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화. 심리적 끝자리에서 벗어나기
2025년 5월 7일 수요일 일기글에서 발췌
선거관리위원회 회의실, 나는 오늘도 맨 끝자리에 앉았다. 사무국장님은 빈자리에 앉으라고 권했지만 늘 그렇듯이 끝자리 소파가 내 자리인 것처럼 앉았다. 그 자리는 위원장과 가장 먼 곳, 모두의 시선에서 가장 자유로운 곳이었다. 습관처럼 몸이 그 자리로 향했고, 그제야 문득 의문이 들었다. 왜 나는 다른 곳에서도 늘 맨 앞이 아닌 맨 끝이나 구석자리를 택하는가? 평소에도 잘 나서지 않고 뒷자리를 선호하는 성격이며, 나서서 말하고 행동한 날은 집에서 후회를 하는 성격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오늘 이곳에서 느낀 감정은 확연히 달랐다.
집에 돌아와서도 선거관리위원회 회의실에서 가졌던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낯선 환경에서의 내 행동은 단순히 성격 때문만은 아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선관위 명단을 보니 나보다 어린 위원들이 많았지만, 나는 최근에 선거관리위원으로 참석한 상황이다 보니 스스로를 가장 어리숙하고 경험이 부족한 사람으로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위원장이 ‘판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이 나를 압도했고, 무의식적으로 그보다 낮은 위치에 스스로를 두며 편안함과 안정감을 선택하고 있었다. 나이가 많고 경험이 풍부한 다른 선거관리위원들 앞에서, 나는 ‘아직은 잘 모르는 어리바리한 상태’라고 스스로를 평가하고 있었다. 어쩌면 나이가 어린것이 아니라 경험이 부족하다는 스스로의 판단이, 나를 교장이라는 직위와 나이에도 불구하고 맨 끝자리로 이끌었을지도 모른다.
다른 위원들의 직업을 살펴보니 정당 관계자 두 분을 제외하고는 기관의 원장 출신이거나 현직 변호사였다. 내가 가진 '교장'이라는 직위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내가 판사를 경험해 보지 않아 판사에 대해 막연한 동경을 갖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교장이라는 옷을 입어본 사람으로서, 교장은 그저 한 개인이 한시적으로 맡은 역할이라는 것을 안다. 마찬가지로, 판사도 평범한 한 사람이 그 길에 해당하는 공부를 통해 얻은 '성취의 옷'일뿐이지 않을까? 그 옷의 무게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고, 각자 맡은 역할을 해내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평범한 진실을 알면서도 나는 여전히 판사라는 직위와 경험, 변호사라는 직위의 경험과 비교하며 부족하다는 열등감에 갇혀있다. 거꾸로 생각해 보면 변호사나 판사도 교장을 해보지 못했기에 스스로 교육에 대해서는 부족하다는 열등감을 갖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낯선 곳에 갈 때마다 그 집단의 특성을 경험해 보지 못했기에 ‘내가 이 집단에 속할 자격이 있는가’를 끊임없이 판단하고, 스스로의 존엄성을 열등감으로 덮어버리곤 했다. 교원 집단의 수장이기에 더 겸손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도덕적 생각이, 상대방을 위한 배려가 아닌 나 스스로를 낮추는 행동을 해야 한다는 착각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낯선 열등감,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알아차리고 나서는 숨기려 애쓰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수용하며 마주하기로 했다. 그리고 맨 끝자리에 앉아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은 자연스러운 행동이라고 스스로 합리화하기로 했다.
맨 끝자리는 아직까지도 나에게는 심리적 안정감을 주지만, 동시에 '이방인'이라는 생각에 홀로 섞이지 못하고 겉도는 감정을 선택하게 하였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방인’으로 남지 않기로 했다. 다음 선거관리위원회 회의에 참석할 때는 맨 끝자리가 아닌, 비어있는 자리에 앉아보기로 마음먹었다. 처음에는 남의 자리를 빼앗는 것 같아 어색하고 불편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익숙하지 않은 자리에 앉아있으면서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실수할까 봐 두려워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두려움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낯선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익숙하게 만들기 위한 의도적 노력을 할 것이다. 삶의 여정도 선거관리위원회의 자리도 정해진 것은 없지만 비어 있는 틈을 자연스럽게 찾아가 들여다보며 이전과 다른 나 자신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나는 이방인들 앞에서 이방인처럼 생각하고, 이방인이 되어 행동하며, 낯선 환경에 나의 감정과 생각을 맞춰가며 견뎌내고 있다. 늘 변화하고 싶고 삶의 이방인 시각으로 살고 싶은 내 마음과 심리적 부담감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스스로의 나에게 질문하는 마음을 담아 쓴 자작시 한 편을 소개한다.
[균열의 틈]
2016년 힘든 퇴근길에 하루의 일을 되돌아보는 과정에서 불현듯 떠 올라 썼던 '시'다. 이렇게 힘들게 오늘을 견뎌내고 있는 나는 누구일까? 에고에 휩싸인 나를 나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에고를 바라보고 있는 내가 나일까? 나는 지금 에고의 경계를 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경계를 넘어 에고를 바라보며 나를 객관화하고 있는 것일까? 아직도 풀지 못했다. 타인의 시각에 의해 내 삶을 맞춰가고 있는지, 내 생각과 감정을 제대로 마주하며 내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