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몽글몽글하다.
저 깊은, 마음 어딘가에서 물방울이 퐁퐁 솟아나 여기저기 촉촉하다.
책이 나온 후, 사랑하는 내 지인들은 선물을 한다며 다량을 구매하고, SNS에서 자발적으로 홍보를 해주고, 심지어 자기 돈으로 구매해 인친들에게 선물하는 이벤트까지 하고 있다. 육아 및 교육 책에서 전혀 도움받을 게 없을, 이제 아이들을 다 성장시킨 선배들도 몇 권씩 사서 격려차 '구매 인증'을 보내주고 있다. 책을 완독 해준 것도 고마운데 꼼꼼한 후기와 애정 어린 소감으로 응원과 격려를 보내오는 지인들도 있다.
내가 이렇게 넘치도록 사랑을 받는 사람이라니, 책 출간을 해놓고 긴장하던 마음은 어느새 사라지고 감사로 채워진다.
특히 후배들이 올려주는 홍보 글에는 여지없이 '나에 대한 고백(?)'이 등장한다. 멘토니, 롤모델이니 하는 분에 넘치는 표현들을 보고 있으니 새삼 내 지난날을 돌아보게 되었다. 어리숙하고 부족했을 나를, 옆에서 바라봐줬던 후배들의 반짝반짝하는 눈빛이 아마도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빈틈이 많은 사람이었을 텐데 이제와 후배들의 좋은 기억-그것도 앞줄-에 세워주니 나는 그저 다시 다짐할 뿐이다. 더 좋은 사람으로 잘 살아야겠다, 하는.
후배들의 기억 속에 등장하는 나라는 캐릭터와 달리, 내가 느끼는 젊은 시절의 나는 늘 힘이 들었다. 세상은 그다지 아름답지도 않았고 내 편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 심리의 형성은 어린 시절로 거슬러가야 할 텐데, 나는 나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는 게 편하지 않다. 집은 어려웠고 부모님은 최소한의 생계를 꾸려나가느라 바빴다. 아빠가 하던 일이 잘못돼 아주 어릴 때 집안에서 빨간딱지를 본 기억도 어렴풋하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잘 사는 집의 '빨간딱지'가 아니라 겨우 살아가던 집에 붙은 빨간딱지는 더 처참하다.
학창 시절 내내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학교에서 성실한 학생으로 살았다. 나 자신에 대한 자존감은 또 높아서 최소한의 일탈도 스스로 허락하지 않았다. 일찌감치 '그것만이 내 인생을 잘 꾸릴 수 있는 방법'이라고 깨달은 덕분이다. 생계로 바쁜 부모님이 '공부해라'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지만 나는 새벽에도 일어나 한방에서 자는 언니와 동생이 깨지 않게 작은 스탠드를 켜고 공부했다. 친구들이 다 학원에 다닐 때 나에게 학원비는 언감생심이었으므로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에 집중했다.
줄곧 목표로 했던 대학엔 가지 못했지만 '학원 한 번 안 다니고 그만하면 정말 잘했다'는 말을 들으며 대학을 갔고, 장학금을 받기 위해 공부하는 시간을 제외하곤 학비를 벌기 위해 과외를 서너 개씩 하면서 대학 시절이 지나갔다. 공부를 더하고 싶다는 마음은 사치여서 졸업도 하기 전에 이른 취직을 했고, 조금씩 더 나은 결정이라 생각되는 이직과 경험치를 쌓으면서 나의 젊은 시간들은 흘러갔다.
그러는 사이 나는 '스스로 해내는 힘'의 강력함을 믿게 됐고, 아이에게도 자연스레 '스스로의 힘'을 만들어주고 싶은 엄마가 되었다.
인생이 고단하다고 느끼던 내가 아주 사소한 것에도 행복을 느끼는 초긍정의 사람이 된 건 아이를 낳고부터다. 다른 건 몰라도 좋은 인품을 가졌다고 판단한 남편과의 결혼도 적잖이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긴 했겠지만, 엄마가 된 후의 그것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
아이가 어릴 때 엄마로 사는 건 젊은 날의 고단함보다 더 클 수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육체적 고단함에 불과했다. 아이라는 존재는 내 삶에 깊숙이 들어와 어디서든 행복과 감사와 기쁨을 충만하게 느끼게 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줄곧 '하나님은 다 뜻이 있으셨구나', '지난날의 내 고단함, 불운 등은 이 아이 하나로 다 충분히 보상받았다', '우리 아이를 만나기 위해서라면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 얼마든지 고단함을 겪겠다'라고 생각하게 됐다.
언젠가 어느 글에서도 고백한 바와 같이, 나를 정진하게 하는 건 '엄마'라는 이름이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나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할까.
그러나 요 며칠, 사랑하는 지인들의 '뒤늦은 고백들'을 들으며 내 삶에 책임감을 가져야 할 이유가 추가되었다.
월요일 아침부터, 갑자기 내 삶에 대한 고백이라니, 분위기 탓을 해보며
오늘도 굿모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