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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랑 Jun 15. 2018

옅어지는 그리움

부제: 한 발씩 천천히 너와 정말 작별이야.

오랜만에 이렇게까지 취할 수 있을까 하는 느낌으로 술을 마셨었다.


근 2주간 마신 술의 양이 거의 대학교 1학년 내내 마신 술의 양과 비슷할 정도이니 할 말은 다했다고 본다.  


술을 잘 먹는 편도 아닐뿐더러 주위의 술을 잘 마시는 친구들과 비교해 

술이 몸에 잘 맞는 편도 아니기에 그저 기분이 내킬 때 마시곤 하는 편이다.

 

우슷갯소리로 술로 샤워를 한다는 친구들이나 

동이 틀 때까지 술을 먹어도 취하지 않아서 슬프다는 친구들을 보면 

가끔은 저 정도는 아닌 게 다행인 건가 싶기는 하다. 


적당히 마신 후에 나의 반응은 크게 2가지로 나뉘곤 하는데 하나는 어떻게든 정신을 부여잡고 바깥공기를 좀 쐬고 오겠다며 돌아다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제야 슬며시 내 고민들과 생각을 엄청나게 긴 서사시를 쓰듯 풀어놓는 것이다. 


보통 나의 숨겨둔 이야기는 술을 어느 정도 마신 후에서야 

나도 주저리주저리 말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들이기에, 

어느 정도 나를 잘 아는 친구가 아니고서야 딱히 나의 그런 이야기들을 듣지는 못할 테지만 

요즘은 계속해서 드는 고민들 속에서 약간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나는 보통 한번 미련이 사라진 것에 대해서는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연애가 끝나고 나서도, 아무리 오래 사귀었다 하더라도, 나에게 이제 더 이상 아무런 감정이 남지 않는다면 혹은 내가 더 이상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굳이 연락할 이유도 관심도 딱히 가지지 않는다. 친구 관계에서도 평소에는 연락을 잘 안 하다가 뜬금없이 갑자기 연락을 하는 경우가 다반수이며 특히 나의 근황이나 성격 삶에 대해서는 딱히 그렇다 할 이야기들을 하지 않는다. 

물건의 경우에도 정말 정이 들고 소중했던 것들이라도 쉽게 버리곤 하며, 

흥미가 있던 분야 등 거의 모든 것에 해당이 된다고 보면 될듯하다. 


반대로, 그만큼 뭔가 끝맺음이 나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는 아무리 먼 곳이라도, 

아무리 시간이 많이 지났어도 그 결말을 스스로 납득하고 끝났다는 느낌이 들지 않으면 계속해서 찾고 그리워한다. 그래서인가 친구들 중에서는 가끔 사람을 대할 때 태도가 너무 달라진다며 핀잔을 주던 친구들이 몇몇 있다. 


어쨌든. 참 잊고 싶은 기억들이 많았던 요즘, 

그 길고 길었던 이야기에 드디어 물음표가 아닌 마침표로 문장을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 누구에게도 감히 말하지 못했던 생각들. 

그 모든 것들을 천천히 하나둘씩 내뱉으며 계속해서 기억을 부수어 나갔다.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너무 늦었다는 생각과 동시에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조차 참 역설적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정말 그 기억들을 다 없애버렸다면 애초에 이런 기록조차 하지 않을 텐데- 라며 술을 한잔 두 잔 계속해서 마셨다. 


이야기를 마시며 감정을 안주로 삼던 예전과는 다르게, 이야기를 한 겹 한 겹 뱉어낼 때마다 얽혀있던 감정들마저 같이 쿨럭 거리며 나왔고 그 빈 속을 나는 술로 다시 채워 넣었다. 술이 머리 끝까지 차올랐을 때 겨우 나는 너에 대한 서운함, 원망 그리고 그리움을 털어낼 수 있었다.  

   

네가 참 보고 싶은 밤이었다. 

동시에 나는 그 별이 무수히 빛나던 밤 너와 작별을 하러 걸어갔다. 


문득 떠올린 그 순간이 한때는 나의 전부였지
잊혀져 가는 모든 것이 그리워지는 요즘이지 - 넬 BLUE


이제는 정말 작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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