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02부. 이방인 연습//눈에 보이 것이 전부가 아닌 삶

08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살았던 나.

2021.05.27. 목요일 일기글에서 발췌


추위를 이기는 방식은 사람과 나무가 다르다.

사람은 추울수록 옷을 두껍게 껴입으며 자신을 보호하지만, 나무는 혹독한 계절을 이겨내기 위해 오히려 잎과 가지를 비워낸다. 우리는 타인을 바라볼 때도 이와 비슷한 착각에 빠지곤 한다. 사람의 본질은 눈에 보이는 옷(직업, 환경, 청결 상태)이 아닌, 그가 어떤 방식으로 삶의 고난을 이겨내는지 보여주는 인격과 철학에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우리는 종종 눈에 보이는 외적인 기준으로 내면의 가치를 성급하게 판단하는 실수를 자주 범한다. 고정관념-나는 '생각과 감정 관성'이라고 표현하고 있다.-은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에게 습관적으로 내재되어 있다.


학생안전체험관의 관장으로서, 건물 안팎의 청소를 책임지는 여사님들과 식사를 대접하며 그 간의 수고로움에 대한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었다. 특히 따뜻한 밥을 함께 나누는 자리는 포만감이 주는 만족감 덕분에 서로가 무장해제되어 속내를 터놓게 되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길지 않은 대화 속에서 나와 상대방에 대한 인생의 의미에 대한 관점을 바꿀 수 있는 균열의 틈을 발견했다. 대개 직위의 높낮이에 따라 사람을 '일의 기능'으로만 판단하기 쉬운 조직 생활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이분들의 직업으로 인격과 존재감을 판단하고 있었던 것이다. 두 청소 여사님은 생활 속에서 스포츠(특히, 야구)를 즐기는 열정적인 분들이었고, 현시대의 정치 상황이나 인근 21세기 병원에 대한 정보 등 폭넓은 상식의 소유자였다. 청소라는 직업의 특성 뒤에 숨겨져 있던 그들의 지성과 관심사는 내가 품고 있던 어설픈 편견에 균열의 틈을 만들어 주었다.


가장 깊은 깨달음은 관장실의 시들어가는 난을 통해서 얻었다. 청소 여사님 중 한 분이 그 난을 햇볕이 잘 드는 곳으로 옮겨 건강하게 살려내셨고, 감사를 표하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가 한 일은 하나도 없어요. 빛과 바람이 다 했어요.”


순간, 나는 묵직한 가르침으로 이 조직의 이방인이 된 기분이었다. 청소라는 노동을 통해 겉으로 드러나는 환경을 정돈하는 분이, 실은 생명과 자연의 이치를 꿰뚫는 삶의 철학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가진 직위나 세상이 부여한 역할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청소를 잘하든 못하든, 높은 직책에 있든 낮은 곳에 있든, 한 존재로서의 존중은 마땅히 주어져야 할 기본값이었음을 깨달았다.


청소하는 행위, 혹은 그가 가진 직업은 단지 사회 속에서 맡은 '기능'일뿐이다. 그것이 그의 '가치'나 내면의 '인격'을 결정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 생각의 방향이 바뀌면서 더 겸손한 삶을 살아가고자 지었던 시 한 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추위를 이기는 법



사람은

추울수록

옷을

두껍게 입지만,


나무는

추울수록

옷을

벗는다.


[이방인 연습]
이 시는 2016년에 겨울, 지방 출장을 다녀오는 길에 지은 시다. 산 능선을 따라 낙엽이 모두 떨어진 나무 사이로 뒷 배경이 보이는 장면을 보는 순간 큰 깨달음이 있었다.
삶의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기 위해 사람들은 더 많은 생각과 감정으로 중무장하는 것과 달리, 나무는 자연의 순리에 몸을 맡기며 가지고 있던 잎 마저 떨어내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삶의 역경과 갈등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다만, 그 역경과 갈등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가 해결 방향을 결정짓는다.
때론, 삶의 역경과 갈등을 이방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의도적인 훈련이 필요하지 않을까?


keyword
이전 07화2부. 이방인연습//연민이 미래의 다짐으로 바뀌는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