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시간,같은 속도, 그리고 너.
속도.
백터로 속력과 방향을 지니는 존재. 흔히 설명을 할땐 화살표라고도 많이 쓴다.
공돌이인 나는 때때론 네게 정말 흔한 반도의_이과_드립에서 나올만한 말들을 하곤 했다.
친구들 역시 주위에 워낙 이과이과한 아이들이 많아서 그런가. 때론 사랑에 관한 이야기마저도 그러했다. 내가 아는 온갖 미사여구들을 붙여가며 설명해봤자 결론은 나는 정말 말을 못한다는 걸 깨닫는 순간 그냥 너와 내가 둘 다 공통분모로 가진 언어를 쓰는게 훨씬 나을거란 생각을 했다.
오늘은 너와 만난지 딱 한달이 되는 날이다.
작년 겨울 새로운 인연을 만나 2주간의 짧은 연애를 하곤, 상대가 잠수를 탄 그 날부터 비행기를 타고 영국으로, 아프리카로 날아가는 그 날까지 나는 이번년도는 차라리 훨씬 바쁘고 외롭게 살아가자고 결심했다.
나는 행복해도 되는걸까.
나는 과연 새로운 연애를 다시 시작해도 되는 걸까.
이 두가지 고민들이 머리속을 뒤덮는 순간 무수히 많은 생각들이 꼬리를 물며 나를 잠식해나갈 것을 이미 알기에 억지로 생각을 떨쳐내려해도 간간히 생각이 나는건 내 어쩔 수가 없는 나쁜 습관 중 하나였다.
차라리 아무런 생각도 감정도 느끼지않는,일상에 치이는,그런 기계 같은 삶을 살고싶었다.
나의 그 빌어먹을 감정때문에 망가진 순간들이,인연들이, 약속들이 너무 많았기에 말이다.
나도 모르게 달려오는 차 앞으로 성큼 걸어간적도, 술을 먹고 어두운 골목 구석에 주끄리고 앉아 중얼대던것도, 불과 1년이지만 이제는 기억도 나지않을 아팠던 시절들도.
그때는 너무 강렬했던 연필 자국이 이제는 자그마한 점 하나만을 남겨두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라져서.
네게 안겨 울며 하나도 알아듣지 못할 말들을 하며 감정을 쏟아부었던 날들에 따라 내 어두웠던 날들이 조금씩 빛 바랜 추억이 되면서.
서로 알고 지낸지 불과 한달 밖에 안되었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너무 네게 나를 많이 들어낸것 같아서. 가끔은 내가 생각해도 너무 빠를 정도로 너에게 다가가고 표현하는 것 같아서.
조금은 천천히.
너와 속도를 맞추려 한다.
오늘처럼 너를 몇번이나 잃어버리고 다시 만난 날 깨달은 것처럼.
네가 바라보는 세상을 나도 같이. 바라보려한다.
누군가는 그랬다.
차라리 덜 뾰족한 연필로 너를 새길 걸 이라며,헤어진 후에도 지나치게 남아있는 흔적들을 보며 슬퍼했다.
그런데 나는 너를 천천히 진하게 그리고 깊게 내 종이에 새겨넣고 싶다.
나중에 얼마나 후회되고 아플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여태껏 내가 해왔던 실수들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다.
너와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있으면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지 않는 그런 실수나.
내가 네 전부가 되어주겠다는 약속이나.
네 모든 시간을 나와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말이나.
네가 부담스럽다고 느껴질 정도나 지칠 수준으로 다가고 싶지는 않다.
대신 네가 나를 필요로 할 때에는 내 모든 힘이 닿을때까지 너를 지켜주고 지지해준다고 약속해 줄 수 는 있다.
나는 네 일상에 스며들어 네가 나로 인해 웃었으면 좋겠다.
비록 내 가속도가 네것에 비해 몇배는 빠를지라도 억지로라도 천천히 너와 발걸음을 맞추려할테니.
뛰지말아요. 내가 그리로 갈테니.
같이 조금은 천천히 즐겨봐요. 다가오는 이 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