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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나더씽킹 Jun 03. 2021

"우리 아이는 진짜 어메이징 해!"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돌아와 곧장 동네 커피숍으로 갔다. 

써야 할 글이 많은데, 오늘은 작정하고 좀 많이 그리고 오랫동안 작업해야겠다 생각하고 보니 외부 커피 한잔 수혈할 필요성을 느꼈다. 집에 원두도 몇 종류나 있는데 이럴 땐 꼭 핑계 삼아 바깥 커피가 마시고 싶어 진다. 


종종 같은 시간대에 커피를 사 오긴 했는데 오늘은 처음 보는 풍경을 보았다. 학부모로 모이는 분들이 테이블마다 두세 명씩 꽉 차 있었던 것. 아, 오늘 아이들 학교 가는 날인가 보다, 생각한다. 

주문한 커피를 기다리는 동안 뜻하지 않게 바로 앞 테이블에 앉은 세 분의 대화를 듣게 됐다. 

"(앞에 앉은 한 분을 가리키며) 얘 어제 애 때렸대."

"(지목받은 분이) 진짜 때린 건 아니고 때릴 뻔했어요. 언어폭력은 좀 했지."

"(다른 한 분이) 나는 뭐 언어폭력은 일도 아니야, 맨날 하는데."


그 순간 달려가서 "그러지 마세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물론 편한 사이에 반쯤은 장난 섞어 과장된 표현을 하고 있었을 수 있겠지만 '언어폭력'이란 단어가 계속 얹혔다. 웬 오지랖인가 싶지만 나는 엄마의, 부모의 말 한마디가 갖는 힘이 굉장히 위대하다는 가치관을 갖고 있다. 항상 좋은 말만 할 수는 없다. 아이를 혼내야 하는 순간들도 많다. 그러나 그 순간들에도 엄마는 단어를 말을 골라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한 마디가 아이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지 모르는 일이니까. 그 한 마디 한 마디가 쌓여 아이의 미래를 만들어간다고 생각하니까. 


화제 전환, 계속 들어보기로 한다. 아이들의 수학 실력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두 자릿수 덧셈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초등학교 저학년인가 보다. 수학을 너무 못한다고 누군가 토로하자 다른 분이 우리 집도 그렇다며 구체적인 에피소드를 늘어놓는다. 

"아니 어떻게 그것도 모를 수가 있는지. 애가 수학 머리가 없나, 생각이 들더라고."

순간, '아이들은 엄마들이 모여 자기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알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 또한 친한 친구를 만나면 아이의 부족한 점에 대해 토로할 때도 있고 반대로 들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할 때의 기준은 있다. 아이가 함께 있는 상황에서 해도 되는 수준, 그러니까 아이가 들어도 기분 나쁘지 않은 수준으로 말하는 것. 


오늘 아침 풍경을 목격하면서 다시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 독일에 살 때, 아이의 절친 중 한 명이었던 그리스 친구 엄마와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 친구는 아래로 동생이 둘 있었는데 동생들도 잘 챙기고 학교에서도 의젓하기로 소문난 아이였다. 늦둥이를 낳고 오랜만에 학교에 모습을 드러낸 친구 엄마와 인사하며 나는 이렇게 말했다. 

"네 아들은 정말 늘 의젓하더라. 우리 애도 형 같다는 얘길 자주 하더라고. 동생들한테도 좋은 형일 것 같아." 진심으로 하고픈 칭찬이기도 했고 오랜만에 만난 그녀와 짧게 인사하는 순간 가볍게 던질 수 있는 말이라서 꺼낸 이유도 있었다. 그런데 내 말 끝에 기다렸다는 듯 튀어나오는 그녀의 대답이 놀라웠다. 

"맞아, 우리 애는 정말 어메이징 한 아이야. 아들로서도 형으로서도 너무나 훌륭해."


낯선 자극이었다. 한국 부모들 사이의 대화와는 패턴이 조금 다르게 느껴지는. 일반적으로 한국 부모들은 내 아이에 대한 그 정도의 칭찬을 들으면 일단 '아유, 아니에요'부터 나오지 않나. 정작 내 아이가 '어메이징' 하더라도 겸손해야 하는 게 미덕이라고 알고 있으니까. 

그날 이후로 나는 학부모들과 개인적으로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을 때마다 비슷한 감정을 종종 느끼곤 했다. 보통 아이에 대한 칭찬을 들으면 '우리 애는 정말 그래 -> 네 아이도 그렇잖니!' 식으로 흘러가는 대화의 패턴이 나는 오히려 일단 겸손의 말부터 하고 보는 것보다 더 편안하고 좋은 자극을 주었다. 어쩌면 자신의 아이에 대해서 저토록 자신감 있게 '내 아이는 정말 훌륭해'라고 말할 수 있는 부모의 태도와 마인드가 아이를 진짜 그렇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만일, 한국에서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면, 내가 우리 아이에 대한 누군가의 (어쩌면 습관적으로 하는) 칭찬을 듣고 "맞아요, 우리 애는 진짜 어메이징 한 아이예요!"라고 답한다면 상대는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할까. 


상대방이 어떻든 나는 속엣말로 '우리 아이는 나에게 과분할 정도로 훌륭한 아이야. 그러니 나도 그에 맞게 정말 괜찮은 엄마가 되어야지'라고 말해보며, 오늘도 굿모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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