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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이방인 연습//삶은 살아지는 것

내안의 경계가 만든 낯섦

2025.03.17. 월요일 일기글에서 발췌


##이 병원장의 낯선 모습에 적응이 잘 되지 않는다. 4년 전에는 나와 아내와 아들이 무척이나 감사했던 사람이라 더더욱 낯설게 느껴졌다. (아들이 4년 전 교통사고로 손바닥의 신경이 모두 끊어져 지금까지 치료를 받고 있고, 버스조합 보험팀에서는 지속적으로 합의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아내는 아들의 미래와 건강을 걱정해서 치료를 완전하게 더 받고 싶어 했고 , 나는 버스조합 보험팀과 합의를 하기 위한 조건으로, 현 상태에서 치료를 더 받아야 하는 점이 무엇인지 병원장의 의견을 듣고 싶었다.


하지만 병원장의 한마디 말로 그동안 가졌던 신뢰와 기대감이 산산이 부서졌다. 아마 이상적인 병원장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던 듯했다. 아들의 손을 만져본 후 의사는


"그동안 지속적인 치료를 받지 않으셨네요. 보험회사와 합의를 하세요. 더 이상 치료를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아드님의 손가락이 움직이는 상황을 볼 때,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보시는 편이 맞습니다. 더 이상 치료할 것이 없습니다, 성형도 의미가 없습니다. 이 정도는 그냥 안고 살아가야 합니다."


거의 AI가 말을 하는 것처럼 기계적으로 말을 한다. 아내는 병원장의 말에 서운함을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위한 마음에 일말의 희망을 얹어 큰 병원에 갈 수 있게 소견서를 작성해 달라고 했다. 그 말에 병원장은 시큰둥했다. 아내는 아들을 위한 일이라고 했다. 나도 병원장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아들이 치료에 임하는 적극성을 살펴봤을 때 더 이상의 치료는 힘들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여기서 치료를 멈추자고 제안했다. 아내는 내 생각과 달랐다.(아내의 생각대로 작성된 소견서를 가지고 서울대 병원을 찾아 수술을 하기로 결정했다.) 모성애인가? 건강염려증인가? 이런 모습에서 아내와 나의 가족에 대한 생각과 감정 경계가 있고 틈이 없어 보였다. 나는 틈 없이 이방인처럼 생각하며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모르는 척하며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내 삶의 기준으로는 병원장도 낯설고 아내도 낯설다. 모두 각자의 방식과 패턴대로 살아가며 보이지 않는 영향을 미쳐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 세상의 삶이고 이치다. 이런 다름이 쌓이고 모여서 살아 숨 쉬며 예측 불가능한 관계를 만들고 그 안에서 갈등 형성과 해소를 반복한다. 어찌 보면 삶은 그냥 살아지는 것이다. 내 맘대로 되는 것은 내 마음 외에는 하나도 없다. 가끔은 내 마음마저 맘대로 되지 않는다. 그냥 지금을 견디며 살아가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생각과 감정 관성대로 지금을 살아가며 견뎌내고 있다. 나 또한 일상적인 생각과 감정 패턴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 굴레에서 쳇바퀴 돌고 있다. 세상은 끊임없이 관계를 만들고 허물며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있는데 말이다. 그래서 쳇바퀴 도는 내 생각과 감정을 옥죄고 있는 목줄을 놓아주고 싶은 마음을 담아 지은 자작시를 소개한다.



자유


집안의 마음

거리에 던졌다.


넓은 세상

살펴보라고.


2015년쯤 지었던 시로 생각이 난다. 그 당시에는 학교 교감으로 재직하던 시절이었다. 늘 같은 시간에 출근해서 업무보고 후 결재와 협의 및 업무처리로 하루를 바쁘게 지내고 있던 터였다. 아내는 당시 장학사로서 교육청에서 근무했다. 내가 교감으로 전직하며 아내는 교육전문직에 합격했다.
나는 학교 교감으로서 바쁜 일상과 이어지는 저녁 술 약속으로 가정에 소홀한 상황이었다. 그러다가 아내와 다툼이 있었다. 내가 장학사 시절에 아내가 집안일을 도맡아 했듯이, 지금은 내가 아내가 하던 역할을 해야 했었다. 하지만 이기적인 나의 성향과 관성을 버리지 못해 다툼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때 집안에서 있었던 감정을 잠시 멈추고 내 마음을 달래며 더 넓은 마음을 가져야겠다는 마음으로 속풀이 했던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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