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고문
조금만
임현숙
비는 풀잎의 무릎을 꺾어뜨리며 쏟아지고
조금만을 기다리던 바람의 살갗에
번민의 질긴 뿌리가 자라났다
냉철한 가위로 순을 잘라도
번민은 자른 단면마다 새순을 틔워
마침내 깊고 어두운 숲을 이루고
그 숲은 기댈 ‘조금만’을 향해
굶주린 사자처럼 달려든다
조금만은
고등어 비린내가 무에 스며드는 시간
뜨거운 커피가 식어버리는 시간
다음 버스가 오는 시간 ㅡ
여러 얼굴로 다가오지만
끝내 하나의 마침표로 닫히는 약속이다
그러나 나의 조금만은
천만 번의 내일이 밀려와도
추측만 남긴 생략표처럼
허공만 점멸한다
희미한 기대에 뼈만 남은 하루는
그 미완의 약속을 으깨며
발바닥 깊숙이
말발굽 같은 징을 박아넣는다
오늘은 번민의 숲을 건너
하루를 오롯이 땀방울로 적셔야겠다
조금만은
사막 저 편에서 손짓하며
지친 마음을 고문하는 신기루였다.
-림(20181220)
https://www.youtube.com/watch?v=zN3jS9JhjM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