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잘 자, 사랑해." "아빠 잘 자, 사랑해."
예의 자기 전 하는 인사를 건네고 잠자리에 든 아들 옆에 누웠다. 얼굴만 봐도 괜히 눈물이 울컥. 최근 황망하게 다 큰 자식을 떠나보낸 어떤 분들의 이야기, 여느 날과 다름없이 평화롭던 일상 속에 눈 앞에서 엄마를 떠나 보낸 아이 이야기 등 너무나 슬프고 고통스러운 뉴스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까닭이다.
가슴 아픈 뉴스가 어디 최근뿐일까만(뉴스에도 나오지 않는(못하는) 사연들이 훨씬 더 많겠지만),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 아이를 남겨놓고 떠나간 엄마의 심정에 감정이입이 된 탓이리라. 보고만 있어도 닳을까 아까운 아이와 영영 이별해야 하는 그 절망과 고통을 어떻게 감히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의식을 잃어가는 순간까지 아이를 걱정하며 하늘에 가서도 '네가 살아서 다행이야'라고 말하고 있을 것만 같은 엄마의 마음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우리는 늘 사랑하는 이들과 이별했거나 이별하는 중이거나 언제인지 모르나 예정된 이별을 앞두고 사는 삶이다. 일생을 통과하며 수차례 겪어야 하는 이별이라면 부디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떠나보내는 갑작스러운 이별만은 아니기를.
오늘 아침, 아파트 단지 안에서 한쪽 어깨에 어린이집 가방을 메고 아이 손을 잡고 걸어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았다. 아이와 눈 맞추며 재잘재잘, 아이는 뭐가 좋은지 그냥 걷지 않고 폴짝폴짝. 그 모습을 보는 나는 갑자기 눈꺼풀이 떨린다.
기도가 하고 싶어 졌다. '우리 모두가 충분히 넘치도록 행복할 수는 없겠죠. 그게 과한 욕심이라면 그래도 최소한의 행복, 최소한의 평화를 누리며 살 수 있게 해 주세요.'
어릴 때 교회를 가면 목사님이 그렇게 '나라와 국민을 위한 기도'를 하자고 하셨다. 어릴 때는 그렇다 치고 다 큰 어른이 되어서도 나는 그 기도가 굉장히 공허하게 들렸고 마지못해 몇 마디 속으로 중얼거렸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는 나 스스로 내가 아닌 우리를 위한 기도를 하고 있다. 아픈 사람들이 덜했으면, 힘든 인생들이 덜했으면, 고통받는 이들이 덜했으면, 세상이 좀 평화로웠으면, 또...
나에게 이토록 눈부신 오늘 아침이 모두에게 같았으면, 굿모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