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자란다는 것'을 증명하는 순간

지극히 철학적인 질문 앞에서

by 어나더씽킹

아이는 책을 좋아합니다. 한번 시작하면 책을 다 볼 때까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무거운 엉덩이'도 가지고 있죠. 워낙 혼자서도 다양한 책을 잘 보는 편이라, 아주 어릴 때부터 잠자리에서 책을 읽어주던 습관이 최근 1~2년 새 점점 빈도수가 줄어들긴 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아이는 엄마가 책을 읽어주는 순간을 행복하게 즐깁니다. 어떤 날은 자기가 수없이 읽은 책을 다시 읽어달라고도 하고 어떤 날은 내가 먼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선정한 책을 읽어주기도 하죠.

최근 아이와 잠자리에서 읽고 있는 책은 굳이 말하자면 후자 쪽입니다. 한 달 전쯤, 읽고 싶은 영어책을 구하기 위해 집 근처 대형 서점에 갔다가 우연히 발견한 책인데 철학 관련 도서입니다. '청소년을 위한'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어 다소 아이에게 어려울 수도 있겠다 생각했지만 몇 장 들춰보니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느껴졌어요. 아이에게 의사를 물어보니(책 한 권을 살 때도 아이 의사가 꼭 반영되도록 하는 편입니다) 재밌겠다, 고 하기에 구매했는데 한 두 번 슬쩍 보는 것 같더니 막상 제대로 책을 읽지는 않더라고요. 스스로 진입장벽을 좀 느꼈던 모양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보기에도 아이에게 책 속 표현이나 용어들이 어려울 것이라고 짐작이 됐습니다. 3년 넘게 외국에 살았지만 우리말을 구사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고 제 수준의 한글 책도 무리 없이 읽는 아이지만 아무래도 '어휘'(특히 한자어)는 한국에 살지 않았던 공백이 있긴 하더라고요. 물론 책 자체가 중학생 이상을 대상으로 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아빠가 책 읽어주는 날에는 한글 창작 소설을 같이 읽고 있기에, 나는 잠자리에서 철학책 같이 읽기를 제안했습니다. 우리 부부는 보통 아이에게 '너는 어떻게 생각해?'라고 묻기를 즐기는 편인데, 그 질문을 던지기에 딱인 책이었죠. 어려운 단어들을 풀어가면서 읽어주는 데다 중간중간 생각해볼 내용이 있으면 잠시 책을 덮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질문을 던지며 그렇게 단순 독서보다는 대화 거리를 제공하는 독서를 같이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책에 대해 큰 흥미를 갖게 된 아이는 늦어진 취침 시간으로 인해 철학 책을 함께 읽지 못하는 날을 무척 아쉬워할 정도가 됐습니다.


굳이 이 책 읽기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는 까닭은 아이의 생각이 자라고 있다는 것을 또 한 번 확인하는 기회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꼭 독서 경험, 대화 경험이 아니라도 아이의 내면이 생각이 몸 자라는 것 못지않게 혹은 그 이상으로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기회는 아주 많긴 합니다만, 보다 철학적 주제를 놓고 이야기하다 보니 더욱 확신하게 된 것이죠.

며칠 전에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매일 한 챕터(질문 하나마다 챕터 하나로 구성돼 있습니다)씩 읽고 있는데 그날의 질문이 바로 "경험과 환경에 따라 인간의 생각은 어떻게 자라날까?"였습니다. 생각이 자라날 수 있다는 말을 한 시칠리아의 철학자 엠페도클레스의 주장과 사상을 통해 생각이 어떻게 자라나는지 생각이 자란다는 것은 무엇인지 등을 '생각'해보는 기회였죠. 책 속에서는 생각이 자란다는 것을 어린아이의 '보행기 탈출'에 빗대어 설명하고 있는데 아이와 나는 그 부분에서 전혀 이견 없이 완전히 동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이 스스로 생각이 자란다는 것에 대해 결과적으로 자기만의 의견 혹은 생각을 갖는 것이라고 인지하고 있는 것에 대해 뿌듯한 마음이 들었죠.

그날로부터 하루 이틀 전에는 이런 상황도 있었습니다.

"엄마, 오늘 읽을 부분 완전 재밌어!"

침대에서 나를 기다리던 아이는 읽기도 전부터 들떠 있었습니다.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는 챕터였는데 철학자(헤라클레이토스)의 멘트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어요. "그 강은 같은 강이 아니고 우리도 같은 우리가 아니다." 이 대단히 철학적인 질문과 멘트에 아이는 단단히 흥분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실로 이날의 책 읽기와 우리의 대화는 깊이가 있으면서도 재밌고 또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물론 나는 또 한 번 아이의 '자라는 생각'을 엿볼 수 있었고요.

책 속에서는 시종일관 헤라클레이토스의 주장을 토대로 모든 것-사물이든 자연이든 사람이든-이 매 순간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다가 문득 철학자의 주장에 반기를 들고 싶어 지더라고요. 그래서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음, 나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주장에 약간 반대야. 어떤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봐. 헤라클레이토스 주장대로라면 1분 전의 그 사람과 1분 후의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인 건데, 사람을 구성하는 아주 중요한 요건들 있잖아. 성격이라든가 인품이라든가 배경이라든가 하는, 그런 중요한 것들이 그대로라면 그 사람은 계속 똑같은 사람이라고 봐야 하는 거 아닐까? 단순히 시간적인 '순간'이 흘러갔다고 해서 그 사람이 전과 같은 사람이 아닌 건가?"

나는 사실 나의 의견을 말하는 척하면서 아이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이 지극히 철학적인 문제에 대해 아이 스스로 어떤 생각을 하는지가 무척 궁금했기 때문이죠. 내 말을 다 들은 아이는 몇 초 뜸을 들이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음, 뭐 그렇게 볼 수도 있는데, 나는 매 순간은 아니더라도 '어떤 순간'은 그 사람을 완전 달라지게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해. 리자(아이의 독일어 튜터다)를 봐봐. 리자는 동물 보호에 대한 어떤 다큐멘터리를 보고 채식주의자가 됐대. 그 다큐멘터리를 보기 전의 리자와 본 후의 리자는 완전히 다른 리자야."

나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기대하지 못했던 답인데 너무나 명확하게 본인의 생각을 예를 들어 설명하는 아이를 보면서 가슴이 벅차오르기까지 하더군요.


그리고 바로 그 날, 아이가 말한 '어떤 순간'이 아이에게도 찾아왔습니다. 그날의 대화가 무척 재밌었던 때문인지, 질문 자체가 가진 힘 때문이었는지 해당 챕터를 끝내고 책장을 덮는 순간 아이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엄마, 나 철학자 될까?" 생각이 서서히 자라고 있었던 아이는 이날 아예 철학자의 꿈을 슬쩍 품어보기까지 하는 '특별한 순간'을 맞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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