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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나더씽킹 Aug 01. 2019

글로벌이란 무엇인가

교육의 질, 외국어, 해외여행 만으로 얻을 수 없는 그 무언가

지난 6월 말,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인터내셔널데이 행사가 열렸다. 일 년에 한 번 학년 말에 치러지는 이 행사는 학교의 가장 큰 행사 중 하나이다.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수많은 나라의 국적을 가진, 피부색도 모국어도 다른 다양한 문화권의 아이들과 부모들이 다 함께 어울리며 국제학교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축제다.(대부분의 인터내셔널 스쿨에서 인터내셔널데이 행사가 열리는데 행사 성격은 비슷하면서도 또 다르다.) 

그렇다고 학교에 속한 모든 나라의 아이들이 참여하는 것은 아니다. 행사 당일 누구나 와서 즐길 수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참여 의사를 밝힌 나라에 한해 각 나라별 부스가 설치되고, 부스에서 나눠주는 음식이며 놀이 및 문화 체험 프로그램, 아이들의 퍼포먼스 무대 등은 각 나라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준비하고 진행해야 한다.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밝히기로는 60여 개 이상 국가의 아이들이 속해있는 것으로 돼 있지만, 작년에도 올해에도 부스를 설치한 나라는 30여 국가가 채 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올해 행사가 작년보다 약간 규모가 축소된 듯한 느낌이 있었지만, 부스를 설치하지 않았던 작년과 달리 올해는 한국 부스가 마련됐고 준비한 음식이며 문화 체험, k팝 댄스를 비롯한 아이들의 퍼포먼스 무대 등이 성황리에 잘 마무리된 덕에 관람자로서가 아닌 참여자로서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지난 6월 말에 열린 인터내셔널데이 행사 포스터와 행사장 전경.


행사를 치르면서 느낀 점은 ‘인터내셔널 데이’를 대하는 나의 태도가 작년과 올해, 상당히 많이 달라져 있다는 것이었다. 뭐랄까, 작년엔 문화적으로도 이미 익숙한 아시아의 몇 나라를 제외하곤 각 나라 부스를 돌아보며 약간은 신기하고 한편으론 공부하는 느낌이었다면, 올해는 하나같이 다 익숙했고 마음의 거리감도 사라져 있었다. 어느새 이곳에서 2년의 시간을 보내고 2학년을 마치는 시점이라 나라마다 아는 얼굴도 많고 인사와 안부 정도 묻는 부모들도 많고, 친한 부모들도 더러 생긴 탓이리라. 오랜만엔 만난 이와 허그로 외국 식 인사를 하고 서로의 음식을 나누고 아이들을 주제로 대화를 하다 보면, 더 이상 서로의 국적은 중요하지 않고 그저 같은 ‘학부모’라는 공감대만 남을 뿐이다. 

그래도 여전히 서툰 내가 이렇게 큰 차이를 느낄 정도인데 아이는 오죽할까. 올해 행사는 아이에게 그저 친구들을 만나 종일 먹고 뛰어노는 날 그 이상의 의미가 아니었다. 지난해, 행사 내내 한복을 입고 다니며 각 나라별 부스를 흥미로워했던 아이의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었다. 혼자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음식을 골라 먹고, 친한 친구들과 어울려 각종 놀이에 심취했다. 네 나라 내 나라는 아이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다시 머릿속에 떠오른 질문이 있었다. 글로벌이란 무엇인가. 



나도 그렇고 다른 많은 이들 역시 아이들을 ‘글로벌 시민’으로 ‘글로벌 인재’로 키우고 싶어 한다. 한국은 교육 콘텐츠의 질이며, 학부모들의 열정, 그리고 아이들의 경험치 또한 이미 ‘글로벌’ 수준으로 올라섰다. 내 주변에만 해도 ‘글로벌 인재’로서 싹이 보이는 아이들이 넘치고 넘쳤다. 세계 어디 내놔도 경쟁력이 있는 아이, 내가 생각했던 ‘글로벌’이란 아마도 그 수준에 멈춰 있었던 듯하다. 그런데 베를린에서 지내는 동안 나는 자꾸 되묻는다. 세계적 수준의 교육을 받고, 외국어에 능하고, 해외 경험이 많다고 해서 ‘글로벌’이라고 명명할 수 있는 걸까. 

생각해보면 우리 아이는 이제야 비로소 조금이나마 ‘글로벌’해진 게 아닐까 싶다. 한국어만큼 영어에 익숙해서도 초보 수준이지만 독일어를 구사할 줄 알아서도, 또래 한국 아이들에 비해 다양한 나라를 많이 다녀봤기 때문도 아니다. 아이는 본인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지만, 그렇다고 매번 상기할 필요가 없기도 하다. 친구들의 국적은 너무나도 다양하지만, 친구는 그저 친구일 뿐 그 친구가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가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과 같은 맥락이다. 


외국인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한국부스(좌)와 각 나라의 아이들과 부모들이 함께 한 국가별 퍼레이드.


아이는 다양한 나라의 친구를 사귀며 자연스레 그 나라에 대해 접하고 배운다. 종교적 이유로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아이, 내전을 겪는 나라에서 온 아이, 미국인 엄마와 인도인 아빠를 두었지만 딱 봐도 미국 감성이 강한 아이, 전 세계에서 키가 가장 크다는 네덜란드에서 온 ‘키다리’ 친구… 수많은 아이들이 있지만 교실 안에는 그 어떤 편견도 이질감도 존재하지 않는다. 같은 반에 16개국에서 모인 24명의 아이가 매일 함께 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작은 지구촌’에서 살고 있는 셈인 것이다. 

아이의 생각이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는 일화는 또 있다. 국제학교 특성상 매년 새로 오는 친구, 본국으로 혹은 다른 나라로 떠나는 친구들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지난해 친구들과의 이별을 아쉬워하던 아이는 올해 절친들이 대거 떠나는 사태에도 불구하고 슬픔이 덜해졌다. 괜찮겠냐고 떠나면 또 만날 날이 있는 거라고 지레 걱정해 위로하는 나에게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 언제든 연락하면 되잖아. 암스테르담도 부다페스트도 가서 만나면 돼. 일본은 한국에서 가까우니까 진짜 자주 볼 수도 있겠다.”

나라와 나라, 대륙과 대륙의 경계가 아이의 마음속에선 이미 사라진 듯했다. 사람도 문화도 ‘공부’로 접하지 않고 삶 속에 자연스레 스며드는 것, 그래 이런 게 진짜 글로벌 아닐까. 


** 이 글은 필자가 연재 중인 온라인 경제매거진 '비즈 한국'의 '베를린, 나'에 실린 내용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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