일상에 치이는,그런 기계 같은 삶을 살고싶었다.

나의 그 빌어먹을 감정때문에 망가진 순간들이,인연들이, 약속들이 너무 많았기에 말이다.


나도 모르게 달려오는 차 앞으로 성큼 걸어간적도, 술을 먹고 어두운 골목 구석에 주끄리고 앉아 중얼대던것도, 불과 1년이지만  이제는 기억도 나지않을 아팠던 시절들도.


그때는 너무 강렬했던 연필 자국이 이제는 자그마한 점 하나만을 남겨두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라져서.

네게 안겨 울며 하나도 알아듣지 못할 말들을 하며 감정을 쏟아부었던 날들에 따라 내 어두웠던 날들이 조금씩 빛 바랜 추억이 되면서.


서로 알고 지낸지 불과 한달 밖에 안되었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너무 네게 나를 많이 들어낸것 같아서. 가끔은 내가 생각해도 너무 빠를 정도로 너에게 다가가고 표현하는 것 같아서.


조금은 천천히.


너와 속도를 맞추려 한다.


오늘처럼 너를 몇번이나 잃어버리고 다시 만난 날 깨달은 것처럼.


네가 바라보는 세상을 나도 같이. 바라보려한다.


누군가는 그랬다.

차라리 덜 뾰족한 연필로 너를 새길 걸 이라며,헤어진 후에도 지나치게 남아있는 흔적들을 보며 슬퍼했다.


그런데 나는 너를 천천히 진하게 그리고 깊게 내 종이에 새겨넣고 싶다.


나중에 얼마나 후회되고 아플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여태껏 내가 해왔던 실수들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다.


너와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있으면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지 않는 그런 실수나.


내가 네 전부가 되어주겠다는 약속이나.


모든 시간을 나와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말이나.


네가 부담스럽다고 느껴질 정도나 지칠 수준으로 다가고 싶지는 않다.


대신 네가 나를 필요로 할 때에는 내 모든 힘이 닿을때까지 너를 지켜주고 지지해준다고 약속해 줄 수 는 있다.


나는 네 일상에 스며들어 네가 나로 인해 웃었으면 좋겠다.


비록 내 가속도가 네것에 비해 몇배는 빠를지라도 억지로라도 천천히 너와 발걸음을 맞추려할테니.


뛰지말아요. 내가 그리로 갈테니.

같이 조금은 천천히 즐겨봐요. 다가오는 이 봄을.



매거진의 이전글 전달되지 않을 편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