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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랑 Mar 12. 2019

커피 한잔과 마카롱 두 개

지독하게도 쓴 단맛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오랜만에 너와 항상 밤늦게 오던 카페에 왔다.

습관처럼 카피 한잔과 마카롱 두 개를 시키고 자리를 찾아 앉았다.

"마카롱 두 개, 커피 한잔 나왔습니다" 하는 소리와, 카페 음악, 그리고 사람들의 목소리들이 뒤섞이고 나서야, 나는 갑자기 네 생각이 났다.


11시면 대부분의 식당가가 닫는 이 대학거리에서, 10시 반이 되고 나서야 끝나는 내 늦은 수업들과 동아리 활동들을 감내할 수 있는 곳은 몇 군데 없었다. 우리의 데이트는 항상 밤늦은 시각에야 겨우 시작되었고, 몸이 약했던 너는 약간이라도 쌀쌀해질 때 산책을 하고 나서면 콜록거리며 춥다곤 얘기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네가 좋아하는 음료와 디저트를 팔고, 앉아있을 수 있으면서,  밤 12시에도 열려있는 그런 곳들을 찾기 시작했다. 너는 쓴 아메리카노보다는 녹차라테나 핫초코를 더 좋아했고, 케익이나 마카롱과 같이 달달한 것들을 더 좋아했다. 사실 너는 녹차가 들어간 모든 것들을 다 좋아했었다.


우리의 200일이 되던 날 - 사실은 이제는 가물가물한 날짜다. 뭔가 특별했던 것만 기억에 남을 뿐 - , 어김없이 나는 열 시 반이 지나고 나서야 너에게 막 이제 학관에서 나왔다며 전화를 걸었다. 우리가 가는 그 카페에서 볼 수 있냐며, 얘기를 하곤, 무작정 거리를 달리기 시작했다. 학관으로부터 20분이 걸리던 그 거리를, 나는 항상 너와 통화하며 달리던 그 거리는 항상 아름다웠던 것 같다. 나에게 오늘 어떤 일들이 있었고, 무엇을 했고, 무엇을 먹었고, 무엇 때문에 너무나 힘들었는지 투정을 부리던 너의 목소리는 항상 내게 웃음을 주었던 것 같다.


생각보다 선선하던 날임에도 불구하고 뛰어서 그런지 식은땀을 흘리는 나는 너와 함께 카페 안으로 들어가, 커피 한잔과 녹차라테 한잔, 그리고 마카롱 두 개를 시키곤 조용히 네 손을 잡으며 반지를 손가락에 끼웠다.

그날따라 꽉 차 있던 카페와, 카페의 음악소리는 다 백색소음처리가 되었고 나는 너의 얼굴을 웃으며 바라보기만 했다.


이미 한번 들켰던 반지지만, 그래도 조금은 더 특별한 날이니까.라고 스스로 중얼거리며 나름 긴장한 채로 네가 고개를 들기를 기다렸던 것 같다. 너는 얼굴이 약간 빨개진 채로, 웃으며 예쁘다고 속삭였다.


그날 이후로 나에게 그 카페는 더욱 특별한 장소가 되었다. 10시 반 카페 앞에서 만나는 건 우리의 암묵적인 규칙이자, 추억의 일부가 되었다.


나는 항상 카페 입구에서 나를 기다리던 네게 늦어서 미안하다 했고, 그럴 때마다 너는 매번 나에게 괜찮다며,  걱정된다면서 앞으로는 자기랑 전화할 때는 뛰어오지 말라고 얘기하곤 했다. 딸랑 거리는 종소리와 함께, 진열대 안의 케익과 마카롱들을 보며 우리는 오늘의 디저트를 고르고, 커피 두 잔을 시켰다.


나는 항상 브루 커피를 시켰고, 너는 항상 녹차라테를 시켰으며, 가끔 돈이 없던 날에는 커피 한잔을 사서 나눠 마시기도 했다. 항상 늦게까지 기다리는 너에게 미안했던 나는 매번 같이 계산해달라고 하며 카드를 내밀었다. 그러면 너는 항상 내가 돈을 막 쓴다고 자기도 자기껀 살 수 있다는 얘기를 했고, 괜스레 오기가 생겨서 나는 다음에는 더 맛있는 걸 사주겠다고 말하곤 했다.


내 한입에 사라지는 마카롱을 보며, 너는 나를 신기하게 쳐다봤다. 너는 나와는 다르게 그렇게 크지 않았던 마카롱도 두 세입에야 끝냈었고, 그마저도 아쉬운 듯, 이렇게 작은 게 비싸기만 하다며 투덜대곤 했다.  굳이 디저트 없이 나랑 그냥 얘기하는 게 좋다고, 커피만 마셔도 좋다는 너를 보며 나는 항상 뭔가 더 해주지 못해서 미안했던 것 같다. 나는 그런 돈들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는데, 하지만 그건 나의 오기였고, 치기 어린 자신감이었다.


부모님이 주신 용돈과 학비를 쓰는 나와는 달리 너는 장학금과 아르바이트를 통해서 스스로 학비와 생활금을 벌었다. 서로의 상황이 달랐고, 돈을 쓸 때의 가치관과 습관이 달랐고, 중시했던 것이 달랐던 우리는 가끔 다투기도 했던 것 같다.


가을에서 겨울로 시간은 넘어갔고, 날들이 추워지며 점차 너희 집에서 만나는 순간들이 더 길어졌을 때 즈음에도 나는 여전히 마카롱 두 개를 사들고 가곤 했다. 너는 내게 굳이 안 사 와도 된다고 투덜대며, 그래도 고맙다며 꼭 안아줬었다. 그걸 먹을 때며, 내게 하루의 일과를 조잘조잘 이야기해주는 너는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


어느 한 겨울, 방학 기념으로 당일치기로 기차를 타고 떠났던  그날은 내가 친구들에게 너를 소개해 준다며 식당을 늦게 나섰던 날이었다. 결국, 우리는 돌아가는 기차를 놓쳐 한 시간 반 후에나 오는 버스를 거리에서 추위에 떨며 기다리다가 카페에 들어갔다. 그날도 우리는 커피와 녹차라테 한잔, 그리고 마카롱 두 개를 시켰다.


그리고 그게 우리의 마지막 마카롱이었다.


더욱 바빠지던 날들을 보내던 중, 너는 내게 연애를 하면서도 외롭다고, 나를 기다리는 게 힘들다고 말했다. 자기는 내가 제일 우선순위에 있는 데, 나는 아닌 것 같다면서. 내가 해주는 무엇인가를 바라는 게 아니라, 그냥 같이 있어주는 그 순간들이 좋았다면서. 자기만 나를 너무 좋아하고 매달리는 것 같아서 지친다곤 말을 했다. 쉬는 시간에 잠깐 문자 한번 해주는 게 어렵냐면서, 굳이 꼭 어디 좋은 곳을 가고, 뭔가 멋있는 걸 할 필요는 없다며, 너는 내가 많이 변했다고 했다. 그 당시의 나는 어차피 곧 집에서 볼 거 굳이 연락을 해야 하나 싶었던 것 같다. 차라리 그 시간에 빨리 다른 것들을 끝내고, 너와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나는 괜찮은 줄 알았다. 그래도 매일 꼬박꼬박 너의 집에서 이야기를 나눴고, 가끔은 저녁을 같이 먹었고, 잘 자라며 문자를 보냈던 날들이었기에. 학기 끝이 될 쯤에는 동아리 회식들이 점차 늘어났고, 대외 활동들 때문에 내가 학교를 떠나는 날들이 잦아졌다. 너 역시 학기 중반보다 바빠 보여서, 나는 그저 네가 괜찮은 줄 만 알았다. 내가 취해서 너에게 전화를 거는 날들이 많아졌고, 연락을 못 받을 때가 늘어남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도 바빠서, 그냥 너도 이젠 너를 위해 더 시간을 쏟는 줄 알고 괜찮다며 넘겼던 것 같다.


너는 내 사소한 점들이 좋아서 나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했다. 자기가 뭘 싫어하고, 뭘 좋아하고, 길을 걷다가 추워 보이면 손을 꼭 잡거나, 안아주던 내가 좋아서. 자기만 더 바라봐주는 내가 좋아서, 그 날들이 행복했는데, 이제는 더 이상은 나를 예전만큼 좋아하지 않는 다고 했다. 너는 내가 이제 떠나도, 덤덤해지는 법을 연습했다며, 그렇게 울면서 말을 했고 그런 말을 하던 너를 나는 차마 붙잡을 수 없었다.


그 날 이후 나는 더 이상 이 카페에 온 적이 없었다. 학관 앞 5분 거리에 있는 카페나 도서관에서 커피를 마셨으면 마셨지, 마카롱은 더더욱 시켜먹지도 않았다. 꽤나 힘들었던 하루를 보낸 오늘, 요즘따라 더 단 게 땅겼던 나는 뭔가에 홀린 듯 카페에 들어와 앉았고, 내 옆에는 아직 뜯지 못한 마카롱 한 개가 남아있다.


초콜릿을 입에 달고 사는 나라면 두 개는 충분히 먹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마카롱은 너무 달았고, 나의 커피는 그 단 맛을 지워내지 못했다. 꾸역꾸역 해서 두 번째 것도 끝내 입에 넣어버렸지만, 지독하게 쓰면서 달았다.


괜시리 울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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