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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화일 Mar 27. 2024

My dearest hostfamily

호스트패밀리도 약간은 가족이다

스타일리아누 가족은 내 두 번째 호스트패밀리다.


영어 듣기가 지금보다 더 안되던 n년 전 늦여름, 영국에 도착해 이주일을 한량처럼 산책과 자연사 박물관으로 채운 후 마침내 어학원으로 들어갔다.

어학원에서 연계하는 숙박에는 크게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기숙사(라 부르는 공동 자취)와 홈스테이.

나중에 이도 저도 안되더라도 영어만큼은 어떻게 가야겠다는 강박과 숙박에 돈을 쓸 예산이 없는 저예산 이방인에게하나인 것이나 마찬가지인 선택지였다.


첫 번째 홈스테이는 자랑을 일삼을수록 쪼잔하다는 사실을 오랜만에 머나먼 이국에서 다시 느끼게 해 주었던 바로 첫 사례였다.

중학생 갔던 수련회보다 규칙이 많았던 그 집. 10분 넘게 샤워해서 실망한 교관, 아니 홈맘목소리가 항상 쟁쟁거렸던 켄리 로드의 3층집을 약 2개월만에 탈주하고 옮긴 홈스테이가 이젠 떨어져 살고 있음에도 여전히 호스트패밀리라고 부르는 익숙한 이 가족이다.



이사 첫날부터 공교롭게 부부의 여행 기간이 맞물려 주인 없는 집에 낯선 외국인 학생을 들이는 쿨함을 보여준 스타일리아누 씨들. 

처음 스타일리아누라는 생소한 성을 듣고 유색인종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이튿날 만난 부부는 금발벽안의 전형적 '하멜'형 외국인들이었다. 알고 보니 홈맘은 정말 네덜란드계로 모친이 발리에서 태어나 인도네시아 요리를 곧잘 해 줬다.


첫날 혼자 잠자리에 들 때까지만 해도 '도대체 믿고?' 싶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나까지 남의 살림 있는 집주인 없는 주인집에서 자고 나오는 아무렇지 않아진 걸 보면 한국이라면 어땠을지 하는 생각이 든다.


새 집에서는 규칙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집에 있는 건 아무거나 먹어, 거실 내려오고 싶으면 아무때나 내려와, 샤워는 편할 때 해.


식사는 대부분 세 식구가 함께 했고 식사 후엔 으레 다같이 티타임을 가졌다. 교사인 홈파더는 내 영어 공부에 나보다 더 열성이었고 매일 저녁마다 오늘은 뭘 배웠는지 한 마디라도 더 나눠주려고 애썼다.

하필 이사를 마음먹은 시기와 이 집에 학생이 없는 시기가 겹친 게 이보다 더 다행일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전보다 훨씬 정겹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너무 좋았음에도 한동안은  쉽사리 마음 편하게 있질 못했는데 어학원과 첫 번째 홈스테이에서 워낙 전기세, 수도세 이야기를 귀에 못 박히게 들어 눈치보는 게 습관이 된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 큰 이유는 내가 이 가족이 만난 거의 첫 번째 한국인이었기 때문이었다.


호스트패밀리 두 사람이 너무 전형적인 영국인이었다. 사람들의 평판과 그들 나름의 교양을 중시하는 사람들인 게 은연 중에도 늘 느껴졌기 때문에 한국인의 첫인상을 나쁘게 남기고 싶지 않다는 (그 누구도 내게 씌워주지 않았지만 나 혼자 알아서 쓴) 대표자의 감투가 제법 무거웠다.


게다가 아직 영국인들의 문화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너무 가깝게 지내다 보니 사소한 부분에서 어디까지가 예의이고 어디까지가 무례인지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받는 게 있으면 주는 것도 있어야 한다는 게 인지상정이라 배웠으니, 많은 배려를 받는만큼 스스로 옭아매는 불편함도 쌓여갔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는 몰랐지만 아마 가족들도 그 어색함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이 가족들도 마찬가지로 학생들에게 영국인으로서 좋은 모습을 남겨주려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 나중에 가서야 내 눈에도 보였듯이 그들도 낯선 한국인 앞에서 그들 나름의 오해와 불편함이 있었을 것이다.



서로 알게 모르게 팽팽했던 긴장의 끈은 한번 홈스테이를 떠났다 다시 돌아오고 나서야 끊겼다.


내 영국 세계의 전부였던 홈스테이와 어학원을 떠나 또 다른 영국을 겪는 동안 그동안 다져온 다양한 주관들의 경계가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예의를 표현하는 방식의 차이를 인지하고 다른 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경험이 몇 차례 쌓이면서 나도 모르게 조금 덜 까다로운 인간이 된 것 같다.



그런 후에 돌아온 홈스테이는 그제서야 마음놓고 편안했다.

스스로가 예전과 비슷한 일상들을 이제는 다른 태도로 공유하고 있다는 걸 인지하고 나니 자연스레 지난 시간을 복기할 여유도 생겼다. 그때는 장유유서의 마음으로 했던 행동이 오히려 받는 사람은 의도와 무관하게 부정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었겠다는 지각도 이제는 하게 됐다.



스스로를 드러내는 데 당당할 것, 타지살이에서 얻은 변화 중 가장 좋아하는 점이다.


어차피 나와 똑같은 삶을 살아온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같은 문화권에서 나고 자란 사람조차 언제 어디서든 서로의 행동을 오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차라리 다른 문화의 시선에 맞추려고 애쓰기보다는 그저 스스로에게 당당한 것이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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