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한 번 신문 읽고 토론, 유머 대잔치 하던 아이들이 성숙해지기
우리 집 아이를 데리고 '엄마표 토론 수업'을 한 지 2년이 넘었습니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진행했으니 그간 다룬 이슈만 해도 어마어마하겠네요.
처음부터 토론 수업을 할 작정은 아니었습니다. 직업병 때문에 뉴스 챙겨보는 것을 반 의무적으로 하다 보니 아이와 국내외 뉴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많았어요. 아이가 무엇을 보고 있느냐고 물으면 자연스레 아이가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배경 지식 곁들여 설명을 해주고 그에 대한 아이의 생각을 묻다 보니 이런 식으로 토론을 해보면 어떨까 싶었던 거죠. 그런 식의 대화에 흥미를 느낀 아이는 제법 어렵고 다양한 이슈에도 관심을 갖게 됐고 때론 내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피드백을 주기도 하는 걸 보면서 제대로 이야기해보는 자리를 만들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잘만 한다면 세상 돌아가는 일과 세상 사람들의 일에 관심 있는 아이, 그런 이슈들에 대해 다양한 생각해볼 줄 아는 아이, 옳고 그른 것 혹은 가치 있는 것에 대해 구분할 줄 아는 아이, 독립적으로 자기만의 주관을 가진 아이로 자라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뉴스를 분석해 읽고 비판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능력도 기를 수 있기를 바라는 지점도 있었고요.
사실 처음에는 토론 주제를 책에서 고를까도 생각해봤었어요. 토론하면 아무래도 독서토론이 먼저 생각이 나더라고요. 한국에서도 필수 독서를 읽고 토론하는 능력이 중요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개인적으로 뉴스에 관심이 많은 탓도 있지만 생각해보니 뉴스만큼 제대로 시의성을 띠는 정보가 없더라고요. 앞서도 말했듯이 아이가 세상 돌아가는 물정 좀 알고 사람들에게도 관심이 많은 그런 아이가 되길 바랐거든요. 물론 솔직히 모든 기사가 퀄리티가 보장이 되진 않죠. 그렇지만 넘치고 넘치는 기사 중에서 잘만 고르면 팩트는 팩트대로 의견은 의견대로 논리 정연하게 잘 정리된 것들이 분명 있거든요.
개인적으로 실험이기도 했어요. 매주 토픽을 고르면서 난이도를 조정하고 아이들의 흥미를 반영해가며 토론용으로 좋은 토픽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추려나가게 됐죠. 우리 아이보다 한국어가 서툰 친구와 함께 하다 보니 기사에 등장하는 어휘의 수준도 고려해야만 했고요. 토론 수업 초기에는 어휘를 설명하느라 기사 한 문단 읽기가 쉽지 않았던 기억도 있네요.
토론 수업은 이렇게 진행했어요. 먼저 수업 전에 기사를 공유하고 읽어오게 했어요.(그런데 이 부분은 사실 잘 안되더라고요. 아무래도 엄마-혹은 친구 엄마-와 하는 수업이라 그런지 아이들이 공부가 아니라 재밌는 놀이쯤으로 생각을 하더라고요) 수업이 시작되면 뉴스를 한 문단씩 번갈아가며 읽게 하고 다 읽은 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 질문을 받고 설명을 해주었죠. 처음엔 어휘 설명하는 데 시간을 많이 들였는데 수업이 무르익을수록 아이들의 질문이 사방팔방으로 확산되는 바람에 본론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해지더군요. 아이들의 질문이 아니더라도 기사에서 등장하는 주요 내용에 대해서는 가지치기를 하면서 설명하는 시간도 가졌어요. 예를 들면 미국과 중국의 무역 싸움 관련 기사를 읽을 땐 'GDP' 등에 대한 설명이 반드시 필요했고, 기후 관련 기사로 토론을 할 때는 나토 조약이나 파리협정 등에 대해 알려줄 필요가 있었죠. 그러다 보니 우리의 수업은 사실 토론이긴 했지만 아주 다양한 상식들을 함께 배워가는 시간이기도 했어요. 그걸 위해서 사회자를 맡은 나는 토론 전에 관련된 많은 정보와 기사들을 추가적으로 챙겨보고 지식을 단단히 무장하는 노력이 필요했지만, 그 자체로 나에게도 공부가 되는 시간이었음은 틀림없습니다.
기사를 읽은 후에는 롤을 정하고 토론에 돌입했어요. 내가 사회자가 되고 아이들은 패널이 되는 식이었죠. 약간 코믹한 상황을 만들어 재미를 주고 싶어서 토론 때마다 말도 안 되는 대표명을 만들어냈답니다. 때로는 정당 이름이기도 했고 때로는 단체의 이름이기도 했는데 이름만 들어도 웃음 터지는 그런 명칭으로요. 토론이 너무 딱딱하게 흐르게 하지 않기 위해 고안해 낸 일종의 장치였어요.
아이들 각각 토픽에 대한 찬성과 반대로 번갈아 가며 의견을 내고 토론을 하게 했어요. 한 번은 찬성으로 한 번은 반대로, 수업 시간 중에 양 측 의견을 다 내어놓아야만 했죠. 그렇게 한 이유는 설령 그게 본인의 주관이 아닐지라도 상대의 의견, 다른 의견에 대해 반 강제로라도 생각해보게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각자의 의견을 더 잘 경청하라는 의미도 있었어요. 찬성으로 했다가 다시 반대 의견으로 토론을 하려면 상대방이 어떤 의견을 냈었는지를 알아야만 하니까요. 뿐만 아니라 토론이 글쓰기로 이어지는 걸 감안하더라도 자기주장만 펼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찬반 균형감을 갖고 논리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켜야 할 필요성도 있고요.
솔직히 아이들이 힘들어했어요.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본인 의견이 아닌 의견으로도 토론을 한번 해야 하니 억지로 의견을 만들어내느라 애를 먹었죠. 그런데 그럴 때 의외로 굉장히 창의적인 의견들이 나온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습니다. 생각을 만들어내다 보니 별별 의견들이 다 나오는 거죠. 어쩌면 나는 바로 그 부분에서 우리가 하는 수업이 그저 논리를 무장하는 토론이기보다 생각이 풍성해지고 뻗어나가게 하는 수업으로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물론 그런 의견들은 대부분 너무 어이가 없고 웃길 때가 많아서 수업 시간마다 나는 사회자로서의 균형감을 잊고 가끔 빵 터져 웃음을 참지 못하곤 했지만요.
이를테면 이런 식이에요. 한 번은 유럽에서 한창 논의가 되면 이슬람 여성들의 복장인 부르카 찬반에 대한 토론을 했어요. 아이들 둘이서 국회의원이 되어 관련 법안 처리를 두고 토론을 하는 상황이었죠. 토론 중에 진짜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들이 막 나오더군요. 한 아이가 "부르카를 허용하되 대신 배에 본인 사진을 붙이게 하면 신분 증명이 되지 않겠습니까" 하고 찬성 의견을 내니 한 아이가 "아니, 그러면 그 사진이 가짜이면 어떻게 합니까" 하고 반대 의견을 내더군요. 주고받고 의견이 오가는 와중에 도저히 결론이 안 나겠다고 생각했는지 우리 아이가 말하더군요. "이 문제는 너무 어려운 문제이니 내일 다시 논의하기로 합시다." 그래서 사회자가 끼어들었습니다. "안 됩니다, 대표님들. 오늘이 이 법안 관련 국회 회기 마지막 날이에요. 오늘이 넘어가면 이 법안은 폐기됩니다." 그랬더니 아이가 또 말합니다. "아 그러면 이 법안을 다음으로 넘겨서 다시 논의할 수 있는 법안을 지금 만들고 끝냅시다."
돌아보면 초창기에는 그런 난장토론이 없었던 것 같아요. 둘 다 너무 친한 아이들이라 눈만 마주쳐도 아이들이 웃느라 정신이 없고 과하게 몰입한 나머지 "아니, 지금 당신은.." 하고 역할극을 하는 상황도 생겼지요. 어쩌다 너무 힘들어하는 주제가 나오면 아이 둘이서 편 먹고 나를 상대로 토론을 펼치기도 했는데 그럴 때는 아주 어찌나 신이 나서 서로 이야기를 해대던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아이들의 생각이 성숙해진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많았어요. 제법 어려운 토픽을 던져주어도 자기 생각을 드러내는 데 전혀 어려워하지 않고 소신 있게 의견을 말할 땐 큰 보람도 느낀답니다. 무엇보다 아이들은 토론 자체를 좋아하게 됐는데요, 우리 집 아이는 내가 어떤 뉴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면 "아, 그거 토론용으로 좋겠다"라고 말할 정도로 토론의 감각이 어느 정도 생겨났지요.
가끔 아이의 의견을 듣고 있으면 어떻게 그런 생각까지 할 수 있는지 내 아들이지만 정말 멋있다, 생각이 들 때가 있을 정도예요. 말을 잘하고 못 하고 훌륭한 의견을 내고 말고를 떠나서 일단 세상 문제에 관심이 많다는 자체로 그래요. 그게 휴머니즘이든 기업의 문제든 국가에 관련된 것이든 사회 문화적 이슈든 모든 경계를 넘나들며 관심사가 넓어지니 어떤 주제로도 아이와 대화가 가능하다는 게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죠.
최근 몇 달간 아이들과 논의한 토픽을 정리해보니 이렇더군요.
-뉴스를 볼 때 언론사 거부권 제공과 그로 인한 편협적인 시각의 문제
-범죄자의 머그샷 공개를 둘러싼 논란, 공익이냐 인권이냐
-쿠팡의 미국 상장을 둘러싼 차등 의결권 찬반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영업비밀 침해 논란, 각자가 각 사의 변호인이 되어 변호한다면
-코로나 지원금 어디까지 해야 하나
-청소년들의 성형수술 찬반
-이익공유제를 둘러싼 찬반 논란
-백신은 완벽히 안전할까,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코로나 백신 개발한 기업들에 부작용 면책권 줘야 할까
-인권위의 '교실서 학생 휴대폰 금지 인권 침해' 결론 관련
-BTS의 병역특례권 공정 시비
-반려동물 복제를 둘러싼 논란
-민주주의와 다수결의 원칙, 다수결은 항상 옳은가
-'자녀 징계권 삭제'와 사랑의 매에 대한 의견
-외국인이 놀란 한국의 캔슬 컬처
-설민석의 역사 왜곡 논란 중심, 각색의 필요성 vs 무조건 사실이 중요
초기 토픽들은 'Fridays for future 관련 학생들의 기후변화 시위, 금요일의 결석 찬반 토론', '독일의 코로나 집단면역 실험' '글로벌 기업 CEO의 정치적 의견 어디까지?' 등 아이들이 살고 있었던 독일과 유럽, 글로벌 이슈들을 많이 다루었던 반면 요즘은 아무래도 국내 이슈들이 많아지긴 했어요. 주제도 다소 무거워졌고요. 그래도 아이들은 이제 어느 정도 각자 내공이 쌓여서인지 초창기처럼 '난장토론'이나 '유머 대잔치'로 일관하지는 않더라고요. 심지어 어떤 때는 어른인 나도 생각하지 못했던 큰 깨달음을 주는 말들도 곧잘 쏟아내요. 아이들의 생각을 키우기 위한 토론 수업이 결국에는 나를 자라게 만들고 있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