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느린 발걸음 Jul 02. 2024

세 남자 손발톱 깎아주기


나는 우리 집 세 남자 손발톱 깎기 담당이다.

두 아들은 그렇다 치고, 남편까지? 의아해할지 모른다.

나도 지금까지 남편 손발톱을 깎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


결혼하기 전부터 남편 손톱이 맘에 걸렸다. 

이쁘고 동그란 모양이 아닌, 울툴불퉁 네모나게 마음대로 깎은 듯한 모습이어서.

사람은 둥글둥글한데 손톱은 왜 저렇게 멋대로 깎았을까? 의문이 들었지만 넘겼다.

연애할 때 이런 이야기를 하고 터치하면 좀 그럴 것 같았다.

아무리 성격이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자기만의 개성이 있는 법이니까.


결혼식을 마치고 둘 다 피곤하고 힘들어서 누워 있었는데 남편 손톱이 눈에 띄었다.

여전히 제멋대로의 개성을 자랑하는 손톱들을 보니 힘든 와중에도 손톱을 깎아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톱도 슬쩍 봤는데, 네모나게 깎아야 하는데 동그랗게 울퉁불퉁 깎여 있었다.

남편에게 호기롭게 말했다.

"이제부터 내가 오빠 손발톱 깎아줄게요. 그러니 오빠는 하지 마요!"

남편,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도리어 좋아하며 대답한다.

"아, 그래요? 나도 손발톱 이쁘게 깎고 싶은데 잘 안 됐었는데, 고마워요!"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햇수로 10년째 계속 깎고 있다.


여기에 두 아들이 태어났다.

이로써 타인의 손발톱을 깎아주는 것이 처음엔 한 명이었다가 세 명으로 늘었다.

아이들은 손발톱이 연하고 물러서 조심스러웠다.

손톱을 깎다 잘못해서 피를 봤다는 이야기도 들어서 무서웠는데, 다행히 지금까지 피 한 번 안 봤다.

니름 집중해서 깎았으니까.


그런 아이들이 이제 초등학교 2학년, 유치원생이 되었다.

어릴 때는 얌전히 있던 아이들이 이제 몸을 배배 꼬기 시작한다.

장난친다고 손과 발도 막 움직이고.

그러다 다치는 건 너네들이라고 말해도 그때뿐이다.

안 되겠다 싶어 엄마가 손발톱 깎아주는 것을 잘 보고 스스로 해보라고 했다.

나름 노력하는 모습이 보인다. 이리저리 깎고 나에게 마무리를 해달라고 한다.

울퉁불퉁 제멋대로 깎인 것, 너무 많이 깎아서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모르겠는 것, 나름 이쁘게 깎은 것 천차만별이다.

마무리를 해주며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해 준다.

초반엔 몇 번 스스로 하더니 이젠 나에게 내밀며 해달라고 한다.

자기 혼자 하기 힘들다며. 

아... 이건 내가 예상한 모습이 아니다.

스스로 하길 바랐건만... 그래도 가끔 스스로 하려는 모습도 보인다. 

이제 조금씩 더 혼자 하게끔 횟수를 늘려야겠다.


그런데, 남편은 아니다.

이제 자기 혼자 깎을 수 없단다. 

한번 해보라고 하면, "그래요. 이상하게 엉망으로 깎죠 뭐." 이런 식이다.

그러면 예전의 남편 손톱이 연상된다. 연신 머리를 흔들며 내가 깎아주게 된다.

그러면 뭐가 그리 좋은지 혼자 싱글벙글이다.

내가 깎아주면 그렇게 기분이 좋단다. 

그러면서 내 손톱을 깎아줄까 물어보는데, 손사래를 치며 거절한다.

나도 잘 깎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남편보다는 나으니까.


남편은 먼저 깎아달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신경 써서 보지 않으면 손발톱을 꽤 긴 상태로 유지하고 있다.

불편하지 않냐고 물어보면 내가 깎아주지 않아서 어쩔 수 없단다.

내가 남편 손발톱만 보고 있을 수는 없으니 먼저 얘기하라고 하면 미안해서 그럴 수 없단다.

어쩌란 말인지. 그래서 가끔 남편 손톱이 얼마나 길었는지 확인해 보는 버릇이 생겼다.

솔직히 귀찮을 때도 있다. 내 손발톱도 깎기 귀찮을 때가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깎아주게 된다. 이게 사랑의 힘인가? 모르겠다.


한 번은 시댁에 가서 남편이 시어머님께 얘기한 적이 있다.

"어머니, 저는 결혼하고 손발톱을 제 손으로 깎은 적이 한 번도 없어요. OO 씨가 다 깎아주거든요."

어머님, 한심하다는 듯이 남편을 쳐다보며 한소리 하신다.

"너는 어멈이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것도 스스로 못해서 그러냐?"

나에게도 말씀하신다.

"힘든데 계속해주면 버릇돼. 스스로 깎으라고 해."

그러면 우리 둘 다 빙긋 웃는다.

우리에겐 우리만의 방식이 있으니 말이다.


두 아들은 조금만 지나면 스스로 할 것이다.

우리 집 제일 큰 아들, 남편은 아마 계속 깎아주게 되지 않을까 싶다.







작가의 이전글 논리적으로 또박또박 이야기하고 싶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