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묘비

살아 있다는 건 지워지지 않는 일

by 나목

기억의 묘비


임현숙



잔디밭에 여름이 끓는 날

햇살의 무게를 지고 앉아

잔디가 아닌 것들의 숨을 끊고 있다


들판이라면 들꽃이었을 이름

이곳에선 무단 침입자인 토끼풀

그 뿌리는 어둠 속 지도를 따라 멀리 번지고

손끝에 달려 나오는 것은
풀인지 어느 기억인지 분간되지 않는다


밑동이 햇빛을 보는 그 순간
응고된 숨이 먼지를 털고 일어선다

꽃반지를 만들던 날이 손가락에 피어나며

철없던 시절을 되짚어 보는

생의 오후


삶은 종종

잔디가 아닌 것들이
엄지손톱만큼씩 자라났고

내 삶 속에 살던 낯선 뿌리들
모두가 버려야 할 것이었을까


토끼풀이 지워진 자리엔

푸름이 번져가겠지만
어쩌면 초록의 무덤이 될지도 모를 일

나는 무성한 이름 없는 것들을 뽑아내며
그 자리에 기억의 묘비를 세운다


살아있다는 건

지워지지 않는 일이다.


-림(20250802)



https://youtu.be/rR4EqaFFa9k

keyword
작가의 이전글붉은 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