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장. 평행우주와 나의 존재

by Song 블루오리온

1화. 다른 세계, 다른 나


[시간: 새벽 2시 / 장소: STAR그룹 타임캡슐 시스템 심층 영역]


차가운 서버실의 공기 속, 세 사람의 손끝이 동시에 마지막 캡슐의 인증 버튼을 눌렀다.

“이게... 정말 열리는 거야?”
정하윤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두려움과 설렘이 섞여 있었다.

“응. 이건 단순한 기록 복원이 아니야.”
강시후는 확신에 찬 눈으로 시스템을 바라봤다.
그의 앞에 떠오른 문구는 단 하나.


[CAPSULE-Ω FINAL ACCESS AUTHORIZED]


그리고—그 순간.

거대한 금속문이 열리듯,
공간 전체가 빛으로 번져 흐트러졌다.
기계음과 함께 공간의 모양이 접히고 펴지더니,
세 사람은 각각 다른 방향으로 흩어지듯 사라졌다.

“슝——”

빛의 파편처럼 사라진 그들의 의식은,
이내 각자의 "존재 파편" 속으로 떨어졌다.



� [공간 1 – 성찬의 세계]

그가 눈을 떴을 때, 사무실은 똑같았다.
단 하나, 사무실 문 앞에서 굽신거리며 고개를 숙이고 있는 건…
이태석 상무였다.


“회장님. 다음 지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내가 회장이 아니라…?”

아니었다.
데스크 앞에 ‘이성찬 회장’이라는 명패가 있었다.

그리고 방 안 벽면, 대형 스크린에는
“STAR그룹, AI 권한 강화 조례 통과”라는 헤드라인이 떠 있었다.
그는 이 세계에서 모든 걸 가졌지만—
아무도 이 세계의 또 다른 나를 ‘형’이라 부르지 않았다.



� [공간 2 – 하윤의 세계]

“정하윤 이사님, 이건 고문서 열람 허가서입니다. 오늘 이사회는 무기한 연기됐습니다.”

비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하윤은, 사무실 유리창 너머를 바라봤다.
그의 눈엔 ‘정지윤 내부 고발 사건’이라는 회의록이 떠 있었다.

자신이… 누나를 팔아, 회사의 ‘도덕적 개혁’을 이뤄낸 인물로 그려져 있었다.

“…이런 선택을 내가?”

정의감에 충실했지만,
그 선택이 ‘누나의 실종’을 막지 못한 결과로 이어졌다는 걸
하윤은 직감하고 있었다.



� [공간 3 – 시후의 세계]

광고 전광판에 떠 있는 이름.
“정보거래 플랫폼 대표 강시후, 신기술 유출 혐의로 조사 중”

거리마다 붙어 있는 시후의 얼굴은 더 이상 ‘따뜻한 상담사’가 아니었다.
대가를 받고 기술을 빼돌리는 기술 브로커, 그게 그의 이 세계 속 정체였다.

시후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내가… 그때 진짜 포기했으면, 이렇게 됐을지도 모르겠네.”

그의 손엔 타임캡슐 하나가 들려 있었다.
그 안에는—다른 사람의 기억을 훔쳐낸 로그들이 담겨 있었다.



� [동시에, 메아리처럼 들려온 목소리]

“너희들은 지금, 네가 될 수도 있었던 ‘다른 너’를 마주한 것이다.”

“묻겠다. 현재를 바꾸는 것이 정말 가능한가?”

“혹은… 지금 네가 가진 것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한가?”



� [마무리 – 시스템 안내]

세 사람의 앞에 동시에 창이 떴다.


[도달 위치: 평행 시뮬레이션 공간]



[진실 도달률: 17%]



[이탈 또는 통과 선택 가능 – 10분 후 시스템 자동 전환]


서로를 볼 수는 없지만,
어딘가에서 같은 질문을 받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강시후는 조용히 캡슐을 내려놓았다.
정하윤은 손등 위에 떨어진 옛 서류를 바라보았다.
성찬은, 이태석이 여전히 자신을 바라보는 걸 보며—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난 이 세계도… 이해돼. 하지만, 돌아갈게.”





2화. 내가 될 뻔한 나


[장소: 평행 시뮬레이션 공간 내부]


� [성찬의 시뮬레이션 공간 – 완벽한 통제, 외로운 정상]

“회의는 3분 후 시작됩니다. 회장님, VIP 라운지로 모시겠습니다.”

비서의 안내에 따라 무표정하게 걸음을 옮기는 성찬.
하지만 회의실 문을 스치려는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형—”

아무도 부르지 않았다.
돌아봐도, 형은 없었다.
다만, 귓속에 맴도는 기억.

17년 전, 사과를 건넸던 그 날.
강시후 형의 웃음,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손길.
성찬은 문 앞에서 발을 멈췄다.


“나는 이 세계에서… 모든 걸 가졌지만,
그 형의 미소 하나는 얻지 못했군.”

그는 조용히 명패를 내려다봤다.
‘회장 이성찬’

“이건 내가 될 수도 있었던 나지,
내가 되고 싶은 내가 아니야.”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리고 손목의 기기에 속삭이듯 말했다.

“탈출. 현재 복귀를 요청한다.”


[성찬 – 평행 시뮬레이션 이탈 요청 승인]



� [하윤의 시뮬레이션 공간 – 정당한 승리, 꺼림칙한 진실]

회의실 벽면엔 정하윤의 얼굴이 큼지막하게 걸려 있었다.
그 아래엔 금빛 문구.

"그는 진실을 밝히고, STAR를 지켜냈다."

그러나 하윤은 의자에 앉지 않았다.
대신 천천히, 고발 서류를 펼쳤다.

‘정지윤 – 내부 자료 유출 의혹’

“이건… 조작된 진실이야.”

이사회는 그를 향해 박수를 쳤고, 언론은 영웅을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하윤은 느낄 수 있었다.
이 승리는 누군가의 침묵 위에 쌓인 거라는 걸.

“난 이기는 게 아니라, 진짜를 원해.”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을 감고 깊게 호흡했다.


[정하윤 – 시뮬레이션 이탈 요청 승인]



� [시후의 시뮬레이션 공간 – 잃어버린 방향, 비틀린 신념]

시후는 데이터 브로커가 되어 있었다.
여러 기업에 데이터를 팔고, 감정을 수치로 해석해 넘기는
‘차가운 천재’.

“다들 내게 답을 원하지, 책임은 아니고.”

그는 화면을 꺼버렸다.
타임캡슐 하나가 손에 들려 있었다.
캡슐을 조작한 흔적이 명백했다.
거울 속, 자신은 웃고 있었다.

“이런 내가 될 수도 있었던 거야?”

잠시 침묵.
그러다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래도, 그건 내가 아니야.”

시후는 화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복귀 요청. 지금 당장.”


[강시후 – 시뮬레이션 이탈 요청 승인]



� [동기화 완료 – 시스템 안내]


[세 명의 ‘현재’ 선택 완료]



[공동 복귀 경로로 연결합니다.]


세 사람의 의식이 빛줄기처럼 합쳐졌다.
순간, 공간이 다시 조용히 흔들리고,
그들은 동시에 깨어났다.


"현재의 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 말이 세 사람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3화. 캡슐의 문, 다시 열다


[장소: STAR그룹 폐기된 백업 서버실 / 새벽 2시]


회색빛 조명 아래, 낡은 서버랙 사이를 지나
세 사람의 발소리가 울렸다.
성찬, 하윤, 시후.

이제 그들은 말없이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여기가 마지막 캡슐 로그가 보관된 공간이야.”
성찬이 멈춰 서며 말했다.

“여기서…” 하윤이 중얼거렸다.
“…진짜 정지윤 누나의 캡슐을 열 수 있어?”

성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단, 조작 전 상태로 복원하려면
한 번쯤은… 시스템을 거스르는 위험을 감수해야 해.”


강시후가 나섰다.

“그래서 우리가 필요한 거지.
나는 성찬 네 코드 패턴을 분석했고,
하윤은 STAR의 정식 이사 자격으로 복원 권한을 부여할 수 있어.”

하윤은 태블릿을 꺼내 보안키를 입력했다.

“복원 키 발급 완료.”

성찬도 서버 단말에 연결된 코드를 조작하며 입을 열었다.

“내가 예전에 입력한 백업 알고리즘이 있어.
자기 자신이 만든 덫이지만… 내가 빠져나갈 구멍도 열어놨어.”

시후가 웃으며 말했다.

“넌 정말 끝까지, 통제를 놓지 않는구나.”

성찬은 미묘하게 웃었다.

“그러니까 살아남았지.”

그 순간, 서버가 진동하며
붉은 색 경고등이 켜졌다.


[비인가 접근 – 관리자 권한 충돌]


하윤이 외쳤다.
“누군가 우릴 감시하고 있어. 보안 시스템이 껍데기만이 아니었네.”

시후가 빠르게 태블릿을 조작했다.

“내가 처리할게. 로그 삭제 우회 경로를 쓰면—됐다.”

시스템이 다시 고요해졌다.

그제야
정지윤의 타임캡슐 메시지가 화면에 나타났다.


[타임캡슐 메시지 – 원본 상태 복원됨]
제목: “누군가 이걸 본다면, 부탁이 있어요.”


하윤의 손이 떨렸다.
캡슐을 열자, 영상이 재생되었다.


“이걸 열어준 당신에게 부탁이 있어요.”


젊은 여성의 얼굴. 지윤이었다.
그녀는 불안하지만 단단한 눈빛으로 말했다.


“나는 실험실에서 무언가를 봤어요.
그건 단순한 기술이 아니었고,
사람의 기억과 시간까지 조작하려는 시도였어요.”


화면이 살짝 흔들렸다.
그녀가 무언가를 피해 숨는 듯한 장면.


“이걸 누가 보든, 기록을 안전하게 보관해줘요.
그리고… 내 사촌, 하윤아. 네가 이걸 보길 바랄게.”


그녀는 마지막으로 웃었다.


“내가 돌아가지 못하더라도,
내가 본 걸 누군가는 알아야 하니까.”


영상이 꺼졌다.
한동안 세 사람 모두 말이 없었다.

하윤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중얼였다.

“…누나.”

시후가 조용히 성찬을 바라봤다.

“이걸… 왜 안 보여준 거야?”


성찬은 시선을 내렸다.

“나도 처음엔… 그냥 덮으려고 했어.
이 캡슐이 드러나면, 내가 만든 게임도 무너질 테니까.”

그는 솔직하게 말했다.

“하지만 네가 추적을 시작하니까,
나도 언젠가 이 순간이 올 걸 알았지.”

하윤이 물었다.

“그럼 왜 도운 거야? 결국, 우리 편이야?”

성찬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형들이니까.
내가 어릴 적부터 믿고 싶었던 형들.”

시후와 하윤이 동시에 그를 바라봤다.

그 눈빛엔 이제 경계보다…
믿음이 조금 더 실려 있었다.


[화면 종료]
[타임캡슐 원본 파일 – 복구 및 재기록 완료]
[복구된 기록은, STAR 이사회에 자동 보고됩니다.]


� [장면 전환 – 이사회 임시 메시지 도착 알림]

모든 것이 연결되고 있었다.
과거는 가려졌지만, 진실은 살아남았다.












4화. 돌아올 시간


[장소: 타임캡슐 가상 서버의 통제 영역 – 임시 복구 공간]


시후, 하윤, 성찬.

세 사람은 조용히, 완전히 복원된 타임캡슐의 데이터 중앙에 서 있었다.
여기는 가상의 메모리 안, 존재와 기억이 뒤섞이는 공간.
“현실로 돌아가기 전에, 이 시스템은 선택을 요구합니다.”


[시스템 안내]
“기록 복원 완료. 사용자당 최대 1명만 전체 기억 유지 가능.
선택하지 않을 경우, 시스템이 무작위 결정함.”


“기억 유지… 단 한 명만?”

성찬이 물었고, 하윤은 곧장 이어받았다.

“나눠 가질 순 없단 말이야?”

시후는 조용히 화면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건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사람의 의지를 품은 기억이야.
너무 큰 걸 동시에 담기엔, 이 시스템조차 무리겠지.”

세 사람은 잠시 서로를 바라봤다.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성찬이 입을 열었다.

“…내가 다 가져갈게.”

하윤과 시후가 동시에 눈을 치켜떴다.

“네가?”

“네가?”

성찬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우리가 본 정보들, 정지윤의 마지막 말,
그걸 이사회에 안전하게 전달하려면… 시스템을 완전히 이해한 내가 맡는 게 맞아.”

그 말엔 일리가 있었다.

그러나 하윤은 조용히 말했다.

“그게… 정말 네 진심이야?”

성찬은 미소 지었다.

“…반은.”

시후가 곧장 말했다.

“그럼 나머지 반은?”

“형들이 이걸 기억하길 바라는 마음.
하지만, 동시에—
잊었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어.”

그 말에 하윤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나도… 사실 기억을 다 짊어지고 싶진 않아.”

시후는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말했다.

“…좋아. 성찬. 너한테 맡길게.”

“대신,” 하윤이 덧붙였다,
“우릴 잊게 만들진 마.”

성찬이 웃었다.

기억은 사라질 수 있어도, 감정은 남아.
내가 그걸 누구보다 잘 아니까.”

시스템이 점멸하기 시작했다.


[회귀 타이머: 00:00:10]
[기억 정렬 중…]
[기억 보존 대상자: 이성찬 (선택됨)]


타이머가 끝나고, 눈부신 빛이 터졌다.


[장면 전환 – 현실]
[장소: STAR그룹 이사회 회의실 – 오전 10시]


하윤은 문득 정신이 들었다.
손에는 이사회 보고서가 쥐어져 있었다.

“…뭐였지… 방금…”

강시후는 천천히 눈을 떴다.
책상 위에는 정지윤의 캡슐 복원 보고서 일부가 펼쳐져 있었다.

“…무슨 꿈… 아니, 기억?”

둘은 동시에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어색하게 웃었다.

“뭔진 모르겠지만,” 하윤이 말했다.
“우리, 지금 같은 생각하고 있는 거 맞지?”

“응. 그 사람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


[회장실]
성찬은 조용히 창밖을 바라봤다.
그의 손엔 단 하나의 복원 USB가 쥐어져 있었다.


기억을 가진 자의 무게…’

그는 중얼였다.

“…그리고 나만이, 끝까지 감당해야 할 기록.”


[이메일 발신 완료 – 정지윤의 타임캡슐 복원 영상 첨부]
[수신자: STAR 이사회 전원]
[제목: “시스템이 지운 과거를 보고 싶다면”]


그는 조용히 웃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윤과 시후의 사진이 담긴 프레임을 바라보며 말했다.

“고마워. 형들.”












� [다음 장 예고 – 17장. 변하지 않는 것, 변할 수 있는 것]

성찬의 회장직은 점점 흔들리기 시작하고,
시후와 하윤은 자신도 모르게
‘평행 세계의 흔적’을 느끼기 시작한다.

현실의 균열, 그리고 또 다른 자신.
세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운명에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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