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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나더씽킹 Jun 27. 2023

아이의 독립=엄마의 독립

아이가 수학여행을 떠났습니다. 무려 4박 5일. 

독일학교는 대부분 4학년까지 초등학교 과정이고 5학년부터 중등 과정이 시작되기 때문에 

초등학교 졸업 학년인 4학년부터 수학여행을 떠납니다. 

4학년 때는 보통 2박 3일, 5학년이 되면 3박 4일, 6학년이 되면 4박 5일 등 학년이 올라갈수록 기간도 늘어나죠. 이동 거리도 달라집니다. 독일에 거주할 당시 고학년들이 국경을 넘어 스위스로 이탈리아로 수학여행을 떠나곤 했었죠.  

어떤 학교들은 학사 일정이 시작되는 가을에 수학여행을 가기도 한다는데 보통은 매 학년 모든 학사 과정이 끝나는 6월 말에 갑니다. 

 


코로나로 인해 4학년 때 수학여행을 가지 못했던 아이는 지난해 2박 3일 일정으로 다녀온 첫 수학여행 이후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작년에만 해도 친구들과 함께 가는 첫 여행이라 살짝 긴장하는 모습도 보이더니 올해는 온전히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하더라고요. 모든 과목의 시험과 학과 진도가 거의 끝난 6월 초부터 아이는 수학여행만을 기다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사춘기의 특성상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좋으니, 무려 4박 5일을 먹고 자고 놀고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들뜨는 건 당연하겠죠. 


긴장을 한 건 접니다. 어릴 때 할머니 댁에 혼자 며칠씩 가 있기도 하고 작년 수학여행 경험도 있지만 이렇게 긴 시간 아이와 떨어져 지내본 적 없는 탓입니다. 담임 선생님과 부담임 선생님이 동행하시고, 여기는 우리나라이고, 기껏해야 네다섯 시간 거리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온갖 걱정을 만들어서 하고 있는 겁니다. 


비 예보가 많은데 괜찮으려나, 등산을 한다는데 미끄럽진 않을까, 감기가 채 낫지 않아 기침이 남았는데 도지지는 않을까, 가져간 약은 잘 챙겨 먹으려나, 침대도 충분치 않은데 바닥에서 잠은 편히 잘 수 있으려나... 심지어 오고 가는 버스 안에서 에어컨 바람이 강하면 어떡하지, 챙겨간 옷들을 날씨에 맞게 잘 입어야 할 텐데, 돌발상황이 생기면 잘 대처할 수 있을까 등등 아이가 어릴 때 소중한 친구로 여기던 '걱정인형들'이 필요할 정도입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의식적으로나마 아이 앞에서는 '걱정 한가득'인 모습을 보이진 않았단 겁니다. 

사실 그럴 뻔했는데요, 여행 전날 패킹을 하며 사소한 것들까지 묻고 확인하고 챙기는 아이를 보면서 '아 내가 지금 굉장히 쿨하게 대처해야 할 순간이구나' 하고 깨달은 겁니다. 제가 걱정을 드러내는 순간, 그 걱정이 아이에게도 전가되겠구나, 싶었던 거죠. 뿐만 아니라 모든 상황에 대해 A to Z 알려주기보다 상황별로 순발력 있게 대처하도록 하는 것이 수학여행의 진짜 의미가 되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엄마가 일일이 모든 것을 설명해 주거나 알려주는 건 의미가 없을 것 같아. 모든 상황을 다 예상할 수도 없으니까. 4박 5일 동안 분명히 네가 처음 겪는 상황도 많이 있을 거야. 그럴 때 당황하지 말고 어떻게 대처하면 될지를 고민해 봐. 친구들을 보면서 배우는 것도 있을 테고. 또 실수를 한다고 해도 괜찮아. 그걸 통해서 배우는 것도 있을 테니까. 수학여행이란 게 원래 그런 거잖아. 단순하게 노는 게 아니라 그걸 통해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것들을 배우는 시간이 될 거야. 엄마 아빠랑 이렇게 긴 시간 떨어져 지내는 것도 처음이니까, 그것만으로도 엄청 성장하는 기회가 되겠다."


여행을 떠나는 날 당일 아침,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줄 때도 의도적으로 '업'된 기분을 드러냈습니다. 


"얼마나 재미있을까? 엄마도 중학교 2학년 첫 수학여행을 갈 때 진짜 진짜 설렜거든. 뭐 특별한 일정도 없었는데 그냥 그 자체로 좋았던 것 같아. 행복한 시간 보내고 와. 멋진 거 보고 맛있는 거 먹을 때 엄마 생각도 좀 해주고. 그런데 안 해도 괜찮아. 그럴 때 엄마 생각하면 좀 이상한 거잖아, 그렇지?(웃음) 엄마도 너 없는 동안 약속 많이 잡아놨어. 나도 잘 놀고 있을게!"


말은 그렇게 했는데요, 어제 아이가 없는 하루를 보내면서 집이 얼마나 적막하고 고요하던지. 남편이 저를 배려(?)해서 일찍 귀가했지만 음, 남편은 남편이고 아이는 아이더라고요?(웃음) 빈자리가 해결이 안 되는 거죠. 

휴대폰을 가져갈 수 없는 터라 담임 선생님이 가끔 단톡방에 올려주는 사진을 틈틈이 들여다보면서 '아, 아침 메뉴가 이거구나', '비옷을 다행히 잘 챙겨 입었네', '잠을 잘 못 잔 것 같은 얼굴인데 괜찮나', '위험하게 왜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있지?' 같은 멘트를 혼자 중얼거리는 중입니다. 


이번 여행을 통해 아이는 많은 경험을 하고 더 성숙한 존재가 되겠죠. 자립심과 독립적 마인드도 더 키울 테고요. 아이만 그런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이 기간이 제게도 독립을 위한 시간이 될 것 같아요. 


아이의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한 가지 결심한 게 있어요. 

'아이가 안팎으로 잘 독립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나의 목표이자 의무'라는 생각인데요. 가만 보니 그 독립은 제게도 해당되는 일인 듯합니다. 


이제 이틀째인데 아이가 너무 보고 싶네요. 떨어져 있는 시간으로 인해 함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다시 깨달으며, 아이가 대학을 가고 정말로 완전히 부모 곁을 떠나 물리적으로 독립하는 그날까지, 남은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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