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자기가 사춘기에 접어들었다는 걸 인정하지 않던 아이가, 이제는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스스로 생각해도 안팎으로 변화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한국 나이로 14살, 사춘기 시작치고는 빠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나이입니다. 요즘 아이는 자고 일어나면 키가 커져있다고 느낄 정도로 폭풍 성장하는 시기인데, 이렇게 몸이 어른처럼 자라고 있는 사이에 내면에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면 그게 더 문제겠지요.
아들이 사춘기인 것 같다고 느끼게 된 건 두 달 정도 되었는데요, 몇 가지 징후가 있습니다.
잠자는 것만 빼고, 공부부터 취미, 친구와 온라인으로 만나는 컴퓨터 채팅과 게임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활을 거실에서 했던 아이는 올해 초, 거실에 있던 데스크톱 컴퓨터를 아이 방으로 들이면서 서서히 방에 있는 시간이 늘기 시작했죠.
예상하지 못했던 건 아닙니다. 게임은 물론이고 코딩하고 작곡하고, 기타 등등 컴퓨터를 가지고 노는 시간이 워낙 많은 아이라 컴퓨터가 방으로 가는 순간 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질 걸 충분히 알 수 있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아이에게 '자기 방'에서 보내는 지극히 개인적인 시간이 필요해진 나이라고 판단했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더 길더라고요. 여전히 숙제하고 공부하고 책 읽을 때는 거실에 나와 있긴 한데, 그러니까 그런 시간보다 친구랑 수다 떨고 게임하면서 노는 시간이 훨씬 많아졌다는 뜻이죠.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컴퓨터 게임 시간을 하루에 30분~1시간으로 철저히 제한했지만, 언제부턴가 그렇게 통제하기가 쉽진 않더라고요. 느슨해 보이지만 자기 책임감을 중요시하는 교육을 지향하는 터라, 컴퓨터에 관한 것도 '네 스스로 잘 절제하고 관리할 것을 믿는다'라고 말한 뒤 주도권을 넘겨주었는데, 그 재밌는 게임 앞에서 어떻게 '철저한 스스로의 통제'가 가능하겠어요. 그래도 자기 할 일을 책임감 있게 다 하는 편이라, 딱히 크게 문제 삼을 일은 없으니, 그냥 참고 있는 거죠. (맞습니다. 저도 참는 겁니다. ^^)
그나마 다행인 건, 방문을 완전히 닫지 않고 열어둔다는 것? 이 부분은 컴퓨터를 방으로 들일 때부터 했던 약속이기도 한데요. 사실 '감시'의 목적이 없었던 건 아닌데, 그때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 보고 싶을 때마다 엄마 아빠가 수시로 볼 수 있도록 방문은 완전히 닫지 말아 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씩 방문이 닫혀 있는 때가 있는데요, 그럴 땐 노크하고 들어가서 따뜻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방문 왜 닫았어? 엄마가 너 보고 싶어서 이렇게 들어왔잖아."
그러면 씩~웃으면서 다시 열어두는데요, 앞으로 더 커가면서 방문이 닫혀있는 시간이 많아지겠지,라는 짐작도 합니다.
등교와 하교, 여태 거의 매일 아이를 차로 라이딩해 왔는데 제 일이 많아지면서 올해 봄부터 오후에는 아이 혼자 버스 타고 오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처음엔 바로 버스를 타고 집으로 직행하더니, 한 두 달 전부터 하교 후에 친구들과 어울려 편의점도 가고, 학교 앞 정류장을 놔두고 한 블록을 더 걸어가며 수다도 떠는 등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러더니 주말에도 지하철역에서 친구를 만나 축구 경기도 보러 가고, 친구들하고 약속해서 공연도 보러 가고, 엄마에게 허락을 구하긴 하되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일정들도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다행인 건, 친구들과 있었던 시간에 대해 집에 돌아와 재잘재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준다는 점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재미난 말들이 오갔는지, 친구들 면면은 어떠했는지, 더 이상 궁금한 게 없다 싶을 정도로 이야기를 해주니 걱정이나 불안 요소가 끼어들 틈이 없더라고요.
그래도 아직은 친구보다 부모, 가족이 먼저라고 믿습니다만, 조만간 부등호가 친구를 향하는 날이 오겠죠? 어쩌면 이미 그러한데 말을 못 하고 있는 것뿐일까요? ^^
이젠 어디를 한번 가려고 하면, 뭔가를 같이 하려고 하면 설득하는 시간이 많이 필요합니다.
예전에도 일방적이지 않고 아이 의견을 묻고 진행해 왔지만, 지금은 저항의 요소가 많아진 겁니다.
딱히 설명이나 설득이 필요 없던 일들도 '왜 해야 해?' 혹은 '왜 가야 해?'라는 질문을 받고 답해줘야 하는 일들이 생긴 거죠.
아직은 할 만합니다. 에너지가 더 드는 건 사실인데, 협상이 아예 안 되는 건 아니거든요. 그래도 일단 스스로 납득하고 나면 더 이상 토를 달거나, 내내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다거나, 불평 불만하지는 않으니 이 정도면 괜찮은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부분이 가장 당황스러운 부분입니다. 늘 친절하고 사랑스러운 어투였던 아이의 어투가 달라진 걸 느낄 때마다 공격받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한편으론 이제 인내심을 키울 시점이 온 것인가, 생각도 들고요.
별 것도 아닌 일상적 상황에 그런 뉘앙스의 언어가 끼어드니, 처음엔 이걸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고민스럽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아이에게 다음과 같은 말로 두 가지 약속을 제안했습니다.
아직까지 이 두 가지 약속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까지는 없었는데요, 저 스스로는 잊지 않고 매일 상기하고 있는 중입니다. 혹여라도 제가 먼저 약속을 깨는 일이 있으면 안 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