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저문 자리

또 다른 계절의 문고리를 당기며

by 나목


여름이 저문 자리


임현숙



매미의 마지막 구애는
깨진 도자기 조각에 흩어지는

물빛 울음이 되었다


짧아진 햇살이

그 조각을 움켜쥐려다
저녁놀에 붉은 핏방울을 흩뿌린다


여름의 꼬리를 추격하던 고양이
긴 하품을 밑줄처럼 그으며

노을 위에 눕는다


고양이의 계절은

초침처럼 똑딱, 똑딱 이어지지만


나의 속도는
나무 그늘의 베짱이와
땡볕의 개미 사이에서 출렁였다


잔칫집 케이크 위 촛불 같았던 내 여름,

사람들은 웃으며 박수를 보냈으나
불꽃 꺼지자 그을음만 남았다


올여름, 나는
고요 속에서 땀띠를 꽃피운 베짱이였다


이제 여름이 저문다며
북극 바람이 서늘한 전보를 띄운다


나는 베짱이 옷을 저녁놀에 던지고

개미 허리띠를 허리에 두르며

돌아온 계절의 문고리를 당긴다


그을음 속에서

불씨 하나 피어나기를.


-림(20250901)


https://www.youtube.com/watch?v=4W7sKoi8n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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