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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푸근 Jan 04. 2017

달라져버린 우리에게

영화 <Like Crazy>를 소개해준 친구를 위해




누구나 한 번쯤 사랑이 변해가는 것을 느낀다. 누구의 잘못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현재의 상황과 그렇게 되어버린 현실이 슬프다. 내게는 초등학교 동창인 친구가 한 명 있다. 어머니의 과도한 교육열로 인해 새벽까지 공부를 해야 하는 초등학생이었던 내게 이 친구는 넘을 수 없는 벽과 같은 존재였다. 한 번은 전화통화를 하며 국가 이름을 서로 말하는 내기를 한 적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내가 알고 있는 국가들은 고갈되었고, 나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국가들을 옆동네처럼 말하는 그 친구를 보며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시간이 흐르고 그녀는 지금 중동에서 근무를 한다. 우리는 초등학교 이후 한동안 못 보다가 대학 때 우연히 만났다. 그리고 다시 만나지 못했지만 마크 주커버그의 은혜로 서로 연락을 하고 지낸다. 언젠가 한 번은 서로에게 영화를 추천하기로 했다. 한동안 외로움으로 샤워를 하고 다녔던 나는 영화 <Her>를 추천했고, 그 녀석은 내게 <Like Crazy>를 추천했다.


Like Crazy, 2011


요즘 잘 나가는 펠리시티 존스와 얼마 전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안톤 옐친이 만들어내는 지극히 현실적인 사랑이야기인 이 영화는 생각보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시작은 평범한 러브스토리이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호감을 갖고 불같은 사랑을 한다. 그들의 연애는 지극히 이상적이고 순조롭다. 서로를 위해 VISA 유효기간도 포기할 만큼 서로에게 깊이 빠진다. 문제는 그 이후부터였다. 영국 태생인 여주와 미국 태생인 남주가 떨어지면서 벌어지는 갈등은,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한 '장거리 연애'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한다. 함께 있을 때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는데, 단지 멀리 떨어져 있다는 이유로 그들은 표현의 장애가 생긴 듯 갈등을 겪는다. 그리고 또 다른 이성들이 주위를 맴돈다. 그러면서 서로에게 솔직해지는 것에 점점 더 멀어져 간다. 영원할 거라 생각했던 사랑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지극히 뻔한 이야기에 왜 그렇게 공감하냐고 나무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 번쯤 이런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쉽게 이 영화를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또다시 이별이 다가오는 순간의 그들


몇 년 전이었다. 나는 갑작스럽게 외국으로 발령이 났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당시 여자 친구에게 제대로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나는 그때 아무런 위기감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런 경험이 전무했었고, 가까운 나라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해외로 갔고 새로운 업무에 매몰되었다. 내가 관리해야 할 사람들은 넘쳐났고, 해결해야 할 사항도 많았다. 근무시간이 끝나면 회식이나 소소한 술자리를 통해 친목을 쌓아가야 했다. 그렇게 나는 여자 친구에 대한 소홀함을 늘려갔다. 전화를 못 받는 날들이 많아졌고, 그런 실수들은 조금씩 나도 모르게 쌓여갔다. 한 번은 발렌타인데이가 다가왔다. 나는 그동안의 잘못을 만회하려 그녀의 직장에 꽃바구니를 보냈다. 하지만 생각보다 나의 타이밍은 너무도 많이 늦었던 것을, 나는 밸런타인데이가 지난 다음 주에 알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별거 아닌 것들에 목숨을 걸고 열정을 쏟았다. 업무에서 인정받기를 원했고, 누구보다 많은 인맥을 갖길 바랬다. 시간을 되돌린다면 그런 것들에 목숨 걸지 말라고 말하고 싶지만 이제는 누구에게도 그런 말을 할 수가 없다.


생각해보면 정말 분한 일이다. 연애의 초반은 누구보다도 달콤하다. 상대를 알아가는 과정은 즐겨보는 영화처럼 시간이 지나가는 줄 모른다. 그렇게 쌓아놓은 너와 나의 모든 것은 가끔은 물리적 거리만으로, 때로는 별거 아니라 생각했던 작은 오해들로 너무나도 쉽게 무너져간다. 그래 알고 있다. 세월이 지나가면 모든 것이 조금씩 변해가는 만큼, 인간도 사랑도 변한다고 한다면 그러려니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해와 실제의 경험은 아주 다르게 느껴진다. 야속함은 멈추질 않는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이상하게도 내 친구가 걱정이 되었다. 이 녀석은 중동에서 꽤나 오래 일했다. 유능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외국에서 취업을 해서 보란 듯이 커리어를 쌓고 있을 거라고 생각도 했다. 하지만 자주 이 영화를 본다는 그녀의 말에 왠지 모르게 신경이 쓰였다. 혹시나 그 녀석이 이런 사랑에 상처를 받고 힘들어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감성쟁이의 오지랖은 대서양과 같다.) 어떤 영화를 좋아한다는 것은 가끔씩 그 안에서 스스로를 발견하고 있다는 의미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도란도란했던 기억이 그리워질때


영화 <Like Crazy>의 마지막 씬은 오픈된 결말로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마무리된다. (아직 못 보신 분들을 위해 스포 하지 않겠습니다.) 친구에게 문득 말하고 싶어졌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냥 인연이 다해서 일 수밖에 없는 문제야. 그러니 잊고 보내버려. 그리고 너무 힘들어하지 마. 나는 친구에게 영화에 대해 간단한 피드백을 공유한 다음, 이 영화를 볼 때 떠올랐다는 노래의 동영상을 보내주었다. 20대 초반, 나는 이 가수를 그저 우울한 누님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이에서 듣는 그녀의 목소리는 누구보다 호소력이 강하다. 가끔씩 흘러가는 세월이 야속하게 느껴지면서도 좋은 점이 한 가지 있다면, 이러한 공감이 아닐까 싶다.




https://youtu.be/4rVtm_3-o1k

이소라, 처음 느낌 그대로



(+) 스타워즈 로그원의 히로인인 펠레시티 존스는 생각보다 많은 영화에 출연했다.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사랑에 대한 모든 것, 2014>을 대표작으로 뽑겠지만, <Like Crazy, 2011>과 마찬가지로 생각보다 알려지지 않았지만 추천하고 싶은 영화가 있다. 랄프 파인즈가 감독과 주연을 동시에 한 <The Invisible Woman, 2013>이다. 지극히 영국적인 분위기가 매력적이지만, 영화팬들이라면 <The English Patient, 1996>의 두 주인공이 다시 열연하는 흥미로운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 안톤 옐친은 작년에 차량사고로 안타깝게 사망했다. 나도 이 배우가 기억나는 영화는 <Star Treck>이 유일하다고 생각했는데, 친구 곰팡이의 추천이 있었다. <Rudderless, 2014>가 그것인데 음악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충분히 만족하실 것이다.


(+++) 늘 좋은 사람들은 동시다발적으로 찾아오는 불변의 진리 아닌 진리가 가끔 존재한다. 그렇게 외로울 때는 개미 한 마리 지나다니지 않던 주변에, 꼭 괜찮은 이성은 동시 팝업처럼 나타나곤 한다. 이 영화에서도 두 주인공에 떨어져 있을 때 각자의 위치에서 매력적인 이성들이 나타난다. 남주의 마음을 흔드는 배우는 놀랍게도 제니퍼 로렌스이다. 그녀는 잠깐의 등장만으로 충분한 매력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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