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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랑 Jul 07. 2018

네가 여전히 꿈에 가끔 나온다.

기억들은 서랍 속으로.  

오랜 시간이 흘렀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적어도 몇년은 되었을 법한

그런 행복하면서도 슬픈기억들이. 아니 사실은 매우 흔한 그냥 누구나 겪는 그런 이야기.


우리의 추억들은 사실 많은 글 속에 남아있지만, 동시에 남아있지 않기도 하다. 대부분은 고작 나의 치기 어린 감정들 뿐이었으니.


과거에 매여 뭐해 어차피 돌아올 수 없는 시간들인데- 라는 말에 참 많은 공감을 했었다. 아니 사실은 내가 타인에게 가장 많이 해주는 충고이자, 이야기였으니까. 후회없이 살면 된거고, 그게 좋은 추억으로 남기를 그저 바라보고 있으라고. 그땐 어찌 그리도 쉽게 얘기했는지 모르겠다.


여전히 네가 가끔은 꿈에 나온다. 그런 날일때면 사실은 이미 셔츠는 땀에 흠뻑 젖은 채로, 그 꿈들은 오전 내내 나를 괴롭히곤 했다. 네가 나오는 꿈은 항상 그 주변 인물들을 동반했다. 아니 단순히 그 당시의 주변인물들뿐만 아니라 내 모든 과거들을 말이다.


마치 졸업하고 나서 한번도 연락한적이 없는 중학교 1학년 때의 친구들이나, 초등학교 친구들 심지어는 5살 때 같이 놀이터에서 뛰어놀던 아이들까지도. 참 이상한 일이다. 네 생각도, 그 친구들 생각도 내 무의식 어딘가에는 남겨져있다는 걸까 하고 고민을 하게 된다. 나는 단 한번도 곱씹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어렵다.


항상 여름이 배경이다. 여름. 그 놈의 빌어먹을 여름. 차라리 덜덜 떨며 너무 시려서 울 수 있을 그 시간들에 나타나면 모를까. 너는 항상 여름이다. 눈 부시도록 빛나는, 그런 누가봐도 따뜻한 그런 풍경. 절대 내 꿈의 주인공이 네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너는 그저 몇초, 아니 몇 프레임도 안나오는 그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네가 툭툭 내뱉는 말들은 그 순간의 나를 강렬하게 파고든다. 설렘보다는 수없이 되새겨지는 벽의 단어들이었다.


수없이 많은 글들을 써 내리다 지웠고, 수없이 떠오른 생각들을 묻었다. 누군가 나에게 그랬다 .원래 기억하기 싫은 것들은 기록하는게 아니라고. 마치 슬픈걸 풀어내려고 기록하면 나중에도 그 감정을 다시 되돌아보게 되니까, 그냥 행복한 것들만 기록하라고. 미완의 글들은 나의 서랍장에 하나 둘 처박히다 결국 내 손으로 그 글들을 찢어버렸다.


언젠가는 당당히 마주할 수 있는 기억임을 분명 알아도, 아니 사실은 이제는 더 이상 아무런 느낌도 감정도 희망도 연민도 사랑도 두려움도 슬픔도 아닌 무의 감정이라 나는 여태껏 믿어왔음으로도 불구하고 너는 여전히.

여전히 내 꿈에 나온다.


그리고 그런 너를 보며 나는. 나의 되돌아갈 수 없는 감정들을 다시끔 부러워하게 된다. 그 당시에는 너무나도 당연해 보였던 것들이 지금은 하나도 그렇지 않다. 예전의 내 글들이, 내 삶이, 내 표현들이 멀어져보이고 마치 나는 절대 경험하지 않았을 듯한, 아니 참으로도 어색한 그런 이야기들이다.


차라리 보이지 않았더라면. 숨겨둔다 한들 사실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어차피 다시는 만날일이 없는 이야기인데.


네가 써준 가장 긴 한장의 편지만을 남겨둔채 모든 기억들은 이미 사라졌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은은한 나무향이 나오는 서랍장의 울부짖음을 외면하고 있다.   


조금 더. 조금더 시간이 지난 후에야. 내가 정말로 담담하게 그 이야기들을 다시 읽을 수 있을 때 쯤에야. 나는 그것을 과거라고 정의할 수 있을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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