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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랑 Apr 10. 2018

B612

그는 추락하는 모든 것 들을 사랑했다.  

참 어려워.

선택이라는 게, 책임이라는 게, 열정이라는 게, 사랑이라는 게.


'정해진 시간 속'이라는 말이 계속 머리를 맴돌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똬리를 틀어서 나가질 않아.

째깍. 째깍 째깍. 달려오는 초침들을 간신히 앞서 나가며

나는 또 도망쳐나가.

하지만 아니야. 내가 올바른 방향을 가는 것 같지는 않아.


"행복이 뭐야?" 그는 내게 물었어.

비행기가 추락했던 내게 그는 다가와

손을 내밀곤 같이 걸어나가자 했어.

저 지평선 너머로 까마득히 보이는 반짝이는 모래들.


"너는 행복해?"라는 그 단순한 물음에

차마 비행기를 버리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며

벙찐 표정을 짓던 내가

장미꽃 한 송이를 받곤 눈물을 흘렸어.


내가 무서워하던 건 구름 밑의 풍경이었어.

추워도 안전한 하늘.

내가 무서워하던 건 추락하는 거였어.

앞이 보이지 않아도 나는 뒤의 꼬리를 보며 위안을 얻었어.

나동그라진 고장 난 비행기가 되고 싶지 않았어.


불시착. 연료 부족. 엔진 고장.

하나도 되는 게 없는 날들이었어.

역시 내려오면 안 되는 거였다고- 혼자 계속 중얼거리며 떨었더래지.


천천히 모래 속으로 한 발씩 걸어나가면서

내려와서야 만 비로소 내가 하늘에 그린 그림을 봤어.

그제야 나를 둘러싸던 별들을 봤어.


모래 속에 숨어있던 사막의 꽃을 보았어.


"때론 떨어져야지만 보이는 것들이 있어.
그런데 우리가 그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는 건
떨어지고 나서의 상실감 그리고 아픔이 커서야."

"아픈 걸 어떡해. 아무리 준비해도 나는 항상 아프고 슬픈걸."

"그렇지. 아프겠지. 하나도 모르겠고, 엉망진창일 거야. 
근데 조금 지나고 나니까 이제야 하나둘씩 내가 보지 못했던
내가 막연히 지나쳤던 길들이 보이더라고."


"그래서 행복해?"


"조금은. 조금은 숨 쉴 만 해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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