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툭 생각할 거리를 던져줍니다

일상 속 짧지만 의미 있는 대화가 불러오는 매직

by 어나더씽킹

나 : "엄마가 새벽에 어떤 교수님 인터뷰 기사를 읽었는데, 그분은 올해 101세가 되신 분이야. 100년 넘게 사는 동안 깨달은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기사였는데 너무 재밌더라."

아들 : "100살이 넘었다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이가 많아?"

나 : "음 글쎄, 아마 아닐걸."

아들 : "근데 행복이 뭐라고 했어?"

나 : "행복한 사람과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참 지혜롭다는 생각을 했어. 직접 읽어봐. 그런데 너는 행복이 뭐라고 생각해? 언제 행복해?"

아들 : "노는 거지. 놀 때 행복해."

나 : "그 선생님은 항상 일과 공부를 해야 건강하고 행복하다고 했는데, 네가 말하는 '노는 것'하고도 비슷할 수 있겠다. 너는 그냥 놀지 않고 뭔가 '하면서' 노니까."


오늘 아침 7시 30분, 아침을 먹는 아이를 앞에 두고 나눈 대화입니다. 채 5분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의 대화였지만 나는 아이에게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지고 싶은 의도를 깔고 있었죠. 오늘 오후가 될지, 주말이 될지, 며칠 후가 될지 모르지만, 나는 아이에게 풀 버전의 인터뷰 기사(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의 인터뷰 글입니다)를 읽게 하고 그 후 '행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입니다.

아마도 대화는 심각하지 않게 흘러갈 거예요. 또래보다 성숙한 생각의 깊이를 갖고 있지만 막상 정색하고 마주 앉는 인터뷰(저는 아이와 특정 주제를 가지고 종종 인터뷰를 합니다. 아이의 생각이 자라는 과정을 기록해두기 위해서죠. 지금껏 세 번 진행한 인터뷰는 브런치의 다른 카테고리에 있고, 조만간 네 번째 인터뷰를 예정하고 있습니다.)가 아니면 아이와 대화는 웃다가 진지하다가 보통 그 사이를 왔다 갔다 합니다. 대화는 무조건 재미있어야 하고, 그래야 지속될 수 있으니까요.

혹시 아이가 지루해할라치면 나는 맥락과 관련이 있되 아이가 웃을 만한 에피소드를 마구 투척할 겁니다. 그게 저만의 비법이죠. 아이가 '웃는' 코드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적절한 상황에 웃는 상황을 만들어 아이가 더욱 대화에 흥미를 느끼게 만드는 것. 이를 테면 오늘 본 기사에서 김 교수님이 최근 출장길에서 당신 나이가 '1살'로 인식된 오류 탓에 비행기 티켓을 받지 못한 에피소드 등이 될 수 있겠네요. 지금 생각난 건데 아이가 몇 번을 돌려보며 깔깔거리는 '보스 베이비'와 연결해서 이야기하면 아마 박장대소할 것 같네요.


아이는 말이 참 많습니다. 하루 종일 입이 가만있질 않아요. 모든 얘기를 다 잘 들어주냐고요? 그렇지 못합니다. 친구 얘기, 장난감 얘기, TV 만화 얘기, 책 얘기, 지금 만들고 있는 게임 스토리며 각종 테크니컬 한 이야기까지... 사실 그중에 많은 이야기를 흘려들을 때가 많은데, 그럴 때 아이는 꼭 얘기를 잘 들었는지 확인을 해서 사람을 당황시키기도 해요. 그럴 땐 대충 넘어가기도 하고 양해를 구할 때도 있습니다. "지금 엄마가 좀 바빠서 이야기를 들어줄 수가 없어. 나중에 들으면 안 돼?" 그럴 때 실망하긴 하는데 정말로 나중에 다시 이야기를 해주죠. 반대로 제가 '아까 하려던 이야기 무엇이었냐'라고 물을 때도 있고요. 대화에 관한 우리 둘 사이에는 단단한 신뢰가 형성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대화를 잘하는 관계는 없을 겁니다. 그 어떤 관계가 됐든 말이죠. 정신연령이 한참 어린, 아이와의 대화라면 더더욱 쉬운 일은 아니죠.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사실 대화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어요. 친구들 이야기, 재밌는 책 이야기 정도를 일방적으로 듣거나 아니면 제가 묻거나, 하는 식의 수준이었을 거예요. 다만, 그건 있었어요. 아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잠자리에서 책을 읽어주는 습관을 가지고 있는데 단순히 책만 읽어주기보다는 거기서 파생되는 이야기들을 종종 나누었던 거죠.

차 안에서 많은 대화가 이뤄졌었네요.

본격적으로 대화다운 대화를 할 수 있었던 건 초등학교 1학년 하반기부터였어요. 당시 독일에서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아이를 저는 아침마다 태워다 주고 오후에 데리고 와야 했어요. 학교까지 가는 시간이 짧으면 10분 길면 20분 정도 됐는데, 차 안에서 정말 너무나 많은 대화의 역사가 일어난 거죠. 딱히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해야지' 하고 하는 건 아니었어요. 어떤 날은 전날 꾼 꿈 이야기로 시작했고 어떤 날은 그날 있을 학교 행사 이야기도 하고 어떤 날은 아이의 걱정거리를 눈치채고 마음을 풀어주는 대화를 하기도 했죠. 학교에서 돌아올 때는 어김없이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한 대화를 하게 됐는데, 그러다 보니 저는 아이의 학교 생활에 대해 거의 모르는 게 없어요. 학교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에피소드는 물론이고 선생님과 친구들 면면까지 말이죠.

그 일상적 대화들 속에서 저는 많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아이가 생각해봤으면 하는 문제들 혹은 정말로 내가 아이의 생각이 궁금해서 던지는 질문들도 있었죠. 결국 인생에서의 모든 답은 본인이 찾아야 하기에, 지금은 그저 생각하는 방법, 생각하는 즐거움, 그로 인한 단단한 마음과 건강한 멘탈까지 갖출 수 있도록 부모가 이끌어주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같은 학교의 친구 엄마들은 저를 부러워했어요. 남자아인데 조근조근 엄마랑 대화를 잘하고 학교생활에 대해서도 많이 알려준다고 말이죠. 보통 남자아이를 둔 엄마들(일부 여자아이 엄마들도요)은 아이의 학교 생활에 대해 거의 잘 모르더라고요. 물어도 잘 이야기를 안 해준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이렇게 조언했어요. "아이 기분이 좋을 때 재밌는 이야기 해가면서 잘 유도해봐. 말하고 싶어 지게 만들면 분명히 수다스러워질걸?"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대화하자'라고 분위기 만든다고 해서 대화가 되지는 않습니다. 평소 5분이든 10분이든 상황이 생길 때마다 대화하는 습관이 형성돼 있을 때라야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대화가 가능한 거죠. 아, 앞에서도 말했지만 대화는 즐거워야 하기 때문에 엄마는 늘 유머를 장착하고 있어야 합니다. 12세인데도 아직 방구며 오줌, 똥 얘기에 넘어갈 정도로 웃는 우리 집 남자아이를 위해 저는 늘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들을 생각해두고 있습니다. 어딜 가다가도 '아이가 이걸 보면 웃겠다' 싶은 건 사진을 찍어오기도 하고, '이 얘기를 해주면 깔깔거리겠지' 싶은 말 안 되는 개그도 만들어냅니다. 사실 저는 굉장히 진지한 사람인데 아들과 대화만 했다 하면 웃긴 얘기들을 마구 해댑니다. 그런 아이디어는 순간순간 어떻게 그렇게 잘도 생각나는지 몰라요.


한 번은 이런 적이 있어요. 미술을 통해 보는 역사 관련 책을 재밌게 읽고 있었는데 아이가 뭘 읽는지 궁금해하더라고요. 마침 프랑스혁명에 관한 내용이라 프랑스혁명 이야기와 그 안에서 활약한 자크 루이 다비드 같은 화가의 이야기, 혁명에 참여하는 형태는 그림이나 글 같은 것으로도 다양하게 할 수 있다는 이야기 등을 설명해주다가 파리 여행 갔을 때 오르세 미술관과 루브르 박물관에서 본 작품들의 기억들까지 소환해냈죠. 그러다 아이는 파리 지하철역에서 '작은 볼 일'을 보던 아저씨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던 장면을 꺼냈고, 파리는 원래 역사적으로 지저분한 도시였고, '똥 냄새' 없애려고 향수가 발명됐다는 데까지 얘기가 흘러갔어요. 그때 아이가 얼마나 즐거워하던지 아직도 그 표정이 기억나네요. 아이가 지금도 '향수' 하면 똥을 떠올리니 이건 부작용인 것도 같긴 하네요.


우리 아이는 아직 사춘기와 거리가 멀었지만, 저는 사춘기를 전혀 걱정하지 않습니다. 부모와 대화가 잘 되는 아이라면 사춘기가 겁날 이유가 없지 않겠어요? 저는 대화가 가져오는 마법 같은 힘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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