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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나더씽킹 Jun 13. 2023

엄마가 쓰고 아이가 AI로 그린 동화-1편

나의 이야기이자 세상 모든 엄마들의 이야기이기도 할...

<일 년 전쯤이었습니다. 잠이 든 아이 얼굴을 바라보다가 아이의 어린 시절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는 '이 순간도 곧 눈물 나게 그리워지겠지'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쓸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이가 자라는 동안 저는 늘 '아이는 독립된 자아다, 언젠가는 내 품을 떠난다, 그때 나는 쿨한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리라' 매일 다짐하며 살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로 독립적인 존재가 되어가는 모습을 볼 때면 하루하루가 아깝고 소중하고 벌써 눈물 나게 그립습니다. 

나의 이야기이자 세상 많은 엄마들의 이야기이기도 할 이 동화는, 그날 밤 심정을 토로하듯 썼던 글입니다. 당시 잠깐동안 브런치에 오픈하기도 했었고요. 

그리고 얼마 전 아이가 이미지 생성 AI의 도움을 받아 동화에 적절한 이미지를 제작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글 속의 주인공이 모두 완전하게 참여한 글이 되었네요.> 


<딱 한 번만, 다시 산다면>


나는 죽음을 앞두고 있는 여든 살의 노인입니다. 

사람들은 나를 ‘할머니’라고 부르고 나도 이제 그 명칭이 자연스럽고 익숙해요.


나이가 들면 아무도 ‘내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서 속상하다고들 그러지요. 

맞아요. 그런 것도 좀 있어요. 한데 나는 좀 달랐어요. 

내 이름보다는 ‘엄마’라는 호칭을 잃어가고 있어서 그게 참 속상하고 슬펐지요. 


자녀가 없냐고요? 

아니요, 저는 멋지게 잘 자란, 이제는 중년의 나이를 훌쩍 넘긴 아들이 한 명 있어요. 

아들하고 사이가 안 좋냐고요? 

천만에요, 나와 아들은 사이가 무척 좋아요. 자랑 좀 하자면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까지 다 큰 아들하고 사이가 좋아요?’ 할 정도로 친하답니다. 


그런데 왜 엄마라는 호칭 때문에 슬프냐고요?

다 큰 중년의 아이가 ‘엄마, 엄마’하고 부르는 일이 어디 그리 잦은 가요. 

어른들의 대화에서 호칭은 생략될 때가 많잖아요. 

돌아보면 나도 그랬는걸요. 다 크고 나서는 ‘엄마~ 엄마~’하고 다정하게 불렀던 일이 몇 번이나 되는지 손에 꼽을 정도인 것 같아요. 어려운 일도 아니었는데, 우리 엄마도 나처럼 서운하셨겠지요?


어린아이였을 때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엄마’를 불러 대고, 별 것 아닌 일에도 큰 일 난 것 마냥 ‘엄마, 엄마’하고 찾아 대고, 저 멀리서 뛰어올 때도 그냥 오지 않고 ‘엄마~~’라고 부르는 것부터 하죠. 그러다 자라면서 점점 ‘엄마’ 소리가 줄어들어요. 뭐 그게 잘못됐다고 할 수도 없지요. 누구나 커가는 과정에서 그래 왔으니까요. 


이제 와 돌아보면 ‘내 이름’으로 멋지고 당당하게 살았던 세월보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았던 시간이 더 행복하고 소중하고 그립게 느껴져요. 

내가 곧 세상과 작별하고 나면 우리 아들은 이제 ‘엄마’라는 말을 영영 못 부를 텐데, 그런 생각하다가 혹 슬퍼하면 어쩌나, 그런 걱정도 들고요. 아마도 그래서 ‘엄마’라는 호칭 때문에 더 슬픈 것이 아닌가 싶어요. 


사실, 나는 이번이 두 번째 죽음이에요.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실은 얼마 전쯤 나는 죽음의 문턱을 막 넘어가고 있었어요. 

그때 아들아이가 내 손을 꼭 잡고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 ‘엄마, 엄마, 엄마’ 수없이 불러 대는데 그 소리를 듣고 다시 삶을 꼭 붙들어 매었지요. 

‘엄마’ 소리를 끝도 없이 하는 아들아이 모습이 꼭 어릴 때 모습처럼 작고 연약해 보였어요. 그걸 보고 있자니 도저히 이대로는 못 가겠다, 싶었지요. 


버거운 숨을 쉬면서도 나는 강한 소망 하나를 품었어요. 할 수만 있다면 다시 아이가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딱 한 번만, 며칠만이라도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했지요. 사랑하는 왕자에게 달려가기 위해 사람이 되고 싶었던 인어공주가 영혼이라도 팔고 싶었던 것처럼, 할 수만 있다면 나도 내 무엇을 팔아서라도 돌아가고 싶었어요. 



믿기지 않겠지만 내 절실함이 결국 하늘에 닿았어요. 아니, 하느님을 만난 건 아니니 하늘은 아니겠군요. 어쨌든 마녀인지 마법사인지로 보이는 누군가가 내 앞에 나타났어요. 그리고는 소원을 들어주면 무엇을 내놓을 것이냐고 물었죠. 나는 한참을 고민했어요. 무엇을 내놓으면 나한테 덜 손해일까, 아이 어린 시절의 ‘엄마’로 살아가는 데 그나마 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한참을 생각했지요. 


너무 고민스러웠지만 어쩌겠지요. 한 가지는 포기해야 한다는데… 고민 끝에 나는 목소리를 내놓기로 했어요. 아이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봐야 하니 눈은 안 되겠고, ‘엄마 엄마’ 소리도 들어야 하니 귀도 안 되겠고, 다만 내 사랑은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면 되겠지, 하고 목소리를 내놓기로 한 것이에요. 

마녀인지 마법사인지와 단번에 거래가 성사되었지요.


그렇게 나는 목소리를 잃은 대신 아이가 어린 시절로 돌아갔어요. 세상에, 7살 유치원생인 아이를 눈앞에서 보는데 얼마나 기쁘던지 마구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아차, 나는 목소리가 없었어요. 그래도 괜찮았어요. 매일 꿈을 꾸는 것처럼 ‘엄마 엄마’ 불러 대는 조그만 아이의 손을 잡고 걸으며 하루에도 수십 번씩 안아주고 볼 비비는 것만으로 너무나도 행복했거든요. 말을 할 수는 없었지만 아이에게 표정으로 답해주고 열심히 편지를 써주면서 엄마의 사랑을 전해주었죠.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요. 나는 다시 슬픈 생각이 들었어요. 글로 쓰는 ‘사랑한다’는 딱 하나의 ‘사랑한다’이지만 나는 매번 다른 감정으로 사랑한다, 예쁘다, 고맙다, 미안하다,라고 말해주고 싶었거든요. 

그뿐 인가요. 잠든 아이 옆에서 자장가도 불러주고 싶었고, 예전에 수도 없이 그랬던 것처럼 무릎에 앉혀 놓고 동화책도 읽어주고 싶었어요. 살랑살랑 귓속말도 해주고 싶었지요. 그런데 나는 그럴 수가 없어서 매일 눈물이 났어요. 


안 되겠다 싶어서 다시 간절히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가졌어요. 아마도 그러면 다시 마녀인지 마법사인지가 찾아와 주겠지, 하면서요. 그런데 정말로 나타난 거 있죠! 나는 제발 목소리를 다시 돌려 달라고 부탁했어요. 마녀인지 마법사인지는 잠시 생각하더니 그 대신 무엇을 줄 수 있느냐고 내게 물었지요. 

다시 고민을 해보았어요. 이번엔 진짜 무엇을 주어야 할까, 어떤 게 가장 괜찮을까, 하고 말이죠. 아무리 생각해도 마땅한 답이 떠오르지 않는데 마녀인지 마법사인지가 그러는 거예요. 웃음을 달라고. 


처음엔 안 된다고 버텼지요. 하지만 도리가 없었어요. 다른 답은 딱히 생각나지 않고 마녀인지 마법사인지는 웃음을 달라고 하니, 나는 차라리 웃음을 주고 목소리를 얻기로 했지요. 



사랑한다고 말로 고백하는 것이 그렇게 행복한 일 인 줄을 몰랐어요. 나는 감정 표현에 목이 마른 사람처럼 매일 수십 번, 수백 번씩 아이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주었지요. 어떤 때는 나지막하게, 또 어떤 때는 달달하게, 또 어떤 때는 넘치도록. 


그러다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했어요. 어찌나 씩씩하고 멋지게 잘 자라는지 순간순간이 행복으로 차 올랐어요. 그런데 어느 날 아이가 물었어요. 엄마는 왜 웃지 않느냐고. 다른 엄마들은 항상 웃어주는데 왜 엄마는 웃어주지 않는 거냐고. 아차,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싶었어요. 엄마가 웃지 못하는 병에 걸렸다고, 사는 데 큰 지장이 있는 심각한 병은 아니지만, 어쨌든 너무 행복하고 기쁜데도 웃는 건 할 수가 없다고. 너로 인해 그 어떤 누구보다 가장 행복한 사람이 엄마이고 속으로는 하루에도 수 백 번씩 웃고 있으니 엄마 마음을 봐 달라고 설명했지요. 아이가 믿기를 바라면서요. 


이해를 했는지 어땠는지 모르지만 아이는 고맙게도 고개를 끄덕여주었어요. 그리고 다시는 엄마는 왜 웃어주지 않느냐고 서운한 말을 하지도 않았죠. 다만, 아이는 웃음을 잃어갔어요. 그렇게 잘 웃던 아이가, 별 것 아닌 일에도 까르르 넘어가던 아이가 웃음을 잃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뭔가 잘못됐다고, 크게 잘못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했지요. 


내가 어떻게 했을까요? 맞아요. 다시 마녀인지 마법사인지를 만나기 위해 간절함을 총동원했고 드디어 다시 마녀인지 마법사인지를 만났어요. 안 되겠으니 다시 웃음을 달라고 떼를 썼지요. 마녀인지 마법사인지는 짜증이 잔뜩 묻어난 표정으로 그러면 웃음 대신 이번엔 무엇을 줄 수 있느냐고 물었지요. 

나는 미리 생각해 둔 답이 있었어요. 이 답을 생각해 내고 나는 진짜 천재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바로 눈물이었어요. 한편으로는 마녀인지 마법사인지가 싫다고 하면 어쩌나 걱정을 했어요. 눈물을 갖다가 어디에 쓰겠어요. 그런데 웬일인지 마녀인지 마법사인지가 단번에 승낙을 하는 거였어요. 아마도 너무 귀찮아서 그런 것이었겠죠. 역시 여러 번 불러내기를 잘했다 싶었어요.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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