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개발자 품귀로 기업들이 개발자 모시기 혹은 키우기에 전력을 쏟고 있다는 뉴스와 함께 그로 인해 요즘 코딩 학원이 미어터진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폐업 일로에 있었던 한 코딩 학원이 밀려드는 초등학생 수강생으로 인해 때아닌 특수를 맞고 있다는 에피소드도 있었습니다. 안 그래도 한국에 돌아와 동네 곳곳에 있는 코딩 학원을 보고 말로만 듣던 코딩 교육 열풍이 진짜였구나, 실감했던 나는 열풍을 넘어 어쩌면 광풍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아이가 코딩을 하지 않는 아이였다면 아마 나도 불안한 맘으로 그 대열에 끼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열두 살인 아들은 '어쩌다' 코딩을 시작한 지 2년쯤 되었습니다. 외국에 살면서 아이의 한국어 실력에 대한 걱정도 있었고 자신만의 오피니언을 갖춘 아이로 키우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던 나는 국내외 뉴스를 커리큘럼으로 아이와 토론 수업을 진행했는데요, 토론이니 만큼 2명 이상의 참가자 필요해 가까이 살던 아이의 절친도 함께 수업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이 토론 수업에 대해서도 정말 할 말이 많으니 이건 다시 따로 이야기하기로 하고요. 몇 개월쯤 토론 수업이 진행될 무렵 아이 친구의 부모님이 코딩 수업을 제안하셨죠. 프로그래머인 친구의 아빠가 토론 수업에 대한 '품앗이'로 아이들을 가르쳐주겠다고 하신 겁니다. 당시, 스스로 게임을 만들 줄 아는 친구를 무척이나 부러워하던 아이는 신이 났고 코딩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던 우리 부부는 자연스럽게 생긴 기회가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죠.(그다음부터 아이는 토론 수업보다 코딩 수업을 더 좋아하게 됐지요.)
코딩이라고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그냥 게임을 만들고 노는 시간이었습니다. 로블럭스 스튜디오를 통해 각자 혹은 협업으로 다양한 게임을(캐릭터부터 시놉시스, 컴퓨터로 표현하는 것까지) 만들어보다가 이후에는 파이썬이라는 코딩 언어로 또 게임을 만들고 있더군요.(1년간 파이썬을 배운 아이들은 지금 다시 복습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실 나는 아이가 코딩하는 모습을 봐도 저게 뭘 하고 있는 건지 잘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 전혀 알 도리가 없어서 그저 아이가 좋아하는구나 정도만 알았지 더 개입할 생각도 능력도 되지 않았습니다. 코딩 수업을 할 때 아이 표정을 보고 있으면 정말 재밌나 보다, 생각하는 게 다였죠. 게임을 하니 좋을 수밖에,라고 단정 지으면서요.
그렇게 코딩에 빠져든 아이는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코딩 수업이 못내 아쉬워서 혼자 유튜브로 코딩에 관한 영상을 찾아보고 실전에 적용해가며 공부하는가 하면, 코딩 책을 사달라고 해서 여러 번 반복해 읽기도 하더군요. 어쩌면 우리 부부가 코딩에 대해 전혀 몰랐고 개입할 수 없었고 도와줄 수 없던 상황이 아이가 스스로 찾아보고 노력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초창기에 어느 정도로 무지했었냐 하면 "그래서 오늘 뭘 배운 거야?"라고 물으면 아이는 무슨 무슨 스토리 이야기만 줄곧 해대는 겁니다. 게임이 어떤 내용이고 어떤 게임 아이템을 만들었으며 어떻게 흘러가는지 등등. 나는 그때마다 다시 물었어요. "아니 그래서 코딩을 배운 거야?"
지금 생각하면 아이가 얼마나 황당했을까 싶어요. 코딩은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컴퓨터로 외계어 같은 언어들을 입력하는 행위 정도라고 생각했던 나와 실제로 코딩이라는 걸 하고 있는 아이 사이에는 엄청난 괴리감이 존재하고 있었던 셈이니까요.
그 후 아이의 코딩 선생님인 친구 아빠와 이에 대해서 깊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고 나는 그제야 내가 코딩에 대해 대단히 잘못된 생각을 하며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코딩을 잘하는 능력은 테크닉을 잘 구사하는 것이 아니라 창의적인 아이디어, 기획력, 그리고 그것들을 잘 구조화하는 능력이라는 것을 깨달은 겁니다. 그때부터 코딩의 세계에 대해 많이 찾아보고 공부하게 됐어요. 이 시대에 진짜로 코딩 교육이 필요한 이유는 우리가 표면적으로 생각하듯 '프로그래밍을 할 줄 아는' 기술적 요인 때문이 아니라 코딩 교육의 본질이 모든 교육의 시작이자 목표지점과 닿아있는 창의성, 기획력, 구조적 능력, (알고리즘을 통한) 표현 능력까지 연결돼 있다는 것도 알게 됐죠. 코딩 언어인 스크래치를 창시한 레스닉 박사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었죠. 코딩을 '기술'이 아닌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방식(마치 글쓰기처럼)으로서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우리 부부가 매일 코딩에 열광적으로 빠져드는 아이를 적극 지원해주게 된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습니다. 코딩은 창의적인 스토리텔링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코딩에 대해 관심이 많다 보니 만나는 분들하고 관련 이야기들을 많이 나누었는데요, AI 시대에 코딩을 누구보다 잘하는 게 AI일 텐데 굳이 필요하지도 않을 코딩을 배워야 하느냐고 반문하는 분도 있었어요. 그럴 때 나는 자신만만하게 말할 수 있었죠. 프로그래밍 자체를 하는 그 능력은 당연히 인간이 AI를 따라갈 수 없겠지만 코딩 교육 자체는 그 기술적 구현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아이들이 코딩을 배우는 과정에서 진짜 중요한 건 창의적인 생각과 아이디어를 스토리로 풀어내는 것이라고.
앞으로도 당분간 우리 부부는 아이를 코딩 학원에 보낼 마음이 없습니다. 아이가 코딩을 더 잘하고 싶다고 말할 때마다 나는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 식입니다.(네이버의 최연소 개발자 임원인 정민영 님도 대학에서 전공보다 철학사나 과학사 등이 더 흥미로웠다,고 하더군요.) 비즈니스 때문에 바빠진 아이 친구 아빠가 조만간 수업을 못하게 될 것 같다는 '예고'를 들었지만 우리는 아이가 스스로 자기 길을 잘 개척해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보니가 유튜브에도 좋은 선생님들은 많고, 스스로 의지만 있으면 좋은 교재도 많더라고요. 또한 능숙하게 알고리즘을 만들어내는 기술로서의 코딩은 코딩의 본질이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천천히 늦더라도 스스로 고민하고 생각하고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에서 많은 것을 깨닫고 배울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아직까지는요.
주변의 수많은 코딩 학원, 그 학원들에 다니고 있을 많은 어린이들이 그곳에서 어떤 교육을 받고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배우는 아이도 아이의 부모님들도 한 달이 지나고 6개월이 지나고 1년이 지나면서 점점 능숙한 솜씨로 프로그램을 짜는 아이의 모습을 기대하고 다그치거나 조바심 내는 오류는 범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사교육이란 것이 그렇듯, 일단 일정 기간이 지나면 뭔가를 보여줘야 하기에 코딩 자격증 따기에 도전하는 것을 관문으로 삼는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잘은 모르지만, 어떤 문제를 주고 입력값을 넣어 만들어내게 한다고 들었는데 이런 코딩의 기술보다는 더 많이 고민하고 생각하고 표현하는 능력을 키워내는 게 미래에 더 필요한 공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