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 카투사 훈련소에서 피어난 우정

미래에서 온 편지

by Song 블루오리온

에필로그 1화. 빠른 곳에 기회가 있다


빠른 곳에 기회가 있단다. 움직여라, 그리고 네가 원하는 자리에 먼저 서라.”
아버지의 조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강시후는 자신의 양손을 내려다봤다. 훈련소 입소 첫날부터 가득 찬 긴장감이 손바닥 위에서 땀방울이 되어 맺혔다.


“분대장 자원할 사람?”
카투사 신병교육대 조교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순간 교실 안이 싸늘하게 식었다.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시후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늘 조용한 성격, 남들 앞에 서는 건 익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빠른 곳에 기회가 있단다.’

스스로도 모르게 손이 올라갔다.
“하겠습니다!”

조교의 눈빛이 시후를 스캔했다. 그리고 짧은 미소.
“좋아. 앞으로 나와.”

그렇게 시후는 분대장이 되었다. 그날부터 그는 사람들을 이끌고, 훈련소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나름의 리더십을 배우기 시작했다.


� 1개월 후, 평택 험프리스

훈련소 수료식이 끝나고 시후는 평택 험프리스 기지로 배치되었다.
미국의 작은 도시를 옮겨온 듯한 기지의 크기에 그는 압도당했다. 영화관, 마트, 엔터시설까지.
“와… 이게 군대라고?”
혼잣말이 나왔다.

길을 헤매던 시후의 눈에 하윤이 들어왔다.
깔끔한 군복을 입은 이병이 밝은 얼굴로 다가왔다.
“혹시 길 찾으세요? 제가 안내해드릴까요?”

“아… 네, 감사합니다.”
시후는 미소 지었다.
그렇게 둘은 함께 엔터시설 쪽으로 걸어갔다.


같은 시각, 험프리스 정문

한 소년이 미군 기지 정문에서 신분증을 내밀었다.
“초대받은 학생 맞나요?”
“네. 삼촌 초대예요.”

소년의 이름은 성찬.
10대 시절, 친척의 초대로 험프리스를 방문한 성찬은 이곳의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군대에 이런 데가 있다고?”
마트보다 훨씬 큰 PX, 최신식 피트니스센터, 심지어는 오락실까지.
호기심 많은 성찬은 이곳저곳을 누비다 엔터시설에 다다랐다.

그곳에 있던 군인들이 최신 아케이드 게임을 하는 모습에 넋을 잃었다.
“이걸… 군대에서?”



� 스쳐 지나간 인연

“학생, 이 게임 해보고 싶어?”
뒤에서 다정한 목소리가 들렸다.
성찬이 돌아보자, 한 군인이 웃고 있었다. 하윤이었다.

“고개만 끄덕이면 내가 도와줄게.”
성찬은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윤이 카드를 찍어 성찬이 게임을 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자, 이 버튼 누르면 돼.”

그때 뒤쪽에서 시후가 하윤을 불렀다.
“하윤! 여기 있었네.”

하윤과 시후는 성찬 쪽으로 다가오며 미소 지었다.
“게임 잘해, 꼬마야.”
시후가 웃으며 인사했다.

성찬도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두 개의 시선

떠나던 시후가 잠깐 멈췄다.
‘어디서 본 아이 같은데…’
그는 잠시 성찬을 바라보다 고개를 저었다.

성찬도 게임 버튼 위에 손을 올린 채 생각했다.
‘저 형… 누구랑 많이 닮았어.’


짧은 교차.
그것은 미래의 굵은 실선이 되기 전, 가느다란 선이 스치듯 엮인 순간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저 형들과 내가, 이렇게 깊은 인연으로 이어질 줄은.”





에필로그 2화. 평택 험프리스, 그 여름의 기억


“친구는 말이 통하는 사람보다, 마음이 닿는 사람으로 남는다.”


� 여름밤, 기지 안 산책로

평택 험프리스의 여름은 한국보다 더 이국적이었다.
기지 안의 도로를 따라 늘어선 가로등 불빛이 노랗게 반짝였고, 멀리선 미군들이 조깅하며 웃음소리를 흘리고 있었다.

“시후야, 카투사 생활 어때? 훈련소 때랑 많이 다르지?”
하윤이 아이스커피를 들고 시후 옆에서 걸었다.

“응. 뭐랄까… 군대 같지 않은데, 그래도 나름 규율은 있네.”
시후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너 영어 진짜 잘한다. 미군들이랑 자연스럽게 농담도 하고.”

“하하. 나 어릴 때 유학을 좀 해서. 시후 넌? 토플 점수 어떻게 나왔길래 들어왔어?”

“85점. 사실 고3 끝나자마자 바로 준비했거든. 취업에도 도움 될 것 같아서.”

“역시 계획형이네.”
하윤이 감탄하듯 말했다.


치킨과 포켓볼

“오늘 PX 치킨 먹을래?”
하윤이 제안하자, 시후는 놀란 눈을 했다.
“여기서 치킨도 팔아?”

“PX 치킨이 진짜 맛있어. 미국식 바비큐 양념인데 중독된다.”
둘은 PX로 향했고, 하윤이 추천한 치킨을 사서 기지 내 포켓볼장으로 갔다.

“시후야, 포켓볼 잘 쳐?”
“나? 못해. 근데 시작하면 내가 이긴다.”

그날 밤 두 사람은 포켓볼 한 게임을 걸고 ‘치킨 한 조각 몰아주기’를 내기로 했다.
공이 부딪힐 때마다 터지는 웃음소리.
작은 승부욕이 우정을 조금씩 단단하게 엮어갔다.


� 진심을 나누다

게임을 마치고 둘은 기지 안 벤치에 앉아 남은 치킨을 나눠 먹었다.
별빛이 쏟아지고, 바람이 시원했다.

“시후야, 너 되게 신중한 스타일이지? 말하기 전에 한번 더 생각하는 거 같아.”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나한테 선택은 스스로 하라고 하셨어.
덕분에 실수하면 책임도 다 내가 지고… 그런 버릇이 생겼나 봐.”


“좋은 거네. 난 좀 즉흥적이라.”
하윤은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도 너랑 같이 있으면 내가 차분해지는 느낌이 들어.”

시후도 웃었다.
“넌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타입 같아.
훈련소 때부터 느꼈어. 네가 이곳 선임이라 다행이다.”



아직 모르는 인연

그때였다.
벤치 옆 엔터시설의 불빛이 꺼지며 사람들의 발걸음이 흩어졌다.
멀리서 한 소년이 고개를 돌리며 기지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1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소년.

시후는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어디서 본 것 같아… 왜 이런 낯섦이 있지?’

하윤은 시후의 시선을 따라가더니 웃었다.
“왜? 저 학생 신기해 보여?”
“아니, 그냥… 스쳐지나간 얼굴인데 왠지 눈에 밟혀서.”

“너도 참. 오늘따라 감성적이네.”

둘은 그렇게 웃음을 터뜨리며 기지 숙소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직은 몰랐다.
그날 스친 소년이 훗날 자신들과 한 판의 거대한 게임을 벌일 인물이라는 것을.

“그때 우리는 몰랐다.





에필로그 3화. 우리는 함께였다


� 새벽 훈련의 시작

Wake up! Wake up! Morning formation in 10 minutes!”

새벽 5시. 평택 험프리스의 숙소 시니어 카투사의 목소리가 울렸다.
기지 내 훈련 프로그램 중에서도 가장 빡센 야간 비상상황 대응 훈련이 시작됐다.

“시후야, 준비 다 했어?”
“응. 근데 벌써 이렇게 긴장되긴 처음이네.”
시후는 군화를 고쳐 신으며 웃었다.

하윤은 특유의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카투사 인생은 다 이런 거지. 걱정 마. 내가 있잖아.”

훈련은 미군과 카투사 혼성 팀이 편성되어 상황을 해결하는 방식이었다.
팀워크가 관건이었다.


�‍♂️ 위기 상황, 그리고 결정적 순간

“Red team, move out!”

미군 상사가 외치자 시후와 하윤이 속한 팀이 숲으로 진입했다.
시뮬레이션은 적군에 의해 주요 거점이 탈환된 상황이었다.

“Contact! Contact! Down!”
갑자기 적 역할을 맡은 미군 조교들이 페인트탄 총을 쏘며 나타났다.
탄환이 나뭇가지를 스치는 소리에 모두 엎드렸다.

“시후! 이쪽으로 빠져!”
하윤이 먼저 외치며 시후를 이끌었다.
그 순간 옆에서 총성이 크게 울렸다.

“팡!”

“시후야!!”
하윤이 외쳤다. 시후의 어깨에 페인트탄이 맞아 파란 물감이 튀었다.

“괜찮아?”
“응… 맞았네. 근데 우리 팀은 계속 가야 하잖아. 난 빠질게.”
“야! 카투사 규칙 몰라? 한 명 다치면 나머지가 커버해야지. 같이 가자.”

하윤은 시후의 군장을 한쪽으로 옮겨 메고 그를 부축했다.
“난 너를 끝까지 데려간다!”


� 두 사람의 팀워크

남은 팀원들은 하윤과 시후 덕에 무사히 거점을 확보했다.
조교가 훈련 종료를 선언했을 때, 모두 하윤과 시후에게 박수를 보냈다.

“Nice job, Korean soldiers.”
미군 상사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Two as one. Good teamwork.”



훈련 후, 벤치에서

훈련이 끝난 후 둘은 숙소 앞 자판기 커피를 들고 벤치에 앉았다.
하윤이 피곤한 듯 어깨를 늘어뜨렸다.

“야… 넌 참 이상한 애다.”
“왜?”
“극내향형이라고 했잖아. 근데 왜 위기만 오면 앞에 나서냐?”


시후가 잠시 웃었다.
“아버지가 늘 말했어. ‘빠른 곳에 기회가 있다.’
난 그게 위기일 때도 해당된다고 생각해.”

하윤은 잠시 시후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랑 있으니까 나도 덩달아 용감해지네.”

둘은 웃으며 캔커피를 부딪쳤다.


멀리서 지나가던 성찬은 엔터시설에서 게임을 끝내고 나오다가 두 사람을 잠시 바라봤다.

아직 어린 소년의 눈빛 속에, 호기심과 묘한 부러움이 어렸다.

‘저 형들… 팀워크가 좋네.’
성찬은 그렇게 생각하며 천천히 걸어갔다.


“그날의 우정은
단순한 군대 생활을 넘어
서로의 인생에 남을 작은 불씨가 되었다.”







* 지금까지 '미래에서 온 편지'를 애독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 데이비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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