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변하지 않는 것, 변할 수 있는 것

by Song 블루오리온

1화. 돌아온 세 사람


[STAR그룹 본사 앞 – 오후 3시 14분]

‘슝—’

머릿속을 울리는 잔향과 함께, 세 사람은 다시 그곳에 서 있었다. 익숙한 하늘, 익숙한 바람, 익숙한 빌딩들.
그러나 왠지, 모든 것이 미세하게 어긋나 있는 느낌이었다.


“...우리가 돌아온 건가?”
강시후가 숨을 몰아쉬며 주위를 둘러봤다.

정하윤은 손목 시계를 확인했다. “시간은... 흐른 거 없어. 딱, 출발했던 시간.”

성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성공했어. 루프는 닫혔어.”


하지만 그 말과 달리,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뭔가 이상했다.
하윤이 중얼였다. “전에는... 이런 분위기 아니었는데.”

바삐 움직이는 직원들. 빠르게 돌아가는 전동카트.
그런데 웃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 긴장했고, 초조해보였다.
마치... 누가 매 순간을 감시하는 것처럼.

시후가 입을 열었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움직이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쫓기는 느낌이야.”


그들은 회사 로비 안으로 들어섰다.
무언가 낯익지만 낯선 공간. 새로 바뀐 디스플레이, 더 많은 보안 카메라, 그리고—포스터 하나.


회장 이태석, '성과 기반 재편성' 개혁 발표
– 내부 혁신 위원회 발족 및 전면 구조조정 시행 예정


“……뭐?”
성찬이 포스터 앞에서 굳어 섰다. “회장... 이태석?”

하윤이 느리게 말했다. “너… 아니야?”

시후가 스마트폰을 꺼내 뉴스 앱을 켰다.
첫 화면에 대문짝만하게 보도된 사진—이태석, 취임식장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모습.

[STAR그룹 제2대 회장, 이태석 취임]


성과 없는 자에겐 자리도 없다. 전면 개편 시작.”


“……뭔가 잘못됐어.”
성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건, 우리가 떠나기 전과 달라.”


하윤이 무슨 생각인지 로비 직원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요, 성찬 이사님 계시죠?”

직원은 잠시 멈칫하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아… 성찬 이사님은 본사 소속이 아니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연구소 인사라...”

시후가 낮게 말했다. “기록이... 지워졌거나 바뀐 거야.”

성찬은 곧바로 출입 게이트 앞에 서서 자신의 패스를 찍었다.
‘삑—출입 권한 없음’

“……이건 진짜 이상하네.”
성찬이 숨을 고르며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우린 제대로 돌아온 게 아니야.”

하윤이 말했다. “또 다른 현실, 평행선에 와버린 거야.”

그리고 성찬이 낮게 덧붙였다.
“아니, 우리가 무언가를 바꾼 결과일 수도 있어.”

그들은 서로를 바라봤다.
아무도 웃지 않았다. 그저, 고요한 각성.

이제 분명해졌다.
무언가가 잘못되었다.
그리고, 그걸 바로잡는 건...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2화. 낯선 진실

[STAR그룹 – 이사회 사무국 임시 미팅룸]

“이게... 우리가 알던 본사가 맞나?”

세 사람은 ‘임시 이사 대기실’로 안내되었다.
출입증은 없었지만, “회장님 특별 지시로 미팅을 준비하셨습니다”라는 말에 따라온 것이었다.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무언가 미리 짜인 판, 그러나 그들은 시나리오를 받지 못한 배우 같았다.


그리고 잠시 후, 그가 나타났다.
문이 열리고, 정장을 차려입은 이태석이 조용히 들어섰다.
눈빛은 여전히 차가웠고, 움직임은 느릿했다. 하지만 목소리는 단단했다.

“잘 돌아왔군.”

성찬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물었다.
“...지금, 무슨 짓을 한 겁니까?”

이태석은 웃지 않았다.
대신 작은 태블릿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려두며 말했다.
“이건 너희가 만든 결과야. 나는 다만, 기회를 놓치지 않았을 뿐이다.”

하윤이 눈을 좁혔다.
“당신이 평행우주에서 뭔가 바꾼 거야?”

“아니.”
이태석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내가 한 건 단 하나.
너희가 사라진 동안, ‘진짜 현실’의 판을 정리했을 뿐이지.”

그는 태블릿을 돌렸다.
화면엔 이사회 회의록이 떠 있었다.


‘회장 정권 공백에 대한 비상대응안 발효’
‘이성찬 이사, 장기 부재로 인한 권한 정지’
‘이태석, 대행체제 후 정식 회장 추대안 만장일치 통과’


성찬은 턱을 굳혔다.
“......우릴 일부러 부재 처리한 거군요.”

“그렇지. 사람은, 자리를 비우는 순간 의미를 잃어.”
이태석은 여유 있게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런데도 왜 우리를 다시 불러들였죠?”
정하윤의 물음에, 이태석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건 너희 셋이 예상 외로 필요해졌기 때문이지.”

“필요해졌다고요?”


“내가 완벽하게 장악했다고 생각했는데…”
그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예기치 못한 변수가 생겼어. ‘마지막 타임캡슐’ 말이다.”

시후가 눈을 부릅떴다.
“그 캡슐... 당신이 찾았어?”

이태석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여전히, 너희 셋만 열 수 있는 방식으로 잠겨 있다.”

“…….”

“그러니까 거래를 하자.”


그는 다시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내 아래에서 계속 일해라. 조건은 파격적이야. 회장 직속 자문역. 이사 자리도 보장하지.”

“…그럼 대가는?” 성찬이 물었다.

“마지막 캡슐.
그 안에 있는 정보를 내가 먼저 보게 해라.
그리고, 외부 유출은 절대 금지다.”

침묵이 흘렀다.
이건 단순한 회유가 아니었다.
이건 ‘감시 아래에서 기회를 주겠다’는 조건부 구속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이태석이 아주 조용히 말했다.
“물론, 거절해도 된다. 다만... 각자의 약점은 이미 준비해뒀다.”

성찬이 웃음을 터뜨렸다.
“협박이군요.”

이태석은 담담하게 맞받았다.
“이건 현실이지. 환상이 아니야.”

정하윤과 강시후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성찬도 고개를 돌렸다.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셋 모두 이해하고 있었다.
이 상황은 ‘우정’이나 ‘신념’만으로 헤쳐 나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새로운 게임이 시작된 것이다.






3화. 유혹의 균열


[STAR그룹 별관 – VIP 미팅룸 A, B, C / 동시에]


A룸 – 성찬

이태석은 성찬과 단둘이 남은 자리에서 낮게 웃었다.

“넌 내 조카니까 묻는 거다.
진심으로 이 회사의 미래를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냐?”

성찬은 조용히 턱을 괴고 말했다.

“삼촌이 그걸 판단해야 할 입장은 아니죠.”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이태석은 서류 하나를 꺼냈다.

“이건 내 사인만 남은 증서다.
이사회 상정 전에 이 문서만 공개하면, 넌 정식 회장직을 넘겨받는다.”

“…지금 넘기지 않는 이유는요?”


이태석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너도 나처럼 완전하지 않다는 걸 아니까.”

성찬의 눈이 찰나 흔들렸다.

“너는 아직도 그 애들한테 ‘인정받고’ 싶잖아.
강시후. 정하윤. 그들의 승인이 없으면 스스로도 회장이 아니라고 느끼는 거지.”

“….”

“그래서 약점을 주는 거야.
회장은 ‘동정’ 따위에 흔들리면 안 된다.”

성찬은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런 조언, 17년 전엔 고마웠어요.
하지만 지금은—내가 선택한 우정이 더 우선이에요.”

이태석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럼 시험해 보자.”



B룸 – 정하윤

정하윤은 고요히 앉아 있었다.
그녀 앞에는 낯선 회계장부와 문서들이 쌓여 있었다.

“이건… 전임 회장님 사임 직전, 기부금 관련 미심쩍은 흐름이에요.”

이태석의 개인 보좌관이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회장님께서는 정하윤 이사님의 도덕성과 판단력을 신뢰하십니다.
이번 이사회에서 해당 의제를 무마해주시기를…”


정하윤은 서류를 넘기며 중얼거렸다.

“…이걸 넘기면, 더 큰 걸 덮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시나요?”

“우리는 동맹을 원합니다.”

그는 문득 고개를 들었다.

“전 ‘판단력’만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기억하시죠?
전 누굴 위해, 어떤 기준으로 일해야 하는지도 생각해요.”

보좌관은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C룸 – 강시후

시후는 테이블 위의 파일을 한참 바라봤다.

표지는 없었다. 다만 내부엔…


[정지윤: 미공개 인터뷰 원문]
[최초 발견자: 이태석]
[내용 일부 편집: 송출용]


“…당신이 조작한 거였어요?”

이태석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그 영상은 진짜였지만, ‘타이밍’은 내가 조정했지.
그리고 널 자극하게 만들었고.”

시후는 주먹을 꽉 쥐었다.

“왜요?”

“그래야 네가 움직일 테니까.”


이태석은 테이블을 두드리며 말했다.


“넌 본능적으로 정의를 따라 움직인다.
그 본능을 내 손에 두는 게 더 이익이지.”

“…….”

“그 아이, 지윤이는 어디까지나 ‘자극제’야.
네가 감정에 흔들리면, 시스템은 다시 붕괴한다.”


시후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전, 당신의 설계에서 벗어나기로 했어요.”




[옥상 계단]

두 사람은 동시에 메시지를 받았다.
[비공식 회동 요청 – 발신자: 성찬]

잠시 뒤, 옥상 계단실 안.
성찬, 하윤, 시후가 아무 말 없이 마주 앉았다.


먼저 입을 연 건 하윤이었다.

“…회장이 되겠다는 생각, 변한 거야?”

성찬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여전히 할 거야.”

시후가 말했다.

“근데 왜 우릴 불렀어?”


성찬은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이태석은 결국, 우리 셋을 쪼개려고 해.”

“…그래서?”

“한 명이라도 약해지면, 끝이야.
그러니까 미리 얘기해두자. 나한테 의심 생기면—무조건 말해.”

하윤과 시후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은 손을 모았다.

이번엔, 어떤 유혹도—우릴 갈라놓지 못할 것이다.











4화. 마지막 캡슐, 다시 열리다


[타임캡슐 보안실 – 새벽 2시]

성찬, 하윤, 시후.
셋은 아무도 없는 보안실에 모여 있었다.

단 한 줄기 조명 아래, 오래된 기기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캡슐 #00 – 성찬 전용 루트’
시스템에조차 등록되지 않은, 비공식 캡슐이었다.


“이건…”
정하윤이 낮게 중얼였다.
“시스템에도 없던 번호야.”

“맞아.”
성찬이 무표정하게 말했다.
“이건 내가 만든 캡슐이 아니라… 지윤 누나가 만든 거야.”


시후가 돌아봤다.
“누나가…?”

성찬은 조용히 화면을 켰다.
“누나가 실종되기 직전, 나한테 줬어.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지금까지 숨긴 이유는?”
하윤이 물었다.

“그땐 몰랐거든.
이 안에, 누나가 남긴 진짜 경고가 있다는 걸.”


[타임캡슐 해제 – 인증 완료]
사용자: JIYOON.J / 열람자: 이성찬

부드러운 전자음과 함께, 화면이 켜졌다.
그리고 영상이 시작됐다.

[화면 속 – 정지윤]

“이걸 보는 사람이 누구든…
아마도 지금쯤이면 STAR그룹은 거대한 조작 위에 서 있을 거예요.”

“이건 단순한 예측이 아니에요.
저는 그 조작에 관여했고, 마지막에 빠져나왔어요.”

카메라 너머로 조용한 숨소리.
지윤은 망설이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

“그 시스템은 사람의 감정을 흉내 내요.
‘기억’을 조작하고, ‘의사결정’을 유도하죠.”

“그걸 설계한 사람은… 제 상사였고,
그 위에서 조율한 사람은, … 이태석이었어요.”


“하지만, 가장 무서운 건 따로 있어요.”

정지윤은 마지막으로 말을 이었다.

“그 시스템을 지금 ‘누가’ 사용하고 있냐는 거예요.”

“그게… 제가 아끼는 동생일 수도 있어요.
성찬, 너라면…
이걸 보고 나서라도, 내가 만든 선택지를 따라주길 바랄게.”

[영상 종료]

[정적]


성찬은 화면을 끈 채, 조용히 눈을 감았다.
“…누나는 알고 있었어.
내가 언젠가 이걸 열 거라는 걸.”

시후가 입을 열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이 시스템… 우리가 되돌릴 수 있어.”


하윤도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할 수 있어. 지금이라면.”


성찬은 조용히 웃었다.
“…그러자.
한 번쯤은, 진심으로 그 말 믿어볼게.”



[며칠 후 – STAR그룹 이사회 / 특별 안건 상정]

성찬은 단상에 섰다.
그리고 이번엔, 혼자가 아니었다.

양옆에 선 강시후와 정하윤.
그들은 무언으로 성찬을 지지하고 있었다.


“오늘, 저는 이사회에 두 가지를 제안합니다.”

“하나. STAR의 시스템은 인간의 기억을 모방할 뿐, 인간 자체는 아닙니다.
우리는 그 오류를 인정하고, 기록 복원 위원회를 설립해야 합니다.”


“둘. 이 회사의 미래는 AI 기술이 아니라—
그 기술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있습니다.”


“…그래서, 세 명의 신임 책임 이사를 공동 추천합니다.
저, 그리고 이 두 사람입니다.”


회의장은 잠시 조용했다.
그리고, 몇 초 뒤—
박수가 터졌다.



[이사회 종료 후 – 옥상 계단실]

셋은 조용히 앉아, 캔커피를 나눠 마시고 있었다.

“진짜 끝난 거야?”
시후가 말했다.

성찬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제 다시 시작된 거지.”

하윤이 웃었다.
“근데 이젠… 우린 셋이니까.”

셋은 말없이 캔을 부딪쳤다.
조용한 승리의 소리였다.








� [다음 화 예고 – 18장. 평행우주의 기억들]
지윤의 마지막 캡슐이 열린 순간, 또 하나의 변수도 함께 열린다.
지워진 기억, 겹쳐진 선택들.
그리고, 그 기억을 되살릴 자는 단 한 사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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