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로 나와 갈 곳도, 어찌할 도리도 없이 걷기 시작한다. 생각할 시간도 주지 않고 영하로 떨어진 날씨에 맨 바람을 맞는 귀가 떨어져 나갈 듯 아려온다.
신호를 기다리는 이들 모두 도착해야 할 목적지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정착할 곳도 없이 휑휑하게 걸을 뿐이다.
자동차가 내뿜는 매연처럼 죽음은 사람들의 곁에 너무도 자연스럽게 짙게 깔려있고 우리는 모두 죽음과 마주해야만 한다. 신호가 바뀌면 일제히 슬픔을 숨기며 무표정하게 걸음을 뗀다.
그러나 그들의 눈동자에는 언제나 동경과 사랑 그리고 염원이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