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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화일 Oct 17. 2023

작고 소중한 하늘색 도시

04. 셰프샤우엔 탐방


굿모닝, 셰프샤우엔.


반갑이가 그렇게나 자랑을 하던 숙소 테라스의 전경은 밤에도 낭만적이었지만 햇살 아래서 더 아름다웠다.



어디를 걷든 어느 방향으로 가든 하늘색 천지.

집집마다 다른 푸른색의 문들이 싱그럽다. 전날에는 어둠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도시의 귀여움이 이제야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투박하지만 아기자기하게 칠해놓은 스머프 색 벽들.



이 귀엽고 희한한 마을의 골목골목을 구경하다 보면 또 한 번 반갑게 맞이하게 되는 터줏대감들이 계신다.

나도 모르게 카메라를 들게 되는 장소마다

“여길 배경으로 날 찍걸아” 하는 듯한



고양이 선생님들.

탕헤르에서만큼이나 많이 계신다.

모로코라는 나라는 고양이들의 터전을 사람들이 잠시 빌려 사는 곳이 아닌지 몰라.



동네 구경 삼매경


반갑이 말대로 정말 작은 도시이지만 도시 전체가 언덕에 위치해 있어 경사가 꽤 있는 편이다.

특히 이 구역의 핫플, 메디나로 가기 위해서는 고지대를 쭉쭉 올라가야 한다.


남아 있는 사진들을 보면 시원하기 그지 없는데 그 속의 현실은 너무 더웠다.

탕헤르만큼 번화하지 않은 동네라 괜찮은 식당은커녕 메디나에 도착하기 전에는 적당히 먹을 곳도 잘 보이지 않고.



슬슬 배고픔에 지쳐갈 때쯤, 골목을 빙 돌아 올라가는 오르막길에서 중식당 하나와 빵집 하나가 눈에 들어 왔다.

점심 시간이 가까워져서인지 중식당 앞에는 벎사 사람들이 몇몇 들어가고 있었다. 인기가 꽤 좋아보였지만 그래도 이왕 왔으니 모로코식 아침 식사를 먹어봐야 하지 않겠냐며.


빵집 근처로 가니 고소한 빵 냄새가 폴폴 풍겼다.



막상 들어가니 카운터의 직원만 여러 명인 꽤 큰 곳이었다.

진열대에는 큼직큼직한 빵이 애매하게 분류된 채로 누워 있고 뒤쪽 조리대 선반에는 오렌지가 줄 지어 서 있었는데 조리대의 직원이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선반의 오렌지를 하나씩 집어 믹서기에 넣고 있었다.

음, 잘 찾아온 느낌.


입맛엔 한계가 없지만 위장엔 한계가 있으니 이건 정 먹어야 하겠다 하는 빵만 신중하게 몇 개 골라 기본 아침 차림과 함께 주문했다.


모로코, 웨하스만 잘 만드는 줄 알았더니 빵도 보통이 아닙디다. 짭짤한 올리브에 달걀, 한 모금씩 넘기는 뜨겁고 강한 모로코 박하 차 향이 얼마나 어울리던지.

체인점이니 여기 꼭 다시 오자고 간판까지 찍어 갔던 그 가게를 모로코에서 한 번 더 못 간 게 아직도 안타깝다.


다 먹었으면 다시 올라가야지?



생각보다 넓고 알록달록한 셰프샤우엔의 메디나.

옹기종기 모인 타진 그릇도 예쁘고 광장 한 가운데에 늘어 놓은 하늘색 그림들도 예쁘고.


간혹 이 곳의 아침 인사처럼 들리는 니하오만 빼면 제법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문득 카메라를 든 팔이 찌르듯 아팠다.

원래도 딱히 대단한 체력을 자랑하는 몸이 아니라 근육통이거나 잠시 찌릿했겠거니 하고 무시하려 했는데 점점 이건 좀 아니다 싶어 팔을 살피는 순간 보이는 붉은 자국.


인생 두 번째로 벌에 쏘였다. 그것도 모로코에서.


한없이 쫄보인 저이거늘,

벌 선생님이 어떤 연유로 무슨 위협을 느끼셨기에 나를 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더럽게 아팠고 혹시나 있을 수 있는 알러지 반응이 걱정되었다.

(아무래도 오기 전에 브리저튼을 괜히 봤다.)

모로코에서 응급 상황 발생하면 대처 순서가 어떻게 되더라, 순식간에 오억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다행히 붓기가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봄이면 벌이 파리보다 많은 영국에서도 한번을 안 쏘였는데 꿀 빨아먹을 꽃 한 송이 안 보이는 것 같은 이 파란 마을에서 마주친 적도 없는 벌에 쏘이다니.

별 경험을 다 한다.



하늘 아래 같은 푸른색은 없다는 걸 실감하게 하는 파란 대문들을 지나쳐 가기가 아쉽지만 이제는 다시 이동해야 할 시간.

셰프샤우엔을 닮은 푸른색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 들고 숙소로 돌아갔다.


숙소 주인의 도움을 받아 무려 페즈까지 가는 택시를 예약했는데 가격이 꽤 비쌌다.

도시에서 도시에서 이동하는데 정말 택시를 부를 거냐며 재차 확인하던 숙소 주인. 하지만 우리의 빡빡한 일정엔 선택지가 없다.


너무 기뻐하며 택시를 바로 예약해 준 숙소 주인. 아마 알선해 준 기사와 돈을 나누는 듯.

하지만 그런 것 치고 택시는 약속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어슬렁 어슬렁 나타났다.

이제 놀랍지도 않다.

어딜 가나 통용되는 모로코 타임.



셰프샤우엔에서 볼 건 다 봤다고 생각했는데 멀리서 메마른 벌판에 혼자서 푸른빛을 뽐내고 있는 마을을 보자니 어쩐지 또 아쉬워졌다.

너무 덥고 모든 길이 오르막 내리막의 연속이었지만 빵이 맛있고 고양이들이 많았던 기억 미화 전문 도시 셰프샤우엔.


잠시 감상에 젖어 잠이 들려는 순간 택시가 갑자기 섰다.

그러더니 기사가 갑자기 우리더러 내리라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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