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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이방인연습//연민이 미래의 다짐으로 바뀌는 순간

07화. 비워진 바짓 속에 담긴 아버지의 세월

2025년 9월 19일 금요일 일기글에서 발췌


며칠 전, 아버지가 담낭 파열로 응급 수술을 받으시고 일주일 만에 퇴원하셨다는 소식은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었다. 입원 기간 동안은 하필 코로나가 다시 고개를 들어 면회조차 할 수 없었다. 오직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작은 목소리만이 아버지의 안부를 짐작하게 할 뿐이었다.


길었던 일주일이 지나고, 아버지의 바람과 의사 선생님의 권고로 드디어 퇴원하시던 9월 19일 금요일. 다행히 때마침 치과 치료를 위해 미국에서 잠시 들어온 여동생 부부가 퇴원 수속을 도맡아 주었다. 너무 감사했다. 그 덕에 나는 직장 일을 염려 없이 마무리할 수 있었다.


주말을 맞이하여 아버지를 찾아뵈었을 때, 나는 병원에 가시기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살이 많이 빠져있었고, 허리는 눈에 띄게 앞으로 굽었으며 움푹 파인 눈과 수술한 허리에는 복대가 채워져 있었다. 목소리는 혈당 때문인지 목을 긁는 듯 작고 쉰 기운이 섞여 흘러나왔다.

"왔니?"

겨우 힘겹게 입을 여시는 아버지께 통증이 어떠신지 여쭈었다.

"아파... 너는 치아 치료는 잘 받고 있니?"

순간 묘한 기분이 들었다. 당신의 고통이 눈에 보이는데, 겨우 몇 마디의 짧은 대화 속에서도 자식 걱정이 먼저이신 아버지.

"제 걱정보다 아버지 걱정을 먼저 하세요!"

라고 말씀드렸지만, 마음속으로는 오히려 더 속이 상했다.


아버지는 길게 대화를 나누기조차 힘들어 보이셨다. 하얗게 변한 머리카락은 기력이 없는 탓인지 축 눌어붙어있었고, 휘어진 허리 위로 채워진 복대는 아버지를 더욱 병약해 보이게 했다. 불과 3주 만에, 입원 전보다 확연히 늙고 병든 모습으로 소파에 기대앉아 계신 아버지를 마주하는 것은 내게 고통이었다. 무언가를 해드리고 싶은 마음은 간절한데, 당장 무엇을 해드려야 할지 몰라 마음만 혼란스러웠다.


구부정하게 힘없이 앉아계신 아버지 곁 소파에 나란히 앉아, 나는 문득 나의 미래를 보았다.


'나도 나이 들고 병들면 저런 모습일 텐데...'


연민이 아버지의 병환이 아닌, 나 자신에게로 향하는 순간, 병환을 앓고 있는 아버지도, 그리고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보는 나도 모두 힘겹게 느껴졌다.


옆에서 아버지를 간병하고 계신 어머니는 여전히 근심 가득한 얼굴이시면서도 아들 내외가 왔다고 반갑게 과일을 내오셨다. 기운 없는 아버지 앞에서 무엇을 맛있게 먹는 것조차 사치처럼 느껴져 쉬이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젠 어머니도 아버지 간병하시기 힘든 나이신데...'라는 안쓰러운 생각과 함께,

언젠가 나와 아내의 노년의 모습도 이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마치 이방인처럼, '나는 아내와 함께 지금부터 노년을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었다.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문득 과거에 아버지를 생각하며 지은 짧은 시 한 편이 떠올랐다.



아버지




노부(老父)의 바짓 속 헐렁함은

꽉 찬 자식 사랑

비워진 세상 걱정


헐렁함이 클수록

거칠 것 없는 걸음걸이


이제는


비운 바짓 속처럼

자식 걱정도

여유 있게

하시길...



[균열의 틈]
2016년 추석, 고향 당진 성묘길에서 앞서 걸어가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고 지은 시였다. 젊은 날 근육으로 꽉 찼던 허벅지가 앙상해져 헐렁거리는 바지를 보며, 그 헐렁함 속에 가득 찬 아버지의 자식 사랑을 느꼈던 그날.
나는 그때부터 아버지와 어머니께 노년에 드릴 자서전을 선물하고 싶다는 꿈을 꾸었다. 그 꿈의 시작이 바로 시를 짓는 것으로부터 출발했고, 지금도 자서전 작업은 진행 중이다. 하루빨리 아버지께서 기력을 회복하셔서, 자서전 완성을 위한 나의 인터뷰에 웃으며 계속 응해주시면 좋겠다.
아버지께서는 추석이면 한 번도 빠지지 않던 고향 성묘와 당진에 계신 둘째 형님과의 약주 한 잔을 못 하셔서 이번 추석은 더 속상해하실 것 같다.
보이지 않는 비구름 뒤의 보름달에게 간절히 기도한다. '아버지께서 부디 빨리 건강을 되찾으시기를...'그 헐렁한 바 짓 속에 다시금 건강한 기운이 채워지시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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