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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데레사 Mar 18. 2019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의미를 부여하고 책임을 질 용기


지난달 광화문교보에 갔을 때 신랑이 사줬다. 진작 읽을 수 있었는데 자꾸 우선순위가 밀려 그저께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다가 어제 새벽에 잠이 안 와서 반강제적으로 끝까지 읽어내려갔다. 


고든W.알포트의 추천사에서 나오듯이 정신 치료법의 제3학파를 (프로이트를 1학파, 아들러를 2학파로 부름) 탐구하는 방식으로 이 책을 대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나는 한 정신과 의사가 자신의 신분이 아무 소용도 없고 도무지 희망이라곤 없는 수용소 생활을 관찰하듯 쓴 문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가능하면 매일같이 면도를 하게. 유리 조각으로 면도를 해야 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 때문에 마지막 남은 빵을 포기해야 하더라도 말일세.
-중략-
그래서 고된 육체노동을 할 수 없게 된 사람들을 '회교도'라고 한다네. 조만간에, 아니 대개는 아주 빠른 시간 안에 회교도들은  가스실로 보내지지. 그러니까  늘 면도를 하고 똑바로 서서 걸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게.



                                    

작년에 깊이 공감하면서 읽었던 12가지 인생의 법칙 중 첫 번째인 '어깨를 펴고 똑바로 서라'의 내용과도 통하는 내용이다. 결국 존재의 이유를 헤아리기에 인간의 언어와 사고는 한계가 있다. 그 하염없는 기약을 할 바에야 당장 외양을 바로 세움으로써 내면을 견인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아우슈비츠 같은 공간에서 하루하루 연명하는 자에게 있어서는 이보다 더  확실한 내일의 보장이 없는 것이다. 



희망이라곤 없는 강제수용 소지만 일상은 펼쳐진다. 배식을 받아먹고 일하고 아프고 아주 드물지만 웃고 울고 하루를 보낸다. 가령 멀리서 들리는 축하연의 바이올린 소리에 홀리듯 흐느끼고 고된 노동을 극복할 유머를 개발하는 훈련을 한다거나 다른 사람의 콩죽보다 콩을 한두 알 더 얻었을 때의 상대적인 행복감을 느끼며 하루를, 또 하루를 지낸다. 식상하게 나의 처지와 수용소 생활을 대비하며 상대적인 안정감이나 행복감을 자아내고 싶지 않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어떤 감정이 생기고 어떠한 태도를 취할 것인지 그 태도는 어떠한 결과를 가져왔는지에 대한 저자의 시각을 따라가다 보면 로고테라피를 만나게 된다.


그 과정에서의 몇 가지 단락을 더 살펴보자.

                                                            

수용소에서의 체험을 통해 나는 수용소에서도 사람이 자기 행동의 선택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을 입증해 주는 예(이런 이야기는 종종 영웅적인 성격을 띠게 되는데) 즉 무감각 증세를 극복하고, 불안감을 제압한 경우는 얼마든지 많이  있다. 가혹한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를 받는 그런 환경에서도 인간은 정신적 독립과 영적인 자유의 자취를 '간직할 수 ' 있다는 것이다



                                        

오늘은 날이 흐리니 우울해, 우리 팀 아무개는 일머리를 너무 몰라 같이 일할 맛이 안 나, 누구누구 고객을 만났는데 결국 계약을 안 한다고 하니 힘이 쭉 빠져 오늘 아무것도 할 힘이 없어 등등. 이러한 심리적 반응과  태도는 물리적 사회적 조건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하물며 수면 부족, 식량부족, 일상적인 멸시와 구타, 시시각각 예상치 못한 생명의 위협에 만성적으로 시달리는 수용소 생활을 하는 수감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특정 환경은 사람을 어떤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유도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럼에도 수용소에는 천사 같은 사람도 돼지 같은 사람도 분명히 존재한다. 최종적으로 수감자가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되는가 하는 것은 그 개인의 내적인 선택의 결과 즉, 그 선택은 외부의 어떤 환경도 사람도 어찌하지 못하는 최종족인 내면의 자유인 것이다. 비참하게 의지 없이 똥물을 뒤집어쓰고 며칠이고 누워있다가 죽는 것도 동료 수감자에게 선의를 베풀다가 희생을 당하거나 결국 생존하는 것도 나의 자유라는 의미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조건을 탓할 시간에 이 자유를 어떻게 쓸 것인가를 고민하는 태도가 개개의 삶에 더 가깝고 깊숙이 설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그러다가 매일같이 시시각각 그런 하찮은 일만 생각하도록 몰아가는 상황이 너무 역겹게 느껴졌다. 나는 생각을 다른 주제로 돌리기로 했다. 갑자기 나는 불이 환히 켜진 따뜻하고 쾌적한 강의실의 강단에 서 있었다.
-중략- 
나는 강제수용소에서의 심리상태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나를 짓누르던 모든 것들이 객관적으로 변하고, 일정한 거리를 둔 과학적인 관점에서 그것을 보고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방법을 통해 나는 어느 정도 내가 처한 상황과 순간의 고통을 이기는 데 성공했고, 그것을 마치 과거에 이미 일어난  일처럼 관찰할 수 있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고통스럽고 괴로운 상황만 계속될 때는 미래의 믿음을 잃지 않고 현실과 떨어진 미래에서 이 순간을 조망한다면 지금을 덜 괴롭게 느낄 수 있고 어쩌면 죽음을 피할 수 있는 묘수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는 희망이 없는 사람보다 근거 없는 낙관주의자를 더 분통터진다고 한다. 그만큼 맹목적이고 대책 없이 낙관만 하다가 더 큰 실망으로 순식간에 나락에 빠진 경우를 본 탓이리라. 이러한 맥락에서 저자가 응용한 니체의 말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인생의 지표가 될 수 있다.


                                                         

"'왜' (why)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how)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
니체

                               

저자인 빅터 플랭클 박사가 창안한 로고테라피의 로고Logo는 '의미'를 뜻한다. 

이 책의 '살아가야 할 이유'챕터는 뺄 말이 하나도 없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것을 중단하고 대신 삶으로 부터 질문을 받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해 매일 매시간마다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말이나 명상이 아니라 올바른 행동과 올바른 태도에서 찾아야 했다. 
-중략-
일반적인 방식을 삶의 의미를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삶'이란 막연한 것이 아니라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중략-
만약 어떤 사람이 시련을 겪는 것이 자기 운명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다시는 그 시련을 자신의 과제, 다른 것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유일한 과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시련을 당하는 중에도 자신이 이 세상에서 유일한 단 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 어느 누구도 그를 시련으로부터 구해낼 수 없고, 대신 고통을 짊어질 수도 없다. 그가 자신의 짐을 짊어지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그에게만 주어진 독자적인 기회이다.


궁극적으로 인간은 자기 삶의 의미가 무엇이냐를 물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는 사람이 바로 '자기'라는 것을 인식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 인간은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으며, 그 자신의 삶에 대해 '책임을 짊으로써' 만 삶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오로지 책임감을 갖는 것을 통해서만 삶에 응답할 수 있다. 따라서 로고테라피에서는 책임감을 인간존재의 본질로 보고 있다.

                                    

나는 얼만치 내 인생을 책임지고 있을까.

어떤 선택들을 말 밑에 깔아 놓고 미래를 조망하고 있을까. 되돌아 볼 수 있었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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