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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나더씽킹 Jun 22. 2021

"수학 문제집은 깨끗하면 안 돼"라고 했더니

아침에 구독 중인 브런치 작가 정경문 님의 아래 글을 읽었다.

노답 노트 https://brunch.co.kr/@writerjeong/87


평소, 살면서 하는 모든 경험이 결국 언젠가 쓸 데가 있다는 생각을 하는 나와 맥락이 닿아있어 흥미로웠다.

그리고 글을 읽다 떠오른 일화가 있어 아침 내내 나는 키득키득 웃는 중.


좀 오래 지난 일이다. 아이가 수학 문제집을 풀고 있는데, 보니 문제를 한참 째려보고 있다가 머릿속으로 계산해 답만 쓰고 있었다. 문제집을 보니 답을 도출하기까지의 중간 문제들도 두어 개 제시하면서 문제 풀이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아이는 과정은 다 생략, 정답을 암산 방식으로 풀고 있었다.

내가 물었다.

"수학은 답도 중요하지만 풀이 과정이 더 중요해. 이렇게 중간 과정을 다 생략하면 안 되는데... 그리고 이 문제는 풀이를 쓰라고 했는데 답만 썼네?"

"다 내 머릿속에 있어. 나중에 진짜 시험 볼 때 쓰면 돼."

"그렇다 해도 연습이 돼 있어야지. 수학 문제집이 이렇게 깨끗하면 안 돼."


알았다, 는 답을 듣고

그로부터 한참 후,

어느 날 아이의 수학 문제집을 봤더니 그림이 잔뜩 그려져 있어 무엇이 답이고 무엇이 그림인지 뒤죽박죽이었다.

"아니 왜 수학 문제집에다 이렇게 많이 그림을 그렸어?"라는 나의 질문에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아이가 한다는 말이,

"엄마가 수학 문제집은 깨끗하면 안 된다고 했잖아~"


어이가 없어 잠시 할 말을 잃은 나는 이내 적절한 반응을 찾아냈다.

"와, 이렇게 창의적인 해석이라니 정말 대단하다! 어쩐지 요즘 그림 실력이 늘었다 했더니 수학 문제 풀면서 그림 연습해서 그랬구나!"


그 후로도 아이는 여전히 수학 문제집에 그림을 그린다. 어쩌다 가끔, 그리고 문제 풀이를 하고 남은 자투리 공간에다.

그림 실력이 늘었단 내 말은 완전 빈 말은 아니었다. 연필로 문제 풀다가 간단히 카툰 스타일로 그림을 그리던 아이는 실제로 사람을 그리는 스킬이 는 것도 같다. 역시 쓸 데 없는 일은 없었던 것인가. ^^


"쓸 데 없이 문제집에 그림이나 그렸다"는 식의 말로 대응하지 않은 나의 태도도 분명 역할을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서로 감정 상하지 않고 웃으며 이야기했지만 아이는 엄마가 하고픈 말이 무엇인지 알았을 테니.


같은 말을 하더라도 다르게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전하며,  오늘도 굿모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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