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28
그렇다면 아침에 먹는 약을 하나 추가해봅시다. 담당 의사가 말했다. 그럼 뭔가 달라지는 게 있나요? 한번 기대해봅시다. 약을 먹어보고 나아지는지 지켜보게요.
나는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로 작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는 미소를 지으며 한 달 후에 보자고 말했다.
진료가 끝난 후 문을 열기 위해 뒤를 돌면 진료실로 들어갈 때는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문 옆에 놓여있는 길쭉한 스탠드형 나무 옷걸이에 걸려 있는 얇은 여름용 회색 재킷이 보였다. 옷걸이에 걸린 옷으로 의사가 무슨 옷을 입고 출근했는지를 알 수 있었고 지금이 무슨 계절인지도 알 수 있었다.
항상 같은 자리에 놓여 있는 유화의 질감이 느껴지는 정물화 그림이 있는데 나는 이 진료실을 몇 년 동안 오고 갔는데도 정물화 속에 담긴 것들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두꺼운 책이 여러 권 그려져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원내 약국 앞의 의자에 앉아 순서를 기다렸다. 투약 번호 42. 내 투약 번호인 51번이 되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했다. 병원에서 진료를 대기하거나 투약 번호를 기다리는 시간은 언제나 무기력하며 지치고 힘들었다. 게다가 나의 예민한 신경을 더 예민하게 만들고는 했다. 소음, 냄새, 불빛이 뭉쳐져 만들어진 프로펠러가 머릿속에서 돌아가는 것 같았다.
알림음과 함께 순번 표시기에 붉은색으로 숫자 51이 깜빡거렸다. 투약구로 가자 약사는 아침에 추가된 약 한 알이 있다고 했다.
그건 어떤 약인가요?
지금 취침 전에 드시는 약 중에 불안이나 우울 증상을 낮추는데 도움이 되는 약이 있는데 대신 무기력하게 하고 집중하는 걸 방해하기도 해요. 이 약은 무기력하고 집중력이 낮아질 때 도움이 돼요.
제가 먹고 있는 수면제 두 알은 어떤 거죠?
여기 보이는 작은 흰색 알약 두 개예요. 같은 용량, 같은 약이 두 알 들었어요. 의사 선생님이 수면제 한 알을 조절해도 된다고 했나 봐요? 그럼 한 알만 드셔 보시고 만약 잠이 안 오시면 한 알을 더 드시면 돼요.
약사는 맑은 목소리로 설명을 끝내고 약을 종이봉투에 담아주었다. 약이 추가되어 한 달 전에 받았던 것보다 크기가 더 커졌다. 나는 그게 조금은 슬펐다.
집으로 돌아오자 창문을 다 열고 나갔는데도 온 집안이 열기로 가득해 후끈거렸다. 땀에 젖은 옷을 바닥에 아무렇게나 벗어던지고 욕실로 들어가 차가운 물로 머리를 감고 몸을 씻었다. 씻고 나면 개운하거나 기분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모든 게 그대로였다. 머리숱이 많아 덥수룩한 머리카락이 물에 젖어 무겁고 찝찝했다. 머리카락을 드라이기의 뜨거운 바람으로 말리는 것이 버겁게 느껴졌다.
이상하게도 병원에 다녀오면 견디기 힘들 만큼 지치고 기분이 가라앉았다. 선풍기를 틀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열린 창문으로 들어온 햇볕에 뜨겁게 달궈진 이불 위에 누워 몇 번 뒤척이다 눈을 감았다. 삼십 분 동안 깊은 낮잠을 자고 일어나면 기력을 회복하고 그 힘으로 사소한 무언가를 하기 시작해 나쁘지 않은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그리고 날이 저물어 밤이 오면 이제는 수면제를 한 알만 먹어도 잠을 잘 것이라고. 또한, 언젠가는 나도 말끔히 치료되어 약을 먹지 않아도 불안과 공포에 삶을 맡기지 않아도 되고 자살을 생각하지도 않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상처와 흉터는 기억이 조금도 나지 않는 아주 낯선 것이 된 삶을 살다가 아주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