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시도들이 가져올 큰 변화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프롤로그>
우리 집 아이는 올해 한국 나이로 12살, 만으로 10세인 남아입니다
3년 넘게 독일에 거주하다 귀국한 지 이제 채 2달이 되지 않았는데, 어쩌면 자아 형성하는 데 첫 번째로 가장 중요한 시기였을 만 7세부터 외국에 거주하며 저 또한 학업적으로 푸시하지 않은 덕분에 보통 한국 아이들이 그 나이 때에 겪는 이런저런 학업 스트레스가 거의 없는 편입니다. 한국에서 유치원 다닐 때부터 초긍정적인 아이로 유명했지만, 덤으로 환경까지 받쳐줬으니 행복한 아이죠.
지난해 말, 귀국을 앞두고 한국 학교로의 편입을 준비하면서 가장 큰 고민도 그 지점이었습니다. 한국 교과 준비를 하지 않을 수는 없어서 수학 정도만 스스로 문제집 푸는 것으로 유지하게 했는데, 한국에서 공부하는 또래 아이들이 얼마나 노력하는지 간접적으로 듣고 보면서 과연 우리 아이가 그 안에서 잘 따라갈 수 있을까 걱정이었거든요. 사실 공부를 따라가는 것보다 걱정이었던 건, 지금의 이 행복한 감정(스스로 굉장히 행복하다고 생각하면서 삽니다), 본인 미래와 꿈에 대한 순수한 열정(시키지 않아도 놀면서 자연스레 꿈이 많아지고 바뀌고 노력하더군요),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게 너무나 많은 아이(악기 연주며 작곡, 프로그램 코딩, 책 쓰기, 유튜브로 음악 창작법을 가르치기 등)의 왕성한 호기심과 창작열을 더 키워주고 싶은데 과연 가능할까 싶었죠.
학교 수업을 하면서, 외국 사는 동안 부족할 수밖에 없었을 교과 과정을 따라잡기 위해 공부해야 하고, 다들 한다는 선행학습을 적어도 최소한은 해야 할 터이니 이 모든 것을 하면서도 아이에게 본인이 하고 싶은 많은 것들을 할 여백의 시간을 줄 수 있을지 의문이었던 거죠.
막상 해보면 가능했을지도 모르지만, 결론적으로 우리 부부는 아이를 외국인학교에 보내기로 했습니다. 사실 학비 등이 버거웠지만, 아이를 믿어보기로 한 거예요. 한국 공부를 놓을 수는 없으니 그건 학원 대신 스스로 자기 주도 학습으로 채우고, 외국인학교가 제공하는 한국식에 비해 굉장히 자유로운 학습을 하면서 지금껏 해온 대로 자기 계발(사실 알고 보면 어쨌든 노는 건데 말이죠)을 이어갈 수 있는 방식을 택한 거죠. 물론 이게 생각대로 잘 흘러가 줄지는 지켜봐야 알 것 같지만, 일단 그리 해보기로 했습니다.
학교 이야기를 굳이 하는 까닭은, 제가 생각하는 교육의 가치관을 언급하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아이가 자기만의 생각과 의견을 가진 아이로 자랐으면 하는 소망을 갖고 있어요. 단순히 말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own opinion' 말입니다. 어떤 주제가 있더라도 그 사안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할 줄 알고, 상대가 또래이든 어른이든 자기 생각을 거침없이 이야기하고 망설임 없이 대화할 수 있는 사람으로 커가길 바라죠. 주입식 공부 환경에서는 독립적 사고와 의견을 갖춰나가는 게 쉬운 일이 아닐 것 같다는 판단을 나름 한 겁니다. 제가 물론 틀릴 수도 있지만요.
여기서 어떤 언어를 사용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저는 당연히 한국어가 먼저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독일에 사는 동안에도 한글 책 읽기를 놓지 않도록 하고, 부모와 대화할 때 의도적으로 쉬운 언어가 아닌 어려운 어휘들을 쓰며 '그게 무슨 뜻이야?' 식의 호기심을 유도한 건 성숙한 국어실력을 갖추고 우리말로 생각하고 대화할 수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죠.
본격적으로 아이의 생각하는 능력을 키우고 자기 의견을 갖추도록 만들기 위해 아이가 한국 나이 10세였던 2019년 중순부터 엄마와 함께 하는 토론 수업을 시작했어요. 언어능력 향상을 위해 엄마표 국어수업 혹은 토론 수업 혹은 논술 수업을 해야겠다, 하고 작정해서 시작한 일은 아니에요. 직업(전직이지만요) 상 국내외 뉴스 보는 게 일이었던 저는 아이가 대화가 되던 시절부터 이런저런 아이가 흥미로워할 만한 뉴스에 대해 이야기해주곤 했었는데요, 아이가 커가면서 점점 그 이슈를 가지고 대화가 통화는 시점이 오더라고요. 일찍부터 뉴스를 듣고 보고 자란 아이도 국내외 이슈에 관심이 많았고요.
뿐만 아니라 그 무렵, 독일에서 나고 자란 한국인 2세들을 알게 되면서 그 아이들이 굉장히 자기주장을 잘하고 어른들과도 주눅 들지 않고 대화하는 모습들을 많이 봤거든요. 말을 잘하고 못 하고는 나중 문제고 저는 궁금했어요. 어떻게 아이들이 저런 태도와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까. 나중에 그 아이들을 비롯해 독일에서 교육을 받은 몇몇을 개인적 호기심으로 인터뷰하면서 독일 교육에 그 비밀이 있음을 알게 되었죠.(이 부분은 이 매거진을 진행하는 동안 자세히 한 번 다루려고 합니다.)
평소 대화 자체를 좋아하는 아이라서 시작 자체가 어렵지 않다는 장점도 있었어요. 같은 또래의 관심사와 성향이 비슷한 이중국적(한국, 미국)의 친구와 그렇게 해서 일주일에 한 번 토론 수업이 시작되었어요. 주제는 그 주에 일어난 주요 국제 뉴스 혹은 국내 뉴스를 다뤘고요, 딱히 마땅한 주제가 없었을 때는 아이들이 생각해보면 좋을 만한 거리를 던져주고 토론하게 했죠. 저는 중재자로서 마치 TV 토론을 진행하는 방식을 취하며 MC 역할을 맡았는데, 아이들은 그 상황 설정 자체를 굉장히 즐거워하더라고요. 때로 아이들은 둘이 한 편이 되어 저를 상대로 토론을 펼치기도 했는데, 그럴 때는 더 신이 나더군요.
그렇게 토론을 진행한 지 1년 하고도 반이 훌쩍 넘어가다 보니 아이들은 이제 어떤 주제에 대해 자기 의견을 펼치는 데 전혀 주저함이 없습니다. 때론 굉장히 어려운 이슈를 던져주기도 하는데, 일례로 지난주 수업에서는 '이익공유제'를 다루었었죠. 그럴 때조차 아이들은 본인이 가진 배경지식 선에서 자신만의 의견을 잘 개진합니다. 깊이가 떨어질 수는 있죠. 아직 어린이들이니까요. 그런데 저는 틀에 갇히지 않으면서도 문제에 대해 생각할 줄 알고 그에 대한 나름의 논리를 펼치며 주장할 줄 아는 아이들이 너무나 대견해요. 어떤 때는 아, 이런 생각도 가능하구나, 저도 놀랄 때도 있고 또 어떤 때는 너무 황당한 이야기에 웃음이 빵 터질 때도 있지만 아이들의 생각이 점점 자라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죠.
이 매거진을 시작한 이유, 그리고 앞으로의 이야기들에 대해 가볍게 쓰고자 한 페이지가 길어졌네요.
결론은 이러합니다. 생각할 줄 아는 아이, 자기만의 의견을 갖춘 아이, 그래서 사고 자체가 건강하고 독립적인 아이로 키우고 싶은 마음에 시작한 저의 작은 시도들이 모여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것. 그 변화란, 아이가 공부를 잘하거나 좋은 학교에 가거나 성공하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저와 남편은 설령 아이가 세상이 기준으로 한 잣대로 성공하지 않더라도 멋진 어른으로 자랄 것이란 점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 변화를 이끌어가는 과정과 방식들을 앞으로 하나둘씩 기록해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