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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균열의 시작

04화. 낯선 환경이 선물한 마음의 틈


2021년 7월 11일 일요일 일기글에서 발췌



새벽에 깼다가 다시 잠드는 바람에 늦잠을 자고 일어나 오전에 급하게 집안일들을 해치웠다. 밀린 빨래를 개고, 새 빨래를 돌리고, 식물에 물을 주고, 쓰레기도 버리고.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니 집안이 깨끗하게 정리되는 만큼 내 마음도 정돈되는 느낌이다. 청소와 정리의 묘미다. 해야 할 일을 해냈다는 만족감을 선택하며 시작하는 하루였고 내 일상의 루틴으로 만들기 위해 일요일에도 멈추지 않고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다.


그렇게 오전 시간을 보내고 아내와 함께 산책을 인근 공원으로 나섰다. 나에게는 너무도 익숙하게 걷고 뛰는 길이었지만, 아내에게는 낯선 풍경이었다. 솔찬공원 길을 걸으며 내가 평소 마라톤을 하는 코스라고 가르쳐주었다. 일요일 오후 함께 걷는 길, 처음에는 그저 같은 공간에서 함께 몸을 움직이는 시간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길을 걷다 갑자기 안개가 밀려와 눈앞의 바다가 사라지고 희뿌연 풍경만 남았다. 바닷가라서 자주 경험하는 풍경이다. 고요와 적막이 감도는 그 순간, 묘하게 마음이 편안해지며 아내와의 대화는 잠시 멈추고 천천히 걷는 걸음에 집중했다.


아내는 이런 편안함이 좋았는지 진작 이런 길을 알려주지 않았다고 귀여운 투정을 부렸다. 사실 지난주와 지지난주에는 바쁘다는 핑계, 비가 왔다는 핑계로 함께 걷지 못했다. 늘 바쁘다고만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내게 부족했던 것은 시간이 아니었다. 함께 이 시간을 공유하려는 마음의 틈이 부족했던 것이다. 굳이 대단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그냥 동일한 장소와 시간을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족이라는 의미는 충분히 부여되는데 말이다.


'우리는 동일한 시간에 각기 다른 생각과 감정을 선택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같은 공간에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아내와 나는 의미 있는 시간을 공유하고 있는 셈이었다. 이런 사소하지만 소중한 사실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연습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알아차리는 오늘이다.


많은 집안 일과 산책을 하며 만족스러웠던 오늘처럼, 앞으로는 '시간이 없다'는 핑계 대신 '마음이 없다'는 사실을 부끄러워 하지 말고 솔직하게 마주하기로 다짐한다. 생각과 감정이 그 자리에 머물러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진실을 알기에, 이제는 마음의 틈을 내어 나만의 의미있는 시간과 공간을 만들며 이방인의 삶을 벗어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 또한 마음의 틈을 통해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욕심을 비우고, 기대감을 내려놓으며, 하루 중 지금의 시간과 공간에 대한 만족감을 선택하는 것.

앞으로는 더 자주 아내와 낯선 길을 걸으며 마음의 틈을 내어주는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런 마음의 틈을 열어주었던 자작시를 소개한다.





우리에게 없는 것



시간이 아니라

마음.


[균열의 틈]
2017년 인천교육연수원 기획평가부장으로 근무하며 각종 연수를 기획하고 추진하며 동분서주하는 날을 보내고 있었다. 연수원은 교육전문직원의 숫자가 적었기 때문에 다른 직속기관에 비해 할 일이 더 많았다. 그리고 연수원의 특성상 외부에서 실시하는 연수와 숙박 연수가 많았다. 그런 핑계로 늘 만나고 소통하던 지인들과의 연락이 소원해졌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모임 참석 횟수와 시간을 줄였다. 돌아보니 좋은 연수 기획을 위한 노력에 마음이 더 가있었던 것 같다. 지인들은 시간이 지나도 내가 돌아갈 기회를 줄 수 있지만, 연수원은 시간이 지나 떠나고 나면 다시는 좋은 연수를 기획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앞서 '이방인'과 같은 삶을 살았다.
'지금도 예전에도 후회를 했다.'
아무리 바빠도 일보다는 사람 관계가 더 중요하고 특히, 가까운 사람일수록 약속의 소중함을 더 소중히 여겨야 하는 마음을 담아 지었던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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