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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나더씽킹 Apr 28. 2021

마음 부자

엄마 운동화를 신고 학교 간 아이

어제 오후 아이를 픽업해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조금 전에 카톡으로 운동화 사진 하나 보냈는데 봐봐. 나 지금 매장에 와 있으니까 빨리 보고 답해줘."

며칠 전, 엄마는 어린이날을 앞두고 아이에게 뭐 하나 사주고 싶다고 필요한 게 있는지 물으셨다. 마침 아이가 신던 운동화가 해지고 끈이 뚝 끊어진 바람에 새 신발이 필요해서 얼른 '운동화'라고 답을 했었다. 

"엄마, 근데 이제 운동화 필요 없어. 내가 신던 신발이 있는데 그게 잘 맞더라고. 발이 엄청 커서 이제 내 신발이 다 맞다니까. 하하. 많이 안 신어서 멀쩡한 거라 괜찮아."

얘기를 듣던 엄마는 "세상에, 아니, 너는 달랑 애 하나 있는 걸 니가 신던 신발을 신긴다고? oo이(엄마의 또 다른 손자다)는 신발을 네 개나 두고 번갈아 신던데, 너 너무한다!" 

운전 중이라 블루투스로 전화가 연결돼 있어서 이 대화를 다 듣고 있던 아이가 불쑥 끼어들었다. 

"할머니, 나 괜찮은데!"

몇 차례 실랑이와 사진 몇 장이 오고 간 뒤 결국 엄마는 아이가 가장 맘에 든다고 한 운동화를 구매하기로 결정한 듯했다. 


오늘 아침, 아이는 내가 신던 운동화를 신고 학교에 갔다. 달랑 하나 있던 운동화가 더는 신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탓이다. 어제 엄마가 한 말이 신경이 쓰이기도 하고 내가 진짜 너무했나 싶기도 해서 학교 가는 길 아이에게 슬쩍 말했다. 

"너 진짜 엄마 운동화 신는 거 괜찮아?"

"응, 괜찮아."

"근데, 혹시 말이야, 그래도 학교에 가서 엄마 운동화 신고 왔다는 말은 하지 마."

아이들은 아이들이니까 그걸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는 일이고 그 이야기가 아이들 엄마에게 전해질 수도 있고 그게 또 듣는 입장에선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는 일이라 한 당부였다. 

"어, 나 벌써 R(아이의 베프 중 한 명이다)한테 이야기했는데?"

"아... 친구가 뭐래?"

"응 언제 신고 올 거냐고 물어봤어."

"그럼 오늘 가서 이거라고 이야기할 거야?"

"내가 말하기도 전에 아마 먼저 알아차릴걸."

"아, 맞다, 너 신발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바뀐 거 보면 알겠구나."

 

아이는 진짜 아무렇지 않은 것 같았다. 엄마 반응에 안 해도 될 걱정을 한 모양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렇게 받아들여주는 아이가 또 고마운 거다. 아이를 사립학교에 보내는 친구가 학부모들이 다들 고급차를 타고 다녀서 학교에 갈 때마다 애가 차 좀 바꾸자고 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는데, 우리 집 아이는 한국에 돌아와 친정아빠가 타던 15년 된 낡은 국산차를 빌려 탈 때도 한 번도 그 비슷한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었다. 도리어 SUV라서 차가 높아 재밌다며 좋아하고 애착을 가졌다. 

별 게 아닐 수 있지만 나는 오늘 아침의 상황이 흐뭇해서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마음 부자라서 모든 게 다 괜찮은 거구나? 엄마가 신던 신발을 신어도 괜찮고 낡은 차 타고 다녀도 괜찮고. 그래 마음 부자인 게 최고야. 마음 부자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거든."


아이는 마음 부자라 좋고 나는 덕분에 또 에피소드 부자가 됐다. 

오늘도 이렇게, 행복 가득한 마음으로, 굿모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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