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과 식초

구원을 받기 위한 시련

by 황필립

삶의 문턱에서는 파도소리가 들린다.


거울 속의 바다가 흔들리고 벽 속의 웅덩이가 깊어진다.

벽을 직시하는 것과 거울을 직시하는 것 중에서 무엇이 더 쉬운 일인가? 벽에 고인 웅덩이 속의 눈과 거울 속의 눈을 피하려 안구를 불안하게 굴리며 눈을 깜빡인다.

그러나 잊어버린 것이, 그러나 이곳에서는

한 번 떴던 눈을 다시 감을 수 없고,

한 번 감았던 눈은 다시 뜰 수도 없다.


미쳐버린 여자, 억울한 여자는 바다에 몸을 던진다.

여자의 좌절된 욕망은 죄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여자들은 이런 식으로 상실을 배우기를 강요받는다. 이건 바로 세상이 유구하게 여자를 가르치려든 방식이다.


나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도 벽과 거울을 마주 볼 수 있을까?

벽과 거울 앞에 앉아 있는 몸은 나의 것이 아니다. 닫힌 창문의 틈새를 가까스로 열었을 때, 줄을 친 거미는 얼굴이 없다. 거미는 나에게 얼굴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는 내 몸 위를 기어 다니다 집을 짓고 번식을 한다.

얼굴이 없던 거미는 이제 얼굴을 가지게 됐다.


이 시대를 병든 몸으로 살아간다.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아무런 기대나 희망도 없이.

벽과 거울은 사라졌다.

나는 완벽하게 고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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