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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 발걸음 Jul 24. 2024

그럴 때가 있다.   

그럴 때가 있다.

평상시라면 그냥 넘어갈 일인데 괜스레 짜증 날 때.

보통 때라면 허허 웃고 넘겼을 텐데 속이 좁아져 부글부글 끓을 때.

다양한 색상을 지녔던 세상이 갑자기 회색톤으로만 보일 때.

주변 사람들은 똑같이 행동했는데 나를 배려해주지 않는 것 같아 화가 솟구칠 때.

내 감정인데 내 마음대로 컨트롤되지 않고 제멋대로 날뛰는 것 같을 때.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챙기자 다짐했는데 그 심호흡조차 벅차게 느껴질 때.

어색한 미소라도 지으면서 뇌를 속여보자는 다짐도 멀리 사라질 때.


이런 널뛰는 감정의 시작점을 잘 모르겠다.

어느 날, 어느 순간 갑자기 내 속을 한바탕 휘저어 놓는다.

나도 상대방도 당황스럽게 말이다.


며칠 전, 아침에 일어났을 때만 해도 괜찮았다.

매일 아침 일상을 해나가고 있었다.

두 아들을 깨우고,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과일을 챙겨주고, 반찬을 만들어서 아침밥을 챙겨주고.

남편도 일어났기에 남편 밥도 같이 준비해서 먹게 했다.

세 남자가 밥을 먹는 동안 나는 아이들 등교, 등원 준비하고, 정리 좀 하고.

밥을 다 먹고 치우는데 설거지 양이 꽤 됐다.

역시 아침에 반찬을 조금이라도 만들면 설거지거리가 늘어나는구나 생각하고 아이들 학교, 유치원 보낸 후에 설거지를 해야겠다 생각했다.


두 아들을 보내고 집에 왔는데 갑자기 만사가 귀찮아졌다.

짧은 시간에 에너지를 쏟아서 그런지 기운이 쭉 빠졌다.

남편에게 슬쩍 이야기했다.

"오빠가 설거지 좀 할래요?"

남편, 대답이 없다. 피곤해서 자나보다.

나도 피곤하지만 남편도 피곤한 것을 알기에 그냥 힘들어도 설거지를 했다.

(식기세척기가 있지만 아이들이 어릴 때 문 위에서 많이 놀아서 잘 닫히지 않아 거의 사용하지 못한다.)

그리고 남편이 잘 자고 있나 보러 갔는데, 이런... 핸드폰을 보고 있는 거다.

갑자기 짜증이 솟구쳤다.

내가 무언가 하고 있을 때 초인종이 울리는데 남편, 꿈쩍도 안 한다.

씩씩거리며 나가서 확인하고, 남편을 봤는데 역시 핸드폰을 하고 있다.

아... 보통 때라면 웃으면서 얘기했을 텐데 웃음기 전혀 없는 메마른 말투가 튀어나왔다.

"아니, 핸드폰 보느라고 설거지도 안 하고, 초인종 울려도 가만있었던 거예요?"

남편,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순간적으로 직감한다.

여기, 이 공간에 있으면 내 잔소리가 다다다 나올 것 같음을.

그것도 둥근 모양이 아닌 뾰족한 모양으로 상대방에게 꽂히게 할 것임을.

그러면 나 역시 시간이 지나 후회와 자책의 시간을 거칠 것임을.

부랴부랴 씻고 옷을 갈아입고 책을 챙겨서 카페로 간다고 하고 나온다.

몇 번의 경험으로 이럴 때 혼자 있는 것이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기에.


씩씩거렸던 거친 감정의 숨소리가 걸으면서 조금은 가라앉는다.

카페에 가서 차를 한 잔 시키고 자리를 잡는다.

처음엔 조금 멍하니 밖을 바라본다. 

호흡이 조금 진정됐다 싶을 때 책을 펼친다.

처음엔 눈에 잘 들어오지 않던 글자가 어느 순간 나를 사로잡는다.

책을 읽고, 차를 홀짝거리면서 마시고, 가끔 밖을 내다보고...

2시간 30분 정도 지나니 조금은 괜찮아진 것 같다.

배도 슬슬 고파오니 집으로 향한다.


집에 가니 남편도 아직 점심을 먹지 않았단다. (출퇴근시간이 보통 사람보다 늦다.)

남편이 좀 차렸으면 좋겠는데 결국 내 몫이다.

자기가 하겠다고 해도 담배 피우러 갔다 오면 답답해서 내가 한다. 배가 고프기도 했고.

둘이 밥을 먹고 설거지 거리가 또 쌓인다.

알아서 설거지를 했으면 좋겠는데 또 담배 피우러 간다.

아... 그냥 한다. 설거지를 하는데 또 기분이 안 좋아진다.

내 마음속에서 외친다. 

"나도 힘들다고!! 나도 좀 쉬고 싶다고!!"

이런 감정을 조금 가라앉히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시작이라니.

안된다. 이래서는 둘 다 좋을 것이 없다.

다음부턴 좀 했으면 좋겠다고 얘기한다. 

남자들은 왜 말하지 않으면 잘 모를까? 알아서 해줬으면 좋겠는 때도 있는데 말이다.


이런 시간을 거치고 나면 나는 아직 멀었구나 생각한다.

감정을 다스리는 책을 읽고 호흡도 하지만 갑자기 그러면 속수무책이다.

평상심을 유지하고 싶은데, 왜 그게 그리 쉽지 않을까?

지금보다 업다운이라도 좀 덜했으면 좋겠다.



(이미지 출처 : https://pin.it/4wYBsnJl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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