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른연못 Jun 28. 2022

아침에 먹는 약을 하나 추가해봅시다

2022.06.28

그렇다면 아침에 먹는 약을 하나 추가해봅시다. 담당 의사가 말했다. 그럼 뭔가 달라지는 게 있나요? 한번 기대해봅시다. 약을 먹어보고 나아지는지 지켜보게요.

나는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로 작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는 미소를 지으며 한 달 후에 보자고 말했다.


진료가 끝난 후 문을 열기 위해 뒤를 돌면 진료실로 들어갈 때는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문 옆에 놓여있는 길쭉한 스탠드형 나무 옷걸이에 걸려 있는 얇은 여름용 회색 재킷이 보였다. 옷걸이에 걸린 옷으로 의사가 무슨 옷을 입고 출근했는지를 알 수 있었고 지금이 무슨 계절인지도 알 수 있었다.

항상 같은 자리에 놓여 있는 유화의 질감이 느껴지는 정물화 그림이 있는데 나는 이 진료실을 몇 년 동안 오고 갔는데도 정물화 속에 담긴 것들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두꺼운 책이 여러 권 그려져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원내 약국 앞의 의자에 앉아 순서를 기다렸다. 투약 번호 42. 내 투약 번호인 51번이 되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했다. 병원에서 진료를 대기하거나 투약 번호를 기다리는 시간은 언제나 무기력하며 지치고 힘들었다. 게다가 나의 예민한 신경을 더 예민하게 만들고는 했다. 소음, 냄새, 불빛이 뭉쳐져 만들어진 프로펠러가 머릿속에서 돌아가는 것 같았다.

알림음과 함께 순번 표시기에 붉은색으로 숫자 51이 깜빡거렸다. 투약구로 가자 약사는 아침에 추가된 약 한 알이 있다고 했다.


그건 어떤 약인가요?


지금 취침 전에 드시는 약 중에 불안이나 우울 증상을 낮추는데 도움이 되는 약이 있는데 대신 무기력하게 하고 집중하는 걸 방해하기도 해요. 이 약은 무기력하고 집중력이 낮아질 때 도움이 돼요.


제가 먹고 있는 수면제 두 알은 어떤 거죠?


여기 보이는 작은 흰색 알약 두 개예요. 같은 용량, 같은 약이 두 알 들었어요. 의사 선생님이 수면제 한 알을 조절해도 된다고 했나 봐요? 그럼 한 알만 드셔 보시고 만약 잠이 안 오시면 한 알을 더 드시면 돼요.


약사는 맑은 목소리로 설명을 끝내고 약을 종이봉투에 담아주었다. 약이 추가되어 한 달 전에 받았던 것보다 크기가 더 커졌다. 나는 그게 조금은 슬펐다.


집으로 돌아오자 창문을 다 열고 나갔는데도 온 집안이 열기로 가득해 후끈거렸다. 땀에 젖은 옷을 바닥에 아무렇게나 벗어던지고 욕실로 들어가 차가운 물로 머리를 감고 몸을 씻었다. 씻고 나면 개운하거나 기분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모든 게 그대로였다. 머리숱이 많아 덥수룩한 머리카락이 물에 젖어 무겁고 찝찝했다. 머리카락을 드라이기의 뜨거운 바람으로 말리는 것이 버겁게 느껴졌다.


이상하게도 병원에 다녀오면 견디기 힘들 만큼 지치고 기분이 가라앉았다. 선풍기를  생각도 하지 못한  열린 창문으로 들어온 햇볕에 뜨겁게 달궈진 이불 위에 누워   뒤척이다 눈을 감았다. 삼십  동안 깊은 낮잠을 자고 일어나면 기력을 회복하고  힘으로 사소한 무언가를 하기 시작해 나쁘지 않은 하루를 보낼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그리고 날이 저물어 밤이 오면 이제는 수면제를  알만 먹어도 잠을  것이라고. 또한, 언젠가는 나도 말끔히 치료되어 약을 먹지 않아도 불안과 공포에 삶을 맡기지 않아도 되고 자살을 생각하지도 않는 사람이  것이라고. 상처와 흉터는 기억이 조금도 나지 않는 아주 낯선 것이  삶을 살다가 아주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고.


작가의 이전글 한 가닥의 낡은 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