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의 관광객 모드
지난 봄 강렬했던 모로코 여행의 여파로 비유럽권 여행에 한창 목말라 있던 차, 어느 새 벌써 연말이 다가오고 있었다. 으레 그랬듯이 여행 친구와 각국의 크리스마스 마켓 일정을 훑으며 이번엔 어디로 가 볼까 하던 중에 어쩌다 뉴욕 얘기가 나왔다. 케빈의 크리스마스? 비쌀텐데.
그래도 한국에서보단 훨씬 가기 쉬울테니 한번 찾아나 볼까 해서 무심코 검색한 항공권이 500파운드였다.
그럼 가야지.
그렇게 결정된 느닷없는 뉴욕행.
뉴욕에 그닥 환상이 없었던 터라 오히려 주변이 더 신나 했다. 베이글, 스테이크, 피자 등 가서 뭘 먹을 거냐부터 센트럴파크, 박물관, 레고샵 등등등. 영국 음식에 큰 불만 없고 집앞에 갈 공원도 많겠다 웬만한 샵은 런던 소호에도 있었으니 관광지의 기대보다는 치명적인 물가 걱정이 더 앞섰다.
분명히 큰 기대가 없었는데. 오로지 유럽 대륙을 벗어난다는 설렘만을 안고 도착하자마자 마음이 흥분으로 차올랐다.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풍기는 자본주의의 냄새. 아무 기대 없이 방문했다 규모에 압도당했던 북경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영국은 중산층에게는 사회주의, 빈곤층에게는 자본주의인 나라라는 말이 있다. 꽤나 공감하는 말이지만 뉴욕의 자본주의 맛을 보고 나니 영국은 그래도 사회주의에 가까운 나라가 맞다는 확신이 들었다.
모든 것이 돈이고 그 값을 지불하는 순간 그에 걸맞는 가치를 누릴 수 있는 곳. 관광객의 입장에서는 그보다 더 편리하고 즐거울 수 없었다. 돈을 내는 만큼 기대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니 꼬장꼬장하게 고집하는 오래된 문화에서 비롯되는 불편함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고 표값을 톡톡히 하는 미술관, 박물관과 밤낮 상관없이 도시를 가득 채우는 화려함에 눈이 즐거웠다.
동시에 도시 어디에 있어도 돈이 없으면 그 무엇도 누릴 수 없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양극차가 훨씬 극단적이다. 밤에도 환하게 불이 켜져 있는 사각형의 거대한 빌딩 밑으로 대마 냄새가 진동하고 부랑자들은 더 거칠고 험악하다. 단적인 예로 대중의 통곡 소리 같은 기념물 뒤의 911 메모리얼 박물관에서는 26파운드를 내면 생생하게 재현된 테러 당시 상황을 보고 애도할 수 있다.
돈을 받는 행위 자체가 거북한 것이 아니라 그저 모든 것이 돈이고 딱 그만큼의 높은 수준을 가진다는 사실에 어딘가 소름이 돋았다. 누군가는 돈을 내고 응당 그에 맞는 서비스를 받는 이러한 방식을 훨씬 선호할 것이고 나 또한 여행객으로서 그 자본주의의 혜택을 너무나 재밌게 누리고 왔지만 간간히 만약 여행객이 아닌 주민이었다면 이곳에서 얼마나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다.
뉴욕에서 느낀 또 하나의 강렬한 인상은 다수 인종이 명백히 흑과 백, 둘로 나뉜다는 점이었다. 길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백인 아니면 흑인이었고 그 둘을 제외한 인종은 말 그대로 소수 인종처럼 눈에 잘 띄지 않았다.
그런데 뉴욕을 차지하는 그 두 커다란 집단이 서로 쓰는 말씨, 옷차림부터 달랐다. 여전히 런던에서도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수록 정장을 입은 백인들의 비율이 높아지지만 뉴욕에서는 인종 차이가 곧 모든 것의 차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둘 사이에 선이 그어진 느낌. 왜 BLM 운동이 일어났는지 이해가 갈 만큼 뉴욕에서 본 양극차 중심에 인종이 있었다.
아마 서울에서 바로 뉴욕으로 여행을 떠났다면 이러한 각도로 뉴욕을 재 보지는 못하지 않았을까 싶다. 한국과 여러 방면에서 다른 나라에 살고 있다는 장점이다. 최근 들어 더욱 다양한 문화들이 융화되고 있는 영국에서 살고 있기에 가질 수 있었던 시각이라는 생각이 들어 한국인으로서 본 영국과 미국의 차이를 계속 따져 보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나 현재 서울이 지향하는 듯한 미래가 바로 뉴욕의 모습 같아 여행자가 아닌 거주민의 입장을 계속 고려해 보게 됐다.
쓰다 보니 뉴욕에 너무 부정적인 글이 된 것 같지만 사실 이번 뉴욕은 정말 200% 즐기고 왔다.
신선했고 자유로웠고 맛있었고 편했다. 여행을 하는 내내 나 자본주의 좋아했네 외치며 신나게 놀았음에도 한편으론 뉴욕이 정말 우리에게 잘 맞는 방향인지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